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Exile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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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양(柳義養)의 유배체험과 그 제시 방식 (The Experience of Exile of Yu, Eui-yang, and the Methods of its Presentation)

  • 이승복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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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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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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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글에서는 유의양이 자기의 유배체험을 기록한 ${\ll}$남해문견록${\gg}$${\ll}$북관노정록${\gg}$을 대상으로 작품에 제시된 유배체험의 양상과 작가의식을 검토하였다. 18세기 관료문인인 유의양은 영조의 노여움을 사 남해, 아산, 종성으로 해를 이어 유배를 갔는데 남해와 종성의 유배체험을 각각 ${\ll}$남해문견록${\gg}$${\ll}$북관노정록${\gg}$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다. 우선 여정이 큰 비중으로 제시된 ${\ll}$북관노정록${\gg}$의 경우 작자는 자기가 지나는 각각의 장소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나 설화, 한시 작품 등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유배지로 향하거나 유람을 하는 여정을 구성하였다. 작자는 여정을 서술하면서 임진왜란과 익조 도조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제시하였으며, 옛사람이 지은 시를 통해 그들이 노래한 경관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도 하고, 그들의 처지와 감회에 공감하면서 자기의 현재를 돌아보기도 하고, 스스로 시를 지어 자기의 회포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는 작자가 자기가 지나는 장소들을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의미망 속에서 이해하고, 인식하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작자는 유배지 지역민들의 삶의 모습과 방식에 주목하여 산물, 장례나 혼례 풍속, 음식, 가옥 구조, 방언 등을 상당히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작자가 환경과 상황에 따른 지역민의 삶에 대한 이해를 통해 유배지를 인식하고자 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작자는 주위 사람들과의 교유와 대화를 중심으로 유배의 일상적 모습을 제시하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을 시로 형상화하거나 토로하면서 유배의 고통을 드러내기도 하고, 유람을 통해 갑갑하고 고통스런 일상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작자는 역사와 문학을 통해 여정을 구성하고, 지역민의 삶의 모습과 방식을 통해 유배지를 인식하였으며, 유배지 사람들과의 교유와 대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유배생활을 제시하였다. 유배체험을 이러한 방식으로 제시한 이유는, 우선 작자가 직접 언급하고 있듯이 작자가 스스로를 벼슬하는 관료로 인식하여 유배지의 지리적 상황과 백성들의 질고를 살피려 했다는 점, 그리고 그가 관료이면서 동시에 문인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유배의 원인이 그리 심각하지 않아 작자가 어느 정도 심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리라는 점, 작자로서는 내면에 몰두하여 유배의 고통과 마주하기보다는 눈을 밖으로 돌려 여정과 유배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다소나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었다는 점을 그러한 제시 방식을 택한 이유로 아울러 고려할 필요가 있다.

1960-70년대 뉴욕의 한국작가: 이주, 망명, 디아스포라의 미술 (Art of Dislocation, Exile, and Diaspora: Korean Artists in New York in the 1960s and 1970s)

  • 양은희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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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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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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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This paper examines a number of Korean artists-Whanki Kim, Po Kim, Byungki Kim, Lim Choong-Sup, Min Byung-Ok and etc-working in New York in the 1960s and 1970s, focusing on their motivations to head for the U.S. and their life and activity in the newly-emerged city of international art. The thesis was conceived based upon the fact that New York has been one of the major venues for Korean artists in which to live, study, travel and stay after the Korean War. Moreover, the United States, since 1945, has had a tremendous influence upon Korea politically, socially, economically, and, above all, culturally. This study is divided into three major sections. The first one attends to the reasons that these artists moved out of Korea while including in this discussion, the long-standing yearning of the Korean intelligentsia to experience more modernized cultures, and American postwar cultural policies that stimulated them to envision life beyond their national parameters, in a country heavily entrenched in Cold War ideology. The second part examines these artists' pursuit of abstraction in New York where it was already losing its avant-garde status as opposed to the style's cutting edge cache in Korea. While their turn to abstraction was outdated from New York's critical perspective, it was seen to be de rigueur for Koreans that had developed through phases from Art Informel in the 1960s to Dansaekhwa (monochromatic paintings) in the 1970s. The third part focuses on the artists' struggle while caught between a dualistic framework such as Korea/U.S, East/West, center/margin, traditional/modern, and abstraction/figuration. Despite such dichotomic frames, they identified abstract art as the epitome of pure, absolute art, which revealed their beliefs inherited from western modernism during the colonial period before 1910-1945. In fact, their reality as immigrants in America put them in a diasporic space where they oscillated between the fixed, essentialist Korean identity and the floating, transforming identity as international artists in New York or Korean-American artists. Thus their abstract and semi-abstract art reflect the in-between identity from the diasporic space while demonstrating their yearning for a land of political freedom, intellectual fulfillment and the continuity of modern art's legacy imposed upon them over the course of Korea's tumultuous history in the twentieth century and making the artists as precursor of transnational, transcultural art of the global age in the twenty-first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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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상유인첩(題黃裳幽人帖)」에 나타난 다산(茶山)의 정원상(庭園想) (Dasan's Conceptual Thoughts on the Garden in 「Jaehwangsangyuincheop」)

  • 정수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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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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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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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다산 정약용의 의원기(意園記)라 할 수 있는 "제황상유인첩"의 제작 경위와 글에 나타난 주거지의 입지 및 정원 조영의 특성을 분석하여 다산이 추구한 이상적 정원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고자 했다. 본 논문은 "제황상유인첩"이 이상적 주거향의 설계도로 기능했을 것으로 가정하였다. 주요 연구 대상은 "제황상유인첩"에 서술된 외부 경관이며, 관련 저작의 분석을 통해 정원 요소와 공간 조영을 수묵화로 시각화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황상유인첩"은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하던 1805년(순조 5) 겨울 보은산방에서 은자의 거처에 대해 물어오던 애제자 황상의 질문에 답하여 써준 글이다. 황상은 이를 참고하여 이후 강진 대구면 천개산 아래 일속산방을 조성하였다. 둘째, "제황상유인첩" 속 주거지는 배산임수의 입지를 취하였고 생활과 여가를 겸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은둔하고 있는 선비의 이상적 주거지였다. 셋째, "제황상유인첩"에 나타난 정원의 특성은 주거지 입지에 있어서의 자연지리의 운용, 다양한 식물재료의 실용적 이용, 정원의 물리적 경계 확장, 정원 요소 향유에 있어서 공감각적 미학 추구, 확장된 정원에서의 적극적 풍류체험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제황상유인첩"은 유배 이후 다산이 원했던 은일하는 선비의 아취 있는 삶의 모습을 담았다. 이는 일속산방으로 구현되었다. "제황상유인첩"은 다산의 정원상이 충실하게 반영된 실현가능한 주거의 이상향으로 해석되었다.

억압의 보상, 기녀(妓女)와 기녀시조(妓女時調) (The Compensation of Oppression, Ginyeo(妓女) & Ginyeo-sijo(妓女時調))

  • 김상진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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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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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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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논문은 문학의 보상성을 기초로 한다. 즉 기녀(妓女)와 기녀시조(妓女時調)를 대상으로 그들 집단이나 작품의 중심에 있는 애정의 문제를 문학의 보상성에 근거하여 파악해 보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기녀라는 집단의 특성에서 야기되는 모성(母性)의 억압과 이에 대한 보상의 관계에서 기녀시조를 조망하였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여성과 모성의 관계를 고전시가 전반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향가에서부터 고려속요, 규방가사와 개화기 가사 및 민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모성이 발현되거나 모성을 주지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이면서도 여성의 지위를 온전히 획득할 수 없는 기녀들은 모성 표현의 기회를 상실했거나 억압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것은 기녀시조 창작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을 텐데, 이러한 억압의 보상으로 말미암아 기녀시조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게 된다. 억압의 보상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기녀시조가 지니는 특성은 세 가지로 범주화 할 수 있다. 애절한 사랑의 헌신, 대담한 욕망의 표현, 재기발랄한 언어유희가 그것이다. 애절한 사랑의 헌신은 기녀시조에서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현실에서의 애달픔으로 인해 그만큼 간절하게 사랑을 희구하는 것이다. 대담한 욕망의 표현은 사랑을 주지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전항과 일치하지만 전자가 소극적인데 반하여, 내재된 욕망의 대담함을 드러내며 적극성을 띈다는 점에서는 상반된다. 재기발랄한 언어유희는 수사적 표현과 관련되는 것인데, 중의적 표현이나 동음이의어가 여기에 포함된다. 요컨대 기녀집단에게 모성의 억압은 발분(發憤)의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사대부의 유배체험이 유배문학으로 발전하였듯이 이 또한 기녀시조의 발전에 일조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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