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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묘 건립과 숭의묘 제례악 (Soongeuimyo 崇義廟 Establishment and Soongeuimyo Jeryeak 祭禮樂)

  • 이정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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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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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7-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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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숭의묘는 유비를 주향으로 하고 관우와 장비를 배향한 것 외에도 제갈량·조운·마초·황충·왕보·주창·조루·관평 이상 8인을 종향한 사당이다. 배향 인물 중 관우가 포함되어 있어 관왕묘의 하나로 인식되고 논의되었다. 이는 기존에 있던 관왕묘인 동묘, 남묘, 북묘에 이어 '서묘(西廟)'라고도 불린 명칭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관우라는 인물을 모셨다는 공통분모 때문에 관왕묘와 숭의묘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숭의묘는 관왕묘와 차별되는 면모가 있다. 숭의묘는 배향인물의 측면에서 관왕묘보다 격이 높았고 아악·아악악현·육일무가 수반되어 사용되는 악무(樂舞)의 종류가 현격히 달랐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 1904년 4월 27일에 첫 봉안의식이 행해진 후 1908년 7월에 폐지되기까지 숭의묘제례가 행해진 기간은 불과 4년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덜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숭의묘 터를 조선총독부에서 고아원과 맹아원으로 사용해 버리는 바람에 그 묘역까지 철저히 훼손되어 숭의묘의 기억을 되돌릴 공간마저 잃어버렸다. 그러나 숭의묘제례는 조선의 전통적인 제례용 악무(樂舞)의 형태를 두루 갖추어 중사(中祀)격으로 행례된 중요한 국가제례의 하나였다. 또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후 대한제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강병책의 일환으로 구상된 제례로, 칭제(稱帝) 이후 환구제례와 더불어 새롭게 만들어졌으며, 대한제국 최후의 국가사전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