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Layout and Structure of the Capital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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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대(遼代) 도성(都城)의 유형과 형태구조에 대한 고찰 (Consideration on the Type and Structure of the Capital City in the Liáo(遼) Dynasty)

  • 동신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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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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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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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요대(遼代)에는 오경(五京)이 설치되었다. 요(遼)의 상경(上京)이 수도이고 중경(中京)은 배도(陪都)이며, 다른 세 곳은 상징적 의미의 경성(京城)이다. 상경은 '일(日)'자형 구조로 중국 고대 도성제도의 새로운 모델이다. 중경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배치형태로 변량성(?梁城)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남경과 서경, 동경의 3경은 당(唐) 혹은 발해(渤海) 구성(舊城)의 기초 위에 개축한 것으로 원래의 도시 구조를 이용하였다. 요 상경의 구조와 계획은 금(金), 원(元), 청(淸)의 도성 구조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요(遼), 송(宋), 금(金), 원(元), 명(明) 등의 왕조에서는 다수의 경(京)이나 도(都)를 설치하였으며 대부분은 배도(陪都)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요대(916~1125년)에는 오경이 설치되었는데, 상경(上京) 임황부(臨潢府, 현 내몽고 파림좌기[巴林左旗] 임동진[林東鎭] 남쪽)는 요나라의 수도이고, 그 외에 동경(東京) 요양부(遼陽府, 현 요녕성 요양[遼陽]시 인근), 남경(南京) 석진부(析津府, 현 북경 광안문[廣安門] 밖 선무구[宣武區] 일대), 중경(中京) 대정부(大定府, 현 내몽고 영성[寗成]현 철장영자[鐵匠營子]), 서경(西京) 대동부(大同府, 현 대동시) 등이 있다. 본고에서는 계획이념과 형태구조 그리고 주요 배치 형태 등을 중심으로 요대 오경의 유형과 형태구조에 대한 기초적인 고찰을 하고자 한다.

북송 동경 변량성의 조영과 특징 (The characteristics of capital city plan of the BianLieng palace, the Dongjing Walled Town (東京城), the Northern song Dynasty)

  • Dashu, Qin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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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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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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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송대는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를 통틀어 중국 역사상의 중요한 전환기이며, 정치제도와 경제체제, 사상의식과 문화특징 등 모든 면에서 중요한 변혁이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당대(唐代) 후기에 시작되어 북송시기에 완성되었다. 물론 그 발전이 비교적 긴 과정을 거쳤지만, 그 변화는 거대하고도 본질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각 분야의 제도에 비교적 강력하게 나타났으며, 그 가운데 도성의 조직체계와 특징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송대 정치제도 변화의 핵심은 동한(東漢) 이래 형성된 사족문벌제도(士族門閥制度)가 철저하게 붕괴되고 황제를 중심으로 긴밀하고 완벽한 관료체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송대는 고도로 집중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었다. 이는 대략 재상(宰相)집단의 형성, 중앙정권의 권력분화, 황제의 지방통제 강화, 관리선출과 과거제도의 개선 등의 내용을 포괄한다. 이로부터 황제는 전 분야에 뻗치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었으며, 각종 제도의 제정은 황제의 권력과 지위 강화라는 목적으로 직결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동시에 송대는 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시기로, 농촌에서는 조전제(租田制)를 핵심으로 하는 생산구조가 형성되어 농업발전이 극대화되었고, 만당(晩唐) 시기부터 농업과 수공업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상품경제의 발전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여, 송대에 이르러서는 상업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크게 향상되고 나아가 도시경제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정치제도의 변화와 경제적 발전이 각종 도시제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글에서는 1980년대 초기 이후로 북송 동경 변량성(東京 지금의 河南省 開封市)에 대해 진행된 고고학적 작업을 정리하고, 또한 그 성과에 근거하여 북송 동경 변량성의 특징을 간략하게 종합해 보고자 한다.

조선후기(朝鮮後期) 충청도(忠淸道) 전의현(全義縣) 관아건축(官衙建築)의 배치구성(配置構成)에 관한 연구(硏究) (Site Layout of ChungChong-Do Chonui-hyon Government Office in the Late Chosen Dynasty)

  • 김기덕;이재헌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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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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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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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This study is to analyze site layout traditional government office building focused on Chonui-hyon(全義縣) in Chungchong province with Chungchong-do regional maps(忠淸道地方地圖) and Eupjis(邑誌, topography) being compiled in the late Chosun dynasty. The conclusion of analysi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1. Chonui-hyon(全義縣) in Chosun dynasty is gone with a planning principle of the capital city(Han-Seong, 漢城) with disposing Sa-Ji-Dan(社稷壇) and Gaek-Sa(客舍), which are placed to the left and right of Eupchi(邑治), and it is followed in the wake of the spatial structure of Chosun dynasty palace with disposing Dong-Heon(東軒) in front, Nae-A(內衙) at the back of it, or from side to side, also by the Dong-Heon of the center, with organizing each facility around it. 2. Dong-Heon and Gaek-Sa of Chonui-hyon is passed through three step gate, Mun-Ru(門樓), Woi-Sammun(外三門), Nae-Sammun(內三門), from Hong-Salmon(紅門), and are shown hierarchy by haying been placed at the end of approach axis. 3. Dong-Heon can be disposed by Feng-Shui(風水) which have influence on the southeast direction with Jin-San(鎭山) and An-Dae(案對), on the other hand, Gaek-Sa can be disposed by symbolic of the authority of a king. 4. Site layout by function of provincial government office is provided into four ferrite, Dong-Heon, Gaek-Sa, Nae-A, practical business territory, and eve territory is organized by official institution on a social position to radiation, by the compositive axis to be made Woi-Sammun Nae-Sammun Dong-Heon Nae-A 5. Approach process of Chnui-hyon government office is three door system similar to Kam-Young(監營) in a different way two door system in most provincial government office, also approach axis is formed by b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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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강도(江都)의 성곽과 궁궐 재고찰 (A reevaluation of the castles and palaces of Goryeo Gangdo (江都) using GIS)

  • 강동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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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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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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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강도는 39년간 고려의 수도였으며, 이는 개경의 재현이었다. 하지만 몽골군의 침입이라는 급박한 전시 상황과 강화도의 지형적인 특징 등으로 인해 개경과는 다소 다른 성곽 체제와 궁궐의 배치를 이루고 있었다. 강도의 성곽은 외성-중성-내성으로 구성된 3중성(重城) 체제로 이해할 수 있다. 외성은 가장 먼저 완성한 성곽이었으며 몽골군의 침입을 최전선에서 최우선으로 방비하기 위해 축조된 것이었다. 그 구간은 조선시대 외성의 휴암돈~화도돈이었다고 추정된다. 중성은 강화산성 외곽의 토축성인 현 '중성'으로 볼 수 있다. 이 성곽은 고고학적 조사에서 확인된 축조 수법의 정교함과 견고성을 통해 볼 때 치밀한 계획 하에 축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즉 중성은 강도의 도성으로서 궁궐, 관청, 민가 등을 보호하기 위해 18년이라는 장기간의 축성 과정을 거쳐 『고려사』에 기록된 바와 같이 '비로소' 완성되었던 것이다. 내성은 궁성적 성격을 지닌 성곽이었다. 조선시대 강화부의 '구성(舊成)'이 이에 해당하며 개경 구성의 규모와 거의 일치하였다. 내성은 궁궐을 포함한 주요 관부와 부속 시설이 위치한 궁성과 황성의 통합, 즉 복합적 기능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한편 궁궐은 개경에 준하였다는 문헌 기록에 근거하여 개경 궁궐도와 중첩한 결과, 승평문-선경전에 이르는 건축물의 중심축이 김상용 순절비각-고려궁지와 일치하였다. 따라서 강도의 궁궐은 기본적으로 개경과 동일한 건축물 배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내전과 부속 건물 등은 강화의 지형 조건을 감안하여 배치되었을 것이며, 이는 관청리 '궁골' 일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