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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재노출 콘크리트포장의 적정 골재 선정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adequate Aggregate Selection of the Exposed Aggregate PCC Pavements)

  • 김영규;채성욱;이승우;유태석
    • 한국도로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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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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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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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골재노출 콘크리트포장은 저소음 포장으로서 유럽, 일본등지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골재노출 콘크리트포장은 콘크리트 표면의 모르타르를 제거하여 표면에 굵은 골재를 노출시키기는 공법이다. 타이어-노면간의 소음을 저감시키는 표면특성도 중요하지만 포장표면이 공용중에 지속적으로 적정한 미끄럼저항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반복적인 타이어-노면간 마찰은 표면조직을 마모시켜서 미끄럼저항값을 감소시키게 된다. 골재노출 콘크리트포장의 경우 노면에 굵은 골재가 노출되어 타이어와 접촉되므로 노면에 노출된 굵은 골재의 암종과 형상이 노면마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골재마모특성에 대한 평가시험은 로스앤젤레스시험기에 의한 마모시험과 Accelerated Polishing Machine에 의한 마모시험이 사용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다섯 가지 암종의 굵은 골재에 대하여 두 시험법으로 마모를 평가하였다. 실험결과 두 시험법은 실험골재특성뿐만 아니라 마모특성에 따라 상반된 마모저항결과를 도출하였다. 도로노면의 마모는 타이어와 반복된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데 로스앤젤레스에 의한 굵은 골재 마모시험은 굵은 골재의 전체표면과 철구간 충격에 인하여 마모감량이 나타나서 형상에 따라 마모에 대한 저항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도로노면의 마모를 파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반면에 APM에 의한 굵은 골재 마모시험은 실험법 자체가 노출된 굵은 골재와 타이어의 반복 마찰로 인하여 마모에 대한 저항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APM에 의한 굵은 골재 마모시험이 골재노출 콘크리트포장의 노면에 노출된 굵은 골재의 특성에 따른 마모에 대한 저항성을 파악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라고 사료된다. APM에 의한 마모저항 결과로부터 골재 암종, 비중, 하나 이상의 파쇄면을 가진 골재의 백분률, 편장석 함유율등이 골재의 마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을 나타냈으며, 그 중 물 추출물에서는 다호조생 품종이 지름 13mm의 저해환을, 알코올 추출물에서는 청목노상 품종이 지름 15mm의 저해환으로 효과가 가장 우수하여 천연 항균제 및 생리활성 물질로의 이용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었다.이나 세포핵 및 동양모세혈관등에 병리학적인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으며 간세포대의 배열도 규칙적이었다. 따라서 돼지감자의 이눌린, 연잎분말, 허브의 쐐기풀분말 및 유칼립투스 잎의 분말을 사용한 병합다이어트식이 급여가 비정상적인 지방 축적으로 인한 비만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관리 영역의 평균은 1.7/2.0점(85%)으로 나타났고, 농산물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p<0.05). 가장 취약한 항목은 '전처리'에서 '세척용수의 온도관리' 항목에서 0.7점이었고, 더욱이 농산물은 0.4점으로 평가되었다. 농산물 업체는 '세절시 이물 혼입방지'와 수산물의 '냉장 냉동식품의 절단시 품온관리'가 문제시되었다. 7. 용수관리 영역의 평균은 2.0/2.0점(100%)으로 가장 높았다. 개인위생관리 영역의 평균은 1.8/2.0점(90%)이며, 모든 항목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검사관리 영역은 평균 1.4/2.0점(70%)으로 가장 낮게 평가되었으며, '적정 검사시설 및 기구 구비' 항목은 공산품에서 평균 0.2점으로 평가되어 타품목에 비해 현저히 낮았고(p<0.01), 평가한 93개 항목 중 가장 불량한 상태로 관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사용 장비 및 기구의 검교정' 항목은 농산물이 0.4점으로 관리상태의 개선이 필요하며, 품목별로 볼 때 낮은 점수로 평가되었다(p<0.05). 이상의 결과를 종합해볼 때, 원재료의 입고 및 반품관리와 검사관리는 가장 관리가 미비한 영역으로 규명되었다. 구입되는 원재료의 안전성을 위해서는 입고 및 반품 기준이 정확하게 설정되어야 하고, 검사관리를 통해 원재료와 최종제품의 안전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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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관절 난치성 유착성 관절 낭염에서 관절경 하의 관절낭 유리술 (Arthroscopic Capsular Release in Refractory Adhesive Capsulitis of the Shoulder)

  • 고상훈;조성도;최승원;정지영;정광환
    • 대한관절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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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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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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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목적: 견관절의 난치성 유착성 관절 낭염에서 관절경 하 관절낭 유리술의 임상 결과를 평가하고 유효성을 증명하는데 있다. 대상 및 방법: 견관절의 난치성 유착성 관절 낭염에서 1년 이상의 보존적 가료에 실패한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적 가료를 시행하였으며 술후 1년 이상의 추시가 가능한 21예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평균 추시 기간은 3년 1개월(1년-5년)이었다. 통증에 대한 VAS(visual analog scale)를 측정하였고 일상 생활 지수(ADL, Activity of dailv living)를 측정하였으며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견관절 평가법을 이용하여 기능 평가를 시행하였다 술전과 술후 6개월 및 1년에 측정을 반복하였고 이후 1년 마다 측정하였다. 최종 추시 시기에 역시 VAS of pain, ADL, UCLA점수를 측정하여 비교하였다 결과: VAS는 술전 평균 8점에서 술후 평균 1점으로 향상되었고, ADL은 술전 평균 7점에서 술후 평균 26점으로 향상되었다. UCLA 지수는 술전 평균 8점에서 술후 평균 34점으로 향상되었다. 전방 거상은 술전 평균 75도에서 술후 평균 175도로 향상되었으며, 측방 외회전(E/Rs, External Rotation at Side)은 술전 평균 4도에서 술후 평균 52도로 향상되었고, 외전은 술전 평균 60도에서 술후 평균 170도로 향상되었다. 후방 내회전(1/Rp, Internal Rotation at posterior)은 술전 대퇴부에서 부터 요추 3번 극돌기 부위까지로 감소되었으나 술후 7번 흉추 극돌기에서 부터 9번 흉추 극돌기 부위 까지로 향상되었다. 결론: 견관절의 난치성 유착성 관절 낭염에서 1년 이상의 보존적 가료에 불응성인 경우 관절경하의 관절낭 유리술은 유효한 치료 방법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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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된 효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 연구 (Showing Filial Piety: Ancestral Burial Ground on the Inwangsan Mountain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재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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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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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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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덕수5520)는 그림과 발문(跋文) 열 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작가는 조중묵(趙重黙)(1820~1894 이후), 주문자는 박경빈(朴景彬)(생몰년 미상), 발문을 쓴 사람은 홍선주(洪善疇)(생몰년 미상), 제작연대는 1868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낱장으로 보관되어 온 <인왕선영도>를 병풍으로 복원하고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최초로 공개하였다. <인왕선영도>에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서쪽 실경이 묘사되어있고 원경에는 북한산 연봉이 그려져 있다. 화면 속에는 인왕산(仁旺山), 추모현(追慕峴), 홍재원(弘濟院), 삼각산(三角山), 대남문(大南門), 미륵당(彌勒堂)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있다. 이 지역을 나타낸 조선후기 지도와 비교해보면 지형 표현과 지명 표기에 유사성이 있다. 조중묵은 넓은 공간을 포착하기 위해 지도의 지리정보를 숙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경의 현장을 답사한 결과, 조중묵은 각각의 경물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였고 수평의 화면에 나열식으로 조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조중묵은 남종화풍 정형산수에 뛰어났던 화가로, <인왕선영도>의 세부 표현에서 사왕파(四王派) 화풍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도화서 화원들이 화보를 활용하여 가옥을 그리거나 토파에 호초점을 찍고 당분법(撞粉法)으로 꽃을 나타내는 등 장식적인 화풍을 구사한 경향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인왕선영도>에는 바위를 짙은 먹으로 쓸어내리듯 붓질한 기법, 산세의 괴량감, 가로로 붓을 대어 단순하게 그린 소나무 등 18세기 정선(鄭敾)(1676~1759)의 개성적 양식도 가미되어있다. 조중묵은 인왕산 실경산수로 유명한 정선의 양식과 권위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유기적 공간감과 현장의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연폭 화면이라는 매체도 조중묵의 개인 양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왕선영도>는 발문의 텍스트와 화면의 이미지가 잘 조응하는 작품이다. 발문의 내용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①무덤의 주인공과 이장 경위, ②무덤의 입지와 풍수, ③묘제(墓祭)와 신이(神異)한 응답, ④무덤 관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협력, ⑤병풍 제작의 동기인 박경빈의 효성과 수묘(守墓), ⑥발문을 쓴 의의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화면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용이한 ②의 내용은 화면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인왕선영도> 제작의 직접적 동기인 ⑤를 보면 주문자 박경빈이 "무덤이 마치 새롭게 단장한 것 같이 눈에 완연하다."라 하여 <인왕선영도>에 만족했음을 알 수 있다. 경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듯 나열한 구도는 회화미는 떨어지더라도 무덤의 풍수지리를 전달하는 데는 더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산도(山圖)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목판본 선영도로서, 족보와 문집에 수록된 경우가 많다. 16~17세기의 기록에서는 족자 선영도를 첨배(瞻拜)의 대상으로 삼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선영도 첨배는 현실적으로 수묘(守墓)가 곤란할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의례로 인정되었다. 한효원(韓效元)(1468~1534), 조실구(曺實久)(1591~1658) 등이 선영도를 제작한 후 당대의 명사에게 서문을 요청하고 효심을 과시한 사례는 <인왕선영도>의 선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개인 소장),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선영도는 아니지만 계회도 형식의 족자이고 풍수를 도해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선영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왕선영도>는 첨배라는 측면에서 초상화와도 의미가 비슷했다. 발문의 "부친의 기침소리를 직접 접하는 듯하고, 그 태도와 몸가짐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는 표현과 부친의 초상에 조석 문안을 올린 서효숙 고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박경빈이 일반적인 선영도 형식이었던 족자나 목판화 대신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를 주문한 의도는 분명히 알기 어렵다. 19세기에는 민간에서도 사례(四禮) 의식에 다수의 병풍을 배설(排設)하였는데, 의례의 성격에 따라 그림의 주제를 반드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인왕선영도> 또한 여러 의례에 두루 배설하거나 장식 병풍으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선영 그림이라는 주제를 실경산수화 이미지 아래에 가렸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왕선영도>의 핵심 소재인 무덤 봉분이 모호하게 처리된 것은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제 위반을 숨기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인왕선영도>에 묘사된 인왕산 서쪽 산기슭은 분묘 조성 금지구역이었다. 1832년에 금표 내에 몰래 쓴 묘를 적발하여 즉시 파내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한 사례로 볼 때, 19세기 중엽까지도 사산금표 내의 분묘 금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장지를 얻기 위해 쏟은 정성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장지조성에 마을사람들의 협조와 묵인이 필요했던 것은 금표 구역 내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왕선영도>와 비교 가능한 동시대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로 이한철(李漢喆)(1808~1880)이 그린 <석파정도(石坡亭圖)>(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를 들 수 있다. <석파정도> 제작시기를 전후한 1861년에 이한철과 조중묵은 철종어진도사에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조중묵이 이한철의 <석파정도> 제작 과정을 보았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조중묵이 몇 년 후 <인왕선영도>를 주문받았을 때 <석파정도>의 인상적인 연폭 실경산수를 본 경험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작품의 화풍 차이는 주문자의 취향과 제작 목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는 실경산수화와 선영도의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관람자의 지식수준과 주문자와의 친분, 관람에 들이는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자호, 본관이 일체 작성되지 않은 채 '박공(朴公)'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주문자인 박경빈의 인적 사항도 파악할 수 없었으나 다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가계를 미루어 볼 때 재력이 있음에도 지배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발문을 쓴 홍선주 또한 사대부로 보기 어려우며, 『승정원일기』 기록에 나타나는 경아전 서리일 가능성이 있다. 박경빈은 상류 계층에 진입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수적인 가치인 효(孝)를 강조하여 부친의 무덤을 명당으로 이전하고 <인왕선영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금제위반 적발에 대한 우려, 병풍의 다목적성 등의 이유로 본래의 제작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모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병풍이 제작된 지 47년 만에 각 폭이 분리된 채 미술상을 통해 이왕가미술관 소장품이 된 상황을 보더라도, 박경빈이 <인왕선영도>에서 꿈꾸었던 명당 발복과 가문의 신분상승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