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Full scaled experi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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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M 터널에서 강지보와 숏크리트 합성부재의 하중지지력에 관한 연구 (A Study on Load Bearing Capacity of Composite Member with Steel Rib and Shotcrete in NATM Tunnel)

  • 문상화;신영완;김승환;유한규
    • 대한토목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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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5C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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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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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NATM터널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지반조건이 불량한 경우 숏크리트에 격자지보나 H형강 등의 강지보를 보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설계 시 강지보를 숏크리트가 경화되기 전 임시지보재로 간주하여 수치해석 시 고려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수치해석에 고려하더라도 모델링 방법이 다양하다. 본 연구에서는 휨강도실험, 압축강도실험, 그리고 실대형실험을 통하여 강지보와 숏크리트 합성부재의 거동과 하중 부담률을 분석하였다. 또한 실험과 같은 조건에서 숏크리트와 강지보의 고려방법을 달리하여 수치해석을 실시하여 실험결과와 비교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숏크리트와 강지보는 경계면에서의 미끄러짐(slip)으로 인하여 일체로 거동하지 않으며, 수치해석 시 휨모멘트는 강지보가 모두 부담하고 축력은 숏크리트와 강지보가 압축강성비에 따라 분담하는 것으로 고려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고강도 대형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보의 전단거동과 경사진 프리스트레싱 긴장재의 영향 (Shear Behavior of Large Prestressed Concrete Beams Cast with High Strength Concrete and the Effect of Draped Tendon on their Shear Behavior)

  • 김강수
    • 콘크리트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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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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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63-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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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본 논문은 고강도 콘크리트로 타설된 2개의 대형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보로부터 얻어진 4개의 전단실험 결과를 고찰하였다. 특히 경사진 프리스트레싱 긴장재가 부재의 전단거동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히 분석하였다. 본 실험에서 경사진 프리스트레싱 긴장재를 사용한 부재는 직선 프리스트레싱 긴장재를 사용한 부재에 비해 높은 초기전단균열강도와 전단강도를 가졌다. 또한 실험 결과는 경사진 프리스트레싱 긴장재의 사용이 부재 단부에서 긴장재의 미끄러짐을 감소시켜주는 것으로 관찰되어 부재 단부에서 크게 요구되는 단부 정착력을 분산시키는데 효과적임을 보여주었다. 실험 결과로부터 얻어진 부재의 전단강도는 ACI 318-02와 AASHTO LRFD의 전단설계기준에 의하여 계산된 값과 비교 분석되었다. 두 전단설계기준은 모든 시험체에 대해 안정적인 전단강도를 제공하였으며, 특히 경사진 프리스트레싱 긴장재를 가진 부재들에 대해서 실험결과에 비해 매우 낮은 전단강도를 제공하였다.

안확의 '조선' 인식과 '조선철학' (An Hwak's Recognition of 'Joseon' and 'Joseon Cheolhak')

  • 이행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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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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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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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화한 일제의 '조선' 연구가 식민 정책의 일환이었다면 그에 대항하는 조선 연구는 국권 회복과 자주 독립의 염원을 담고 있었다. 이는 당대 '조선'이라는 개념이 발화주체에 따라 그 안에 내포된 의미와 지향이 상이했음을 의미한다. 대한제국의 소멸과 함께 근대 국가 건설은 좌절됐지만 민족의 이념 지형 안에서 '조선'은 새롭게 발견되었다. '조선'은 과거의 경험을 응축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아내는 역사적 기본개념이 되어갔다. '조선학'은 학술의 장에 국한된 지식인들 사이의 담론이었으나, '조선'은 그 내 외부의 보다 다양한 사회 주체들의 발화를 포괄한다. 더욱이 개념과 담론의 상호 연관을 고려한다면 '조선학'은 '조선'의 역사적 의미론 속에서 독해되어야 마땅하다. 1920년대 문화운동의 흥기 속에서 안확은 "조선문명사"를 통해 고대 신화의 시대로부터 당대까지를 '조선'이라는 기표 아래에 묶어낸다. 역사 실증주의의 미명 아래 자행된 일제의 역사 왜곡에 맞서 조선의 역사를 서양 민주주의 정체에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 문명으로 이상화한다. 안확은 '조선' 연구를 문화 전반으로 확장하는 가운데 조선의 미술과 문학을 넘어 조선철학의 탄생을 예고했다. "조선철학사상개관"은 '조선철학'을 하나의 독립적 학문영역으로 사고한 최초의 기술로써, 조선의 학술과 사상의 특수성을 인류의 보편적 문명사의 관점에서 파악하려했던 작업의 일환이었다. 안확은 철학을 조선의 3대 발달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조선 철학사의 특색을 서양과 비교하여 특정함으로써 조선철학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주장했다. '종(倧)'을 조선철학의 시원이자 근세에까지 이르는 사상적 근저로 파악하면서 불교와 유교의 수용도 조선철학의 발전으로 인식했다. 전통 지식체계의 근대적 전환과정에서 탄생한 '조선철학'은 전통 지를 근대적 학문 분류 체계에 적용하여 재해석하고 재구축하는 지적 실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