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Gorye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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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 희랑대사상(希朗大師像)의 특징과 제작 의미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Huirang Daesa Sculpture at Haeinsa Temple in Hapcheon)

  • 정은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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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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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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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희랑대사상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상으로 높이 82.4cm, 무릎폭 66.6cm, 앞뒤 최대폭 44cm에 이르는 등신상에 가까운 크기이다. 제작 기법은 승상의 앞면과 뒷면을 건칠과 나무를 접합하여 만든 것으로 동아시아의 유일한 사례로 주목된다. 유사한 기술이 나말여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에 이미 적용된 바 있어 이 시기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희랑대사상에 대해서는 18세기에 쓰여진 가야산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즉 승상의 가슴에 있는 구멍과 힘줄과 뼈가 울퉁불퉁하다는 등의 독특한 특징은 현재의 희랑대사상과 정확하게 부합된다. 가슴에 있는 구멍은 신통력의 상징으로 3~4세기에 활동한 서역의 승려 불도징(佛圖澄)의 가슴에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흑칠 상태였으며, 19세기에 현재와 같이 채색되었음도 알 수 있다. 봉안 전각은 해인사의 해행당(解行堂)과 진상전(眞常殿)이었으며, 이후 조사전과 보장전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승상의 제작과 봉안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문헌 기록에 등장하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매우 드문 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승상의 초상조각은 고려시대의 희랑대사상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제작된 나옹과 의상대사상 등 모두 네 구뿐이다. 이 가운데 희랑대사상은 고려 초기 10세기경에 제작된 상으로서 최고의 제작 기술과 사실적인 재현 그리고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다. 승상을 제작하여 숭배하고 신성시하는 전통은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다만 재료와 제작 기술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차이와 특이성을 보이며 발전하였다. 중국은 육신불(肉身佛)이 많은 편이며 일본은 건칠, 나무, 흙 등 시대마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많은 승상을 제작하였다. 저마다 다른 재료와 기법을 사용했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승상 제작은 승려의 참모습과 정신성의 성공적 표현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의 형성 배경과 인용서목 분석 (An Analysis on the Foundation Background and Cited References of Miscellaneous Explanations of Seongho (星湖僿說))

  • 손계영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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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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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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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성호 이익의 대표적인 저술인 "성호사설"에 인용된 문헌 443종을 추출하여 인용문헌의 규모 및 문헌의 성격, 중국본의 비중, 최신본의 비중, 주제별 비중 등을 분석하였다. "성호사설" 인용문헌 443종을 살펴본 결과, 고려 조선본이 전체 23.3%, 중국본이 76.7%를 차지하였고, 중국본의 편찬시기를 살펴본 결과, 송대 이전 편찬본이 70% 이상을 차지한 반면, 명 청대 문헌은 22.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용문헌의 주제별 비중을 살펴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영역은 역사서류(歷史書類), 시문집류(詩文集類), 유교경전류(儒敎經典類), 소설필기류(小說筆記類)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성호 이익은 이외에도 잡가류, 유가류, 지리류, 제도규정류, 서화음악류, 자전류, 전기류, 백과사전류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백제계 및 신라계 가구식 기단과 계단의 시기별 변화특성 (Transformation characteristics of stylobate and staircase of post-lintel Construction of Backje and Silla Style)

  • 남창근;김태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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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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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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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his study aims to classify the architectural formation of the Stylobate of and Staircase types of Post-Lintel Construction in Backje style and Silla style and also to figure out their specific elements by periods and transformation characteristics. The scope of this study was restricted to architectural remains between the Three Kingdom period and the Goryeo period. To progress the investigation, the study classified remains in a similar type by period and type, and then and analyzed its character based on formation method and specific factors of subsidiary materials. As a result, its type can be classified as Backje type(I), Silla type(II) and Mixed type(III). Regionally, it is found that Woongjin, Sabi and surroundings in the capital of Backje, Gyeongju and main towns in the capital of Silla, and Gaeseong and main towns in the capital of Goryeo. In particular, type III has the characteristics of type I and II simultaneously, which has one or two layers Jangdaeseok stone between the foundation stone of stylobate and plate stone, and tends to be decorative when Taengjuseok stone is installed. For types of staircase, it could be classified as 6~7C Backje type(I), 7~9C Silla type(II) and 9C Mixed type(III) according to the formation method of Somaetdol (banister of stone stair). And from the 9th century on, decorated Somaetdol stone type(IV) of 1/4 circle shape began to appear. The common feature of stylobate of post-lintel and staircase is that it became simplified, abbreviated and decorative. It seems to be intended to secure simplicity of construction or structural stability.

Creating Characters Based on the Portrait Paintings of the Chosun Period and the Death Records of the "Chosun-dynasty Sillok"

  • Jang, Sun-Hee;Kwon, Yu-Mi
    • International Journal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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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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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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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is study investigates the portrait paintings of the Chosun period and the Death Records of the Chosun-dynasty Sillok in an effort to find new methods to apply to character design. The basis of this study were 42 figures from a group of portrait paintings from the late Goryeo period to the Chosun dynasty of the 25th King, Chul-Jong. First, Chinese letters illustrating the personalities in the Death Records were classified into five groups based on the Big Five theory, which divides personalities into the Big Five Personality Traits of extraversion, agreeableness, conscientiousness, neuroticism, and openness. Secondly, a representative facial image was created through a morphing technique after extracting the portraits using a method that relied on the high frequency of the appearance of specific Chinese letters related to each personality type.

제주의 불교미술과 자복미륵 (A study of Jeju Buddhist art and Bok-sin Maitreyas)

  • 이경화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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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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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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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제주 불교미술에 대한 관심은 한국미술에서 조금 소외되어 있는 편이다. 이 글은 주요 제주 불교미술에 대한 서술과 자복미륵에 중점을 두어 분석하였다. 제주의 불교문화는 고려후기에 흥기하였다. 법화사는 원 황실의 원찰이자 고려의 비보사찰이었다. 묘련사에서는 1296년에 고려 조정에서 내린 불전을 받들어 제주도판을 다시 새겼고 이는 제주의 지식문화를 시사한다. 수정사 청석탑 부재에 새겨진 금강역사상은 고려 후기의 회화로 주목된다. 불탑사 오층석탑은 제주 현무암으로 만들어졌고 14세기 전반경의 체화된 제주불교미술이다. 제주의 조선시대 불교미술에서 자복미륵은 민간신앙화된 미륵의 세 유형을 합성하여 독특한 모습이다. 자복미륵은 원정모와 관복을 착용하였으며, 석인상형 미륵처럼 좌우에 놓여 지역을 살피고 지키며, 튀어나온 눈으로 호위하는 역사(力士)인 신장상형 미륵의 특징을 수용하였다. 따라서 자복미륵은 조선시대 세속화된 미륵의 유형을 분석하는 데에 의미 있는 형식이다. 자복미륵을 이해하는 데에 특기할 불상이 1471년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병립상, 1491년경 옥천 대성사 석불, 광주 십신사지 석불 등이다. 원정모형 보개를 지닌 불상은 조선전기에 집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미륵을 조선으로 끌어들여, 조선을 건설한 신진사대부의 모습에 기인하여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 진다. 공교롭게 옥천 대성사 석불입상의 조성에 제주목사를 역임하는 육한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복미륵은 그러한 불상들의 지역에 따른 변형에도 불구하고 연결고리를 확인하여 주었다.

조선 정릉(貞陵) 사각 장명등(四角長明燈) 양식의 원류와 전개 -사찰 석등과의 비교를 통해 - (The Origin of the Square-Shaped Jangmyeongdeung of Jeongneung Royal Tomb and Its Stylistic Development -In Comparison with the Buddhist Temple Stone Lanterns-)

  • 김지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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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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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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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장명등은 능묘의 능침 앞 중앙에 놓여 사자(死者)를 지키고 밝혀주는 상징적인 기능과 함께 뛰어난 조형성으로 능역을 장식하는 역할도 담당했던 중요한 석물로서, 석등의 한 범주에 속한다. 정릉 장명등은 조선왕릉 장명등 중 최초로 조성된 장명등이며, 조선 전 중기 왕릉 장명등 가운데 유일한 사각 장명등(四角長明燈)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석, 화사석, 옥개석 형식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어 팔각 장명등(八角長明燈)형식과는 완연하게 구분된다. 하대석, 간주석, 상대석을 1매의 통석으로 마련하고, 화사석은 1매의 통석으로 전후로 화창을 표현하였다. 정릉 장명등은 고려 현 정릉 장명등의 전통을 그대로 따랐으나, 이보다 뛰어난 조형성을 보이고 있어 조선 개국 이후 최초로 조성되었던 왕릉 장명등으로서의 격조를 무리없이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정릉 사각 장명등 양식의 원류를 파악하는 데 연구 목적을 두고 고려 왕릉 장명등과 더불어 사각 장명등의 연원이 되는 사찰 사각 석등과의 비교 고찰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고려 말 회암사지 지공선사 석등 및 나옹화상 석등, 조선 초 회암사지 무학선사 석등 및 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융탑석등과 다음의 공통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대석, 화사석, 옥개석 등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는 점, 둘째, 간주석이 낮아지면서 대석부분이 안정적인 형태를 이루는 점, 셋째, 화사석의 경우 대석 위에 양측으로 석재를 세워 자연스럽게 전후로 화창을 구성하는 방법, 넷째, 옥개석이 사모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점 등이다. 한편 정릉 장명등에는 불교적 요소가 다분히 내제되어 있는데, 간주석의 삼주문(三珠文)표현이 그것이다. 삼주문은 밀교와 관련된 상징물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불화 및 조선 초기 보살상의 보관에 표현된 예가 확인된다. 정릉 장명등은 이후 묘 사각 장명등 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15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점차로 정릉 장명등의 영향에서 벗어나 팔각 장명등 형식이 보다 많이 가미된 경향으로 변모해 나간다. 정릉 사각 장명등은 고려왕릉에서 조선왕릉으로의 능제 계승, 사찰 사각 석등 양식의 수용, 그 시대 불교사상의 반영 등 당대의 시대상과 문화의 흐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진 산 증거물로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서산 산동리 고려시대 도기의 물리화학적 및 고고과학적 특성 (Physicochemical and Archaeometric Characteristics of Goryeo Period Potteries from the Sandongri in Seosan, Korea)

  • 이찬희;진홍주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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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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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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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서산 산동리 출토 고려시대 도기를 대상으로 물리화학적 및 고고과학적 특성을 분석하였다. 도기의 표면색은 주로 회청색을 보이나, 바탕흙이 용융된 것으로 보이는 자연유가 나타나며, 부분적으로 소성과정에서 가스가 방출되어 생긴 부푼 흔적이 관찰된다. 대부분 시료에서 $1({\times}10^{-3}SI\;unit)$ 이하의 전암대자율 값을 갖는 것과 전체적인 산출상태 등으로 보아 유사한 태토로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도기의 비중, 공극률 및 흡수율은 크게 두 그룹으로 구분되며 부푼 흔적이 있는 시료에서 차이를 보인다. 태토는 점토를 사용하였으며, 석영이 관찰되고 일부 시료에서는 유색광물이 확인된다. 분석 결과를 종합할 때, 도기는 견고하고 치밀한 기질에 석영과 뮬라이트가 공통적으로 검출되는 것을 보아 $1,100^{\circ}C$ 내외에서 소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도기과 번조받침의 지구화학적 거동특성을 살펴보면, 주성분원소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희토류, 호정 및 불호정원소가 상당히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따라서 도기제작은 동일 종류의 기반암에서 거의 동일한 진화경로를 거친 성인적으로 유사한 태토를 사용하였으며 정선과정을 거쳐 만든 것으로 해석된다.

청평사(淸平寺) 선원(禪園)의 시대적(時代的) 형성(形成)과 변천상(變遷相) (The Periodical Formation and Phase of Change of Cheongpyeongsa Temple Zen Garden)

  • 윤영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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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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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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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청평사는 고려 초 창건되었지만 현재와 같은 공간의 틀은 고려 중기 진락공 이자현(1061-1125)이 1089년 입산해 선사상을 바탕으로 구축한 것이다. 이 연구는 이자현이 청평사의 기반을 구축한 문수원 이후 형성, 발달했던 선원 내 인공유적의 출현과 존속의 시대사적인 변천과정을 고문헌을 근거로 하여 개념적으로 구현해 보고자 하였다. 이자현의 문수원 때 조성된 경외 8암자 중 식암, 견성암, 양신암 등 세 암자만이 조선 후기까지 복원, 수리를 거쳐 건재하며 상징적 암자로 보존되어 왔다. 또 이자현 때 조성된 영지도 고려시대 연못의 원형적 의미를 지닌 소중한 조경유적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자현이 식재했다는 구송은 후계수를 이어가며 1800년대 중반까지 살아있었다. 조선 중기 보우대사(1509-1565)는 이자현이 구축한 문수원을 기반으로 청평사로 개칭하고 중창하면서 경내를 능인전(대웅전)만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 짓고 확장하여 현재와 같은 경내 공간구조로 만들었다. 또 경외 영지의 개축, 궁원으로부터의 조경식물 이식 등 경관의 질을 한층 높여 청평사를 역대 가장 번성한 모습의 선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인 1800년대 중반 이후 청평사는 더 번성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선원의 건축물은 경내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소멸되고 기타 시설물들은 방치된 채로 현대까지 남아 있었다.

고려말 사경의 감지(紺紙) 재현과 수리 - 이화여자대학교 소장 감지은니묘법연화경을 중심으로 - (The Restoration and Conservation of Indigo Paper in the Late Goryeo Dynasty: Focusing on Transcription of Saddharmapundarika Sutra(The Lotus Sutra) in Silver on Indigo Paper, Volume 7)

  • 이상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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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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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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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고려시대의 사경은 어느 시기보다도 정교하고 화려한 기록물로 우리나라 서지학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감지(紺紙) 바탕에 제작된 사경은 장식성과 귀족들이 선호하였을 법한 품위와 격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 제작된 많은 양의 사경들은 감지에 권자본(卷子本)과 절첩본(折貼本)의 장황 형태가 대표적인 것이다. 권자본은 유연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자체가 갖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취급에 있어 불편함과 손상을 야기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절첩 형태로 바꿔 제작함으로써 편의성과 구조적인 안정성을 꾀하여 단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절첩 형태는 병풍의 형태와 유사하여 접었다 펼 수 있는 구조로 한 면의 크기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연결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리 작은 크기라 하더라도 얇은 한지로 제작하면 취급에 어려움이 따르고, 형태를 유지하기 힘든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통상 절첩형의 사경은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 첩의 구조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하였으며, 표지는 내지보다 더 두껍게 제작되어 내지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절첩형'은 종이에 두께를 주어 강도를 유지해야 하는 특성에 맞게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양의 한지를 진하게 염색 가공하는 것은 오롯이 장인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비단에 비해 흡수량이 몇 배 이상이고, 수십 차례 염색을 하여야만 진한 감색을 얻을 수 있는 '감지 제작 기법'은 구체적으로 문헌에 남아 있지 않고, 기법도 명맥이 끊긴 지 오래이다. 최근 한지장인과 천연염색가, 수리복원가에 의해 제각기 시도는 되고 있으나 유물에서 보이는 질감과 깊은 색감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본 연구에서는 고려 말 사경을 보존 처리하기 위해 실제 유물에 적합한 보강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염색장과 한지장, 그리고 수리복원가의 협업으로 고려시대 감지를 재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소개하고, 감지의 재현·제작 방법을 유추해보고자 한다.

한증법(汗蒸法)을 통해 바라본 조선조(朝鮮朝) 불교의학(佛敎醫學)의 일면(一面) (An Aspect of Buddhist Medicine in Joseon Dynasty Studied through Sauna Therapy)

  • 이유진;안상우;김동율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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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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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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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Sauna, or hanjeung (汗蒸) is a physical sweating method that uses external heat to forcibly raise body temperature to treat cold damage disorders (傷寒) in traditional Korean medicine. This study focuses on the fact that the sauna was recorded as a healing and bathing method on the Vinaya Pitaka (律藏), and investigates the records of folk sauna therapy of Joseon Dynasty from the perspective of Buddhist medicine which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ancient medicine history in Korea. Although the word 'hanjeung (汗蒸)' first appeared in "The Veritable Records of King Sejong (世宗實錄)" in the Korean literature, this study aims to confirm the possibility that the tradition of Buddhist sauna bathing has already existed since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Korea, based on the fact that sauna bathing was recorded in the Vinaya Pitaka and that the ancient Buddhist bathing culture was introduced in ancient Japan. In addition, the succession of the Buddhist sauna tradition by Goryeo will be traced back through the records of 1920s urban saunas in Gaesung (개성) which was the old capital of Goryeo and had a strong tendency to adhere to traditional Goryeo customs. Finally, the study tries to identify the elements of the Buddhist sauna bathing on the records of folk sauna therapy in the Joseon Dynasty. As a result, this study examines how the Buddhist sauna bathing culture in ancient Korea, which was led by medical monks, spread in the general public and influenced the folk sauna therapy in the Joseon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