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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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괴 기술을 활용한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의 표면오염물 분석과 물성진단 (Analysis of Surface Contaminants and Physical Properties of the Daejanggakgibi Stele of Silleuksa Temple using Non-destructive Technology)

  • 김지영;이명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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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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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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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는 불경을 만들어 보관하던 곳인 대장각의 조성에 관한 기록이 적힌 고려시대의 비석이다. 비신은 변색이 일어나고 수십 개의 균열이 발생하였으며 부분적으로 결실되어 명문이 일부 훼손된 상태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석조유산에 적용할 수 있는 비파괴분석법을 활용하여 대장각기비의 재질조사, 휴대용 X-선 형광분석, 초음파 물성진단을 실시하였다. 재질조사 결과, 비신은 담회색 결정질 석회암으로, 받침석, 지지석, 옥개석은 중조립질 흑운모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대장각기비의 변색오염물은 휴대용 X-선 형광분석 결과 철(Fe)이 원인물질로 판단되었다. 분포양상으로 미루어 비신과 개석 사이에 철을 함유한 물질이 산화되어 흘러내리고 이후 생물이나 유기질 오염물이 부착되면서 황색과 흑색 오염물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초음파 물성진단 결과, 신선한 암석(FR)부터 완전히 풍화된 암석(CW)까지 다양한 풍화도를 보였고 평균 풍화도지수는 3등급(보통)으로 산출되었다. 균열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지점은 완전히 풍화된 단계(CW)로 판정되었고, 비신 상부와 하부에 분포하는 일부 균열은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균열에 대해서는 향후 거동 모니터링과 보강대책 수립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의 재질특성과 손상특성 연구 (Study on the Material and Deterioration Characteristics of the Stone Seated Buddha Triad and Stone Standing Buddha in Bijung-ri, Cheongju, Korea)

  • 유지현;최명주;이명성;김유리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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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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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8-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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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은 6세기 고구려 불상의 양식을 갖춘 중요한 국가지정문화재(보물)이다. 이들 석불상의 보존현황 파악 및 보존계획 수립을 위해 보존과학적 조사를 수행하였다.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의 구성암석은 세립 내지 중립의 전형적인 흑운모화강암으로, 0.2(×10-3 SI unit) 미만의 낮은 대자율 분포, 구성광물에서 서로 유사한 특성을 보여 동일한 기원의 암석으로 판단된다. 석조여래삼존상은 인근 노두의 암석과 광물 조성 및 입도, 전암대자율, 지구화학적 특성이 매우 유사하였으므로 성인적 동질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비중리 석조불상에서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석조여래삼존상과 여래입상 모두 전면에서 탈락이, 후면에서 균열과 박리박락이 우세한 경향을 보였다. 야외에 위치한 석조여래입상에서는 입상분해와 흑색조류가 발달하여 열악한 보존환경과 함께 풍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초음파속도를 이용한 비파괴 물성진단 결과, 석조여래삼존상과 여래입상의 풍화등급은 완전 풍화된 상태(CW)로 나타나 매우 낮은 물성을 지시하였다.

한국 아쟁(牙箏)과 중국 알쟁(軋箏)의 악기학적 고찰 (Consideration of Korean Ajaeng and Chinese Yazheng Based on Organology)

  • 이유정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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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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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7-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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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아쟁(牙箏)은 현재까지 원형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터류 찰현악기로 전통음악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창작 국악에서도 중요한 악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존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음악사적 연구의 자료가 충분치 않아 악기학적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본 연구는 아쟁의 악기학적 고찰을 위해 역사적으로 유래가 같은 중국 알쟁(軋箏)의 문헌기록과 음악도상(圖像)자료 등을 통해 지터류 찰현악기의 기원, 악기의 형태, 연주자세를 살펴보았다. 분석결과 중국 알쟁과 한국 아쟁은 중국의 고대 전통악기인 축(筑)의 한 형태가 기원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동류 지터류 찰현악기이지만 중국의 알쟁은 연주되는 목적과 장소에 따라 악기 형태가 달랐고, 연주자세도 서서 어깨에 고정시키거나 악기를 지면에 수평으로 고정시켜 연주하는 방법이 있었다. 한국의 아쟁은 고려 때 중국에서 전해진 악기의 형태와 바닥에 앉아서 받침대 위에 악기를 놓고 연주하는 방식이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전승되어 왔다. 이번 연구를 통해 악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음악사적 의의를 찾아봄으로써 전통음악과 국악기에 대한 보존과 발전을 위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한국과 중국 전통악기 연구자들의 학문적 교류와 공동연구를 통해 악기학에 대한 다각도적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청양 록평리 유적 석곽묘 석재의 재질특성 및 산지탐색 (Investigation of Source Area and Material Characteristics of the Stone Properties from Stone-lined Tombs in Cheongyang Rokpyeong-ri Site, Korea)

  • 최일규;송준호;이보선;이찬희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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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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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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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청양 록평리 유적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여러 기의 석곽묘가 발굴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15기의 석곽묘를 대상으로 암석광물학적 및 지구화학적 특성을 분석하여 암종과 점유율을 검토하고 석재의 산지를 해석하였다. 석곽묘 부재로 사용한 암석은 흑색 사암, 잡사암, 점판암, 역암 및 편마암 등 5종이다. 전암대자율 측정 결과, 석곽묘와 추정산지의 동종 암석은 모두 같은 범위에 도시되며, 지구화학적 거동특성도 연구대상과 추정산지 석재의 유사성이 높게 나타난다. 석곽묘의 석재는 추정산지 암석과 성인적으로 동일하며, 유적의 기반암과 500m 이내에 분포하고 있어 특별한 조달체계 없이 현장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석재들은 특별한 치석 없이 약간의 할석을 통해 축조한 것으로 판단되나, 일부 석곽묘의 부석시설로는 균질한 흑색 사암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석재의 인위적인 선별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당진 신암사 금동여래좌상의 표면특성 분석과 비파괴 정밀진단을 통한 제작기술 해석 (Interpretation of Making Techniques through Surface Characteristic Analysis and Non-destructive Diagnosis for the Gilt-bronze Seated Buddha in Dangjin Sinamsa Temple, Korea)

  • 최일규 ;양혜리 ;한두루 ;이찬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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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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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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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당진 신암사는 고려 후기에 창건된 사찰이며, 경내의 극락전에는 금동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의 개금층은 박락과 광택이 저하되는 등 여러 손상이 발생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재료학적 분석과 비파괴 진단을 통해 불상의 내부와 외부에 대한 보존상태를 정밀 검토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제작기법을 해석하였다. 이 결과, 개금층은 순금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되며 안료에서 흑색은 먹, 녹색은 석록과 염화동 및 동록 등으로, 적색은 연단 또는 진사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손상도 평가 결과, 개금층의 벗겨짐, 균열, 탈락 및 박리 등이 확인되나 보존상태는 비교적 건전하다. 그러나 개금층의 광택은 유지부에 비해 저하부가 더 넓게 산출된다. 이 불상에 대한 초음파 속도측정 결과 1,230~3,987(평균 2,608)m/s로 비교적 넓은 범위를 보였으며, 적외선 열화상으로 박리는 확인되지 않았고 특별한 접합흔도 발견되지 않는다. 내시경 검사에서는 내부 소지금속의 부식과 생물학적 피해가 다소 관찰되었으며, 봉안된 복장물이 확인되었다. 이를 종합하여 제작기법을 검토한 결과, 이 금동여래좌상은 통주조로 제작하였으며 주형을 거꾸로 뒤집어 용탕을 주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포항 칠인정원림(七印亭園林)의 조영특성과 '괴목(槐木)' 식재(植栽)의 문화변용(文化變容)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Design and Acculturation of Planting of 'Guǐ(槐)' in Chirinjeong Wonlim of Pohang)

  • 노재현;한상엽;김정문;정푸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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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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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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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포항 칠인정원림의 건립취지, 조형의도 그리고 변천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조 누정 조영의 시대적 감각과 조영의장을 조명하고, 원림내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식재의 문화변용 현상을 살펴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2주의 괴목(槐木) 식재로 인해 쌍괴정(雙槐亭)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은 칠인정(七印亭)은 고려말 관료 출신의 장표(張彪)가 태종9년(1409) 초곡리 사일마을에 건립한 은거형 정자이며, 칠인정원림은 쌍계구곡(雙溪九曲)의 제3곡인 초곡(草谷)의 핵심이기도 하다. 칠인정원림은 사일마을 비보숲 초입의 진입부(進入部)와 칠인정 및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로 이루어진 정자부(亭子部) 그리고 방지방도(方池方島)의 지당과 배롱나무로 이루어진 지당부(池塘部)로 구분된다. 칠인정 기문 내용이나 아들과 사위 7인의 인수(印綬)를 쌍괴수(雙槐樹)에 내건 것에서 기인된 당호(堂號)로 볼 때, 초건 시 식재한 괴목과 그 이후 보식(補植)한 수종 또한 삼공(三公)의 지위와 학자수(學者樹)를 상징하는 회화나무(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뿐만 아니라 영조21년(1745) 보식한 수종이 현재 칠인정에 존치하는 느티나무(괴)라고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칠인정 담장 밖의 회화나무가 당시 식재한 그 수목임을 배제할 수 없다. 요컨대 느티나무와 함께 칠인정원림에 심겨진 3주의 회화나무는 인동장씨 후손들이 회화나무(홰)와 느티나무(괴)의 차이점을 인식하였음을 알리는 최소한의 징표가 아닐 수 없다. 회화나무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한편으로 회화나무로, 다른 한편으로 느티나무로 인식되었고 점차 구입용이성, 성장속도, 장수목으로의 성장가능성에서 회화나무와 비교우위에 있는 느티나무를 회화나무 대용(代用)으로 혼용한 자발적 문화변용 현상을 칠인정원림의 괴목 식재사례를 통해 목도(目睹)하게 된다.

소상팔경(瀟湘八景), 전통경관 텍스트로서의 의미와 결속구조 (A Study on the Meaning and Coherence of Sosangpalkyung as a Text of Traditional Scenery)

  • 노재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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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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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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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소상팔경은 중국에서 태동하여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시와 그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전통 경관의 원형을 이끄는 문화현상으로 자리하였다. 지금까지 팔경 등 '경(景)'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정작 국내 팔경문화의 원류가 되는 소상팔경의 형식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조경학적 연구 성과는 찾을 수 없다. 본 연구는 '문화경관 텍스트'로서의 소상팔경가와 소상팔경도에 담겨진 정형적 모습은 무엇이며 소상팔경이라는 문화현상 속에는 과연 어떠한 인식체계와 사유방식(思惟方式)의 결속구조가 엮여져 있는가를 밝히기 위해 시도되었다. '팔(八)'의 상징성을 정리하고 경관 어휘소의 분절 및 해체를 통해 '소상팔경' 각 경의 표층구조와 상관관계를 기호학적 관점에서 아이콘과 코드로 풀이하는 한편 텍스트 '소상팔경가'와 '소상팔경도'의 결속구조와 그 의미를 파악하였다. 소상팔경은 음양관과 팔괘(八卦)를 기본으로, 인생과 자연의 순환 및 변환 원리를 문자와 그림 텍스트로 정리한 언어기호이며, 문장의 문법적 구조와 형식은 단어의 상징성을 강조한 함축언어를 유사성과 대비성의 원리로서 전개 대응시킴으로서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의식 안으로 옮겨오려고 시도한 결속구조와 결속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소상팔경'은 다양한 경관 요소를 일정한 형식과 구조의 틀 속에서 배열함으로써 인생과 자연의 생멸 과정과 교감 그리고 소통을 변증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상팔경의 이미지 기호는 결국 인생과 자연의 순환론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시간 및 계절 순환체계에서 인간이 관조하여 바라본 서사적 풍경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입된 "소상팔경"의 문화현상은 성리학적 풍경으로 덧칠되면서 조선의 문예미학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 결속구조는 조선의 색채 풍경으로 변형되었지만 결속력은 꾸준히 전승되어 전래 문화경관의 기본 텍스트이자 한국적 풍경의 원형이 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석인상의 조영시기와 훼손도 진단 및 보존관리 (The Damage Assessment, Construction Point of Time and Deterioration Diagnosis and Conservation Maintenance of Stone Statues Around the Stone Pagoda in Mireuksaji Temple in Iksan)

  • 이동식;이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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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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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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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익산 미륵사지 석탑 석인상은 639년경 석탑이 조영된 이후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에 탑 주변에 조성되었다. 이 석인상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며, 탑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석인상의 표면은 삭박되어 뚜렷한 도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있다. 그러나 남서 석인상은 세 방위(서북 북동 동남)에 놓인 석인상에 비해 물성은 약하지만 도상이 뚜렷하게 잘 남아 있다. 이러한 석인상의 표면 상태는 석인상이 위치한 노출환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세 방위에 놓인 석인상은 그동안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남서쪽에 놓인 석인상은 17세기경 석탑 주변에 석축을 축조하면서 석축 안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외부 저해환경으로부터 차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약 400여 년간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던 석인상은 차별적인 풍화현상을 보인다. 즉 세 방위(서북 북동 동남; $176{\cdot}109{\cdot}273kgf/cm^2$)에 놓인 석인상은 원래 물성이 좋았지만 삭박에 의해 도상이 불분명하고 생물의 침해가 심한 반면, 남서쪽에 놓인 석인상은 원래 물성($133kgf/cm^2$)은 좋지 않았지만 흑색오염물과 입상 분해 현상이 관찰될 뿐 도상형태가 잘 남아 있다. 석인상을 외부에 그대로 노출시켜 보존하는 것은 석인상의 형태적 보존을 위해서 권장할 만한 보존 관리방안이라 할 수 없다. 미륵사지 주변에 대한 미기후 환경 데이터를 적용해볼 때 미륵사지는 해를 거듭할수록 강산성비가 내리는 강한 풍화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인상의 형태적 보존을 위해서는 석인상이 있었던 원래의 위치를 고려한 보존 관리방안보다는 현재의 도상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는 보존 관리방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서양 해자(垓字)의 역사와 문화적 해석 (An Historical and Cultural Analysis on the Eastern and Western Moat)

  • 정용조;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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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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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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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해자란 성벽 외곽에 파 놓은 못 또는 물길로 적이 성벽에 직접 접근할 수 없도록 하거나 이를 경계로 공간을 구분하고자 설치된 시설의 하나로,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 서양에서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방어 기능으로부터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 수단으로, 지반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역사적으로 고대로부터 중세, 유럽, 아시아, 미국 등에서 존재하였다. 또한 해자는 물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 활동과 동물들의 서식처 장소를 제공하는 등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복원 계획에 있어 해자의 복원에 대한 고려가 미비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동 서양 해자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여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해자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연구로 해자의 기원, 시대적 고찰, 사상적 배경, 서양 해자의 역사와 문화, 동양의 한국, 중국, 일본 해자에 대하여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나라의 해자는 고구려 도성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의 도성에 모두 존재하였으며, 천연의 해자인 넓은 강을 끼고 적들이 기어오르기 힘든 산 능선을 따라 성을 쌓은 자연적 해자와 성벽 밖에 인공적 해자를 설치하여 적의 접근을 방지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해자를 방어적 기능으로 활용하였다. 2. 해자의 설치는 성벽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넓고 깊게 파는 것이 보통이며, 성의 외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시설이 설치되었는데, 성 밖에 있는 해자는 방어력을 높이는 것 외에도 지반을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해자는 물이 있어 접근을 제한하며, 낮은 벽이나 담장은 경계를 물리적으로 분리시키지만 해자는 열린 공간으로 시각적 특성을 살려 경계 및 방어 수단을 가지면서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나 근처의 나무도 정원 안으로 차경할 수 있게 한다. 3. 낙안읍성은 풍수지리적으로 청룡(동천)의 기가 드센 관계로 청룡의 흐름을 "S"자로 꺾어 흐르게 함으로써 기를 꺾을 수 있었으며, 몽촌토성은 해자의 복원으로 공원에 풍부한 수경 요소를 제공하는 경관요소로 활용하였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는 자연이라는 진경 속에 선조들의 삶과 문화가 공간 속에 설득력 있게 배어든 역사와 문화적 경관이 표상이다. 4. 중국의 자금성 성벽은 찹쌀에 흙을 반죽하여 다져 넣어 매우 견고하며, 해자의 폭은 52m, 깊이는 6m로 자금성 성벽을 에워싸고 있어 적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었다. 5. 일본의 해자는 도시에 있어 수로 역할을 하였으며, 보트놀이, 배낚시, 레스토랑 등의 레저시설이 설치되어 도시민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었다. 6. 한국의 해자는 중국의 자금성, 일본의 에도성, 오사카성보다 규모가 작으며 동양의 해자는 왕궁이나 읍성을 보호하기 위해 해자를 설치하였으나, 서양에서는 왕이나 영주, 대저택, 부호들의 저택 등을 보호하기 위해 해자를 설치하였다.

주돈이와 권근의 천인합일사상 비교 - 『태극도설』과 『입학도설』을 중심으로 - (The Comparison of 'Oneness between Heaven and Man(天人合一)' thoughts between Zhoudunyi(周敦頤) and Kwonkun(權近) - Focusing on "Taijirushuo (太極圖說)" and "Ip-Hak-Do-Seol(入學圖說)")

  • 허광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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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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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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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논문은 주돈이가 "태극도설"에서 제시한 천인합일사상과 권근이 "입학도설"에서 제시한 천인심성합일사상을 비교하여 그 차이를 규명하고자 한 시도이다. 수양론 중심의 실천적인 사상으로 발전해 온 천인합일사상은 송대 주돈이가 "태극도설"에서 형이상학적 우주론과 인성론으로 정리하면서 철학적 깊이와 논리적 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는 천(天)에 상응하는 무극(無極)의 개념을 세워 무극-태극-음양-오행-인간-만물의 일원적 우주론을 제시한다. 그의 우주론은 만물의 창조자인 천(天)은 피조자인 인간과 명(命)과 성(性)을 매개로하여 결부되는 합일의 관계라는 인식이다. 따라서 본성을 회복하여 자기의 본성이 천명(天命)임을 알면 곧 천인합일이 실현되고 성인도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돈이의 사상은 약 120년 뒤 주희에게 와서 이기론 으로 융합된 주자학으로 집대성 된다. 이에 따라 주돈이는 주자학의 시조로 후대에 평가된다. 고려 말 권근은 그의 "입학도설"에서 천인심성합일사상을 제시한다. 권근의 천인심성합일사상은 그의 스승인 이색의 천인무간사상에 주자학적 요소를 가미하여 내 마음의 작용과 리(理)가 일체라고 정리함으로써 논리적 정합성을 이룬다. 주돈이가 주로 우주와 만물의 생성원리에 대해 관심을 기진 것에 반해 권근은 주로 심성론적 관점에서 천(天), 인(人), 심(心), 성(性)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또한 경(敬)중심의 수양으로 천인심성합일을 이룰 수 있다고 제시한다. 권근의 이런 사상은 조선조 주자학이 심성론 중심으로 발전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의 사상은 약 150년후 퇴계 이황에게 와서 사단칠정론과 경(敬)사상으로 집대성 된다. 그러나 주돈이와 달리 권근은 그의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