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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강도궁궐 위치 연구 (A Study on the Location of Goryeo GangdoPalace)

  • 빈경민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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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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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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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iew the research on Gangbang Palace and to presume the location of the palace through the study of feng shui. when the Mongols invaded, Ganghwado was the capital, moved from Gaegyeong and it was maintained for 39 years. At that time, the palace construction followed the palace of Gaegyeong, and the names such as Gujeong毬庭, Palace, and Sasa寺社 were the same as those of Gaegyeong. However, despite several archaeological excavations at Goryeo Palace Site, Historic Site No. 133, no actual remains of the Goryeo period were found. After the negative opinions on the current Goryeo Palace site became public, there have been several previous studies on the estimation of the location of the Goryeo Palace Site, and although there have been achievements, the location of the Goryeo Palace is still not confirmed. The key to presuming the location of the GangdoPalace江都宮闕 is first, whether the palace was located in the south of Songaksan, and second, at what point it was located in the south of Songaksan. As to whether the palace was located in the south of Songaksan, it was presumed that the Chiso治所 of Ganghwabu was located in Gukhwari, referring to the record in 『Shinjeungdongguknyeojiseungnam新增東國輿地勝覽』 that Goryeosan, a guardian mountain鎭山, was 'five ri west of Bu府西五里'. Accordingly, the location of the palace of 'Budongsimni 府東十里' in the old literature was estimated to be south of Songaksan Mountain. Also, the location of the palace on the south side of Songaksan was approached from a feng shui theory. Three places for the palace to be located are presumed to be 'Ganghwa Girls' High School', 'Seonggwang Church', or 'Above the Ganghwa-gun library', and the central axis of the palace is estimated to be 'Above the Ganghwa-gun library' where the corridor-type building relics were found among them, and the other two areas were presumed to be other buildings within the palace.

고려 강도(江都)의 성곽과 궁궐 재고찰 (A reevaluation of the castles and palaces of Goryeo Gangdo (江都) using GIS)

  • 강동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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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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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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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강도는 39년간 고려의 수도였으며, 이는 개경의 재현이었다. 하지만 몽골군의 침입이라는 급박한 전시 상황과 강화도의 지형적인 특징 등으로 인해 개경과는 다소 다른 성곽 체제와 궁궐의 배치를 이루고 있었다. 강도의 성곽은 외성-중성-내성으로 구성된 3중성(重城) 체제로 이해할 수 있다. 외성은 가장 먼저 완성한 성곽이었으며 몽골군의 침입을 최전선에서 최우선으로 방비하기 위해 축조된 것이었다. 그 구간은 조선시대 외성의 휴암돈~화도돈이었다고 추정된다. 중성은 강화산성 외곽의 토축성인 현 '중성'으로 볼 수 있다. 이 성곽은 고고학적 조사에서 확인된 축조 수법의 정교함과 견고성을 통해 볼 때 치밀한 계획 하에 축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즉 중성은 강도의 도성으로서 궁궐, 관청, 민가 등을 보호하기 위해 18년이라는 장기간의 축성 과정을 거쳐 『고려사』에 기록된 바와 같이 '비로소' 완성되었던 것이다. 내성은 궁성적 성격을 지닌 성곽이었다. 조선시대 강화부의 '구성(舊成)'이 이에 해당하며 개경 구성의 규모와 거의 일치하였다. 내성은 궁궐을 포함한 주요 관부와 부속 시설이 위치한 궁성과 황성의 통합, 즉 복합적 기능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한편 궁궐은 개경에 준하였다는 문헌 기록에 근거하여 개경 궁궐도와 중첩한 결과, 승평문-선경전에 이르는 건축물의 중심축이 김상용 순절비각-고려궁지와 일치하였다. 따라서 강도의 궁궐은 기본적으로 개경과 동일한 건축물 배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내전과 부속 건물 등은 강화의 지형 조건을 감안하여 배치되었을 것이며, 이는 관청리 '궁골' 일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