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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산수(山水) 와유(臥遊)와 경산(京山) 이한진(李漢鎭)의 <속어부사(續漁父詞)> (Wayu during the late Chosun Period and Gyeongsan Lee Han Jin's )

  • 조은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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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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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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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이한진 편 "청구영언(靑丘永言)"의 편찬자인 경산(京山) 이한진(李漢鎭)(1732~1815)의 <속어부사(續漁父詞)>가 이한진의 문예 활동과 풍류적 지향, 그리고 조선 후기 사족들의 산수(山水) 와유(臥遊) 취미를 배경으로 창작되었으리라 보고 <속어부사>를 살폈다. 이한진은 외가인 안동(安東) 김문(金門)의 혈연을 바탕으로 연암 일파와 교유하였는데, 이들의 풍류 현장에 대한 기록에서 이한진의 음악적 기질과 풍류적 지향을 알 수 있었다. 이한진은 노년에 경기도 영평에 은거하였는데, 이때 편찬한 가집인 이한진 편 "청구영언"에 수록된 작품들의 주제적 지향과 이한진이 창작한 시조 작품들에서도 역시 이한진의 풍류적 모습이 확인 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은 번화한 도시 공간을 떠나 자연 속에 머물 수 없는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산수 자연을 추체험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와유(臥遊)였다. 이들에게 산수 유람의 실제 경험 유무는 그리 긴치 않은 문제였으며, 이들은 효과적인 와유를 위해 제 문예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한진과 그 주변 인물들의 문예 활동은 이 같은 당시의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한진이 경기도 영평에서의 산거(山居)에도 불구하고 <속어부사>를 창작한 것 역시 현재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하나의 자연 형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추체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한진의 <속어부사>는 어부 형상을 소재로 한 여타의 국문시가에 비해 좀 더 초속적인 자연 형상이 그려졌다. 실재의 자연 형상을 볼 수 없다는 현실적 정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핍진하게 묘사하여 효과적인 와유를 가능케 하고자 했던 욕망 사이의 긴장은 집구시의 성격을 강하게 띤 <어부사>라는 형식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