• 제목/요약/키워드: Modern building 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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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에 보이는 궁궐정원의 조영수법 (A Study on Design Techniques of Palace Gardens presented in Donggwoldo)

  • 진상철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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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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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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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연구의 목적은 "동궐도" 에 담겨있는 모든 정원 요소를 각 원(院)별로 나누어 세밀하게 살펴봄으로써 궁궐정원의 조영특성 및 수법을 파악 하여 전통계승을 통해 현대 정원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연구 방법으로는 동궐도에 나타나 있는 궁궐정원의 모습을 정원 요소별로 관찰하여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동궐도에 나타나는 정원 요소로 괴석과 연못, 건물과 마당, 경계와 영역, 수목 등이 있으며. 공간에서 확인되는 각 구성요소의 배치특성을 파악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입기의 경우 동궐도내의 원(院)은 명당 내부의 최적지를 선택하여 각각의 대지를 기존의 지형과 건물의 용도에 따라 적극적으로 자연을 변형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식재는 궁궐을 조성하면서 기존 수목을 그대로 활용하여 원칙적인 식재 방법이나 수종의 선택 기준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칭식재를 한 점이 특징으로, 이러한 대칭식재 방법은 음양 표시의 작정관(作庭觀)으로 보인다. 수종의 선정에 있어서는 상징적 의미가 강한 수종을 선택하여 식재하였다. 지당은 궁궐정원에서 대부분 관념적, 추상적 형태를 상징하는 원형으로 나타나며, 중락(衆樂)의 장소로 빈번하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정자를 만드는 형식은 일정하지 않았고, 형태적으로는 삼각, 사각, 오각, 육각, 팔각 등에서 십자모양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하게 조성되었다. 괴석과 석함은 주로 침전 주위와 동궁처소 그리고 후원에 배치되어 있었다. 화계(花階)는 주로 침전의 후면 및 동궁전, 공주의 처소 등 주로 부녀자의 거처에 나타난다. 취병(翠屛)은 자연과 단절하는 장벽이 아니라 선택적 인입을 하는 체와 같이 자연의 기를 안도하는 의도로 설치하였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구성방식에 있어서 서구나 중국의 경우와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조선시대 궁궐정원은 형식에 있어서는 엄격한 유가적 규범이 적용되었고, 작정 수법은 신선사상을 많이 차용하였다. 그러면서도 소탈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화훼식물의 이용과 상징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Utilization and Symbolizes of the Joseon Dynasty Flowering Plant)

  • 김승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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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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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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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조선시대의 고문헌과 옛 그림에서 나타나는 화훼식물을 재료로 궁궐정원과 민가정원에 나타나는 지피식물의 이용특성과 상징성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문화재 지역 및 현대 조경공간에 활용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었다. 첫째, 조선시대 고문헌과 옛 그림에서 출현한 화훼식물의 출현빈도는 매화, 연꽃, 모란, 국화, 파초, 영산홍, 장미, 진달래, 작약 등이 10회 이상으로 높은 빈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다음으로 비교적 출현 빈도가 높은 식물은 치자, 석류(8회), 패랭이꽃, 포도(7회), 난초, 정향, 봉선화, 원추리, 맨드라미, 무궁화, 철쭉류, 창포, 접시꽃, 황매화, 유자(5회), 부용, 동자꽃, 금전화, 베고니아, 해바라기, 양귀비, 수선화, 서향화, 옥잠화 등(4회)이였으며, 그 외에는 29분류군 총 81종의 화훼식물이 조사되었다. 둘째, 궁궐과 민가에서 사용되었던 조선시대 화훼식물의 이용은 분에 심어 가까이 두고 완상하거나 화단, 화계, 화오, 연못 및 담장주변 등에 주로 식재하였음을 고문헌의 기록과 정원도 및 민화의 그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산홍의 식물재료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에서 다루어지고 연구되어진 민가정원의 관련된 문헌(6점)이나 옛 그림(766점)에서 출현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대중에게 유통이 극히 일부에 국한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조선시대 화훼식물 상징성은 유교의 절개, 군자, 청빈, 충효사상을 나타낸 경우, 도교의 신선사상이나 불로장생을 나타내는 경우, 민간신앙의 부귀영화나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는 식물을 덕성함양의 대상이나 기복의 대상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조선시대 이용했던 화훼식물은 선비가 닮고 싶은 이상과 지향하는 정신세계와 일치하였기 때문에 선조들의 상징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조선시대 이용하였던 화훼식물은 수목종류에 따른 보편적인 판단기준이 아닌 다양하고 주관적이며, 또한 정신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여 해석할 때에 조선시대 화훼식물의 조경공간에서의 활용범위 또한 넓어질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