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적 풍경을 재현하는 개념에 가깝다면 장소는 인간이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공간에 시간을 쌓아 만드는 곳으로, 기억이 축적되는 특별한 저장소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장소와 경관은 '노무현 대통령의집'을 이해하고 그 곳에 쌓여 있는 다양한 기억의 층위를 탐색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본 연구는 노무현재단이 '노무현대통령의집'을 개방하기로 결정하고, 이 집을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시작되었다. 첫번째 결과물은 "추모의 공간에서 기억의 장소로-대통령의집 콘텐츠 큐레이팅 및 장소 아카이브 컨설팅" 보고서로 발행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의 지붕 낮은 집(2019)"이라는 이름의 기록집이 발간되었다. 보고서가 노무현대통령의집의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의미와 이 집에 쌓여 있는 다양한 기억의 층위, 그리고 그 기억을 따라 생산된 기록의 내용, 이를 통해 이 집에 형성된 장소의 성격 등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진행한 것이라면, 기록집은 노무현대통령의집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복원하고 문화적 사건으로 큐레이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의집에는 '세 가지 기억'의 층위가 쌓여 있다. 첫 번째 기억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에 내려와 펼치고자 했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이고, 두 번째 기억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부터 시민 개방이 시작되기 전까지, 9년에 가까운 '상실의 시간'에 대한 것이다. 세 번째는 노무현대통령의집 상시개방과 함께 시작된 '시민의 기억'이다. 이 집을 찾은 시민들은 앞 선 두 개의 기억과 마주하며 세 번째 기억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붕 낮은 집"은 노무현대통령의집이라는 장소에 축적된 세 개의 기억과, 의미로 가득 찬 '기록의 언어'로 구성된 기록집이다.
필자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지난 10년 동안 역사학의 재정의(再定義)를 통해 재직하고 있는 역사학과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역사-기록, 역사학-기록학, 역사학과-기록학과의 오랜 인연을 확인하였다. 동시에 현존 역사학이 기록학으로부터, 기록학이 역사학으로부터 서로 지원과 동력을 받지 못하는 양상을 발견하였다. 1장에서는 두 학문이 멀어지게 된 이유 가운데 현존 (한)국사학계의 문제점을 먼저 다루었다. '국민국가사' 중심의 역사학과 커리큘럼은 국민의 기억을 특권화함으로써, 개인, 가족, 사회, 단체, 시민, 지역으로서의 기억을 배제한다. 이는 다양한 역사 차원을 가진 인간의 현존재에 부응하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역사학계에 팽배한 '역사는 해석'이라는 편견은 역사학을 사실이 아닌 관념적 구성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경험주의로부터 역사학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국민국가사 중심으로 연구될 경우 다양한 차원의 아카이브는 고려되지 않고, 해석을 강조하며 사실에서 멀어지는 한 기록은 부수적이 된다. 동아시아 역사학의 전통과 역사의 개념에서는 두 학문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사(史)는 역사와 기록, 둘 다 의미하였다. 진본에 대한 고민은 젠킨슨이나 듀란티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전자기록과 함께, 또는 2006년 공공기록법과 함께 시작된 개념은 더구나 아니다. 역사학과 기록학에서 사용하는 주요 개념, 즉 문서-기록-사료, 직서/곡필-진본성, 편찬-평가-감식, 편찬-정리, 해제-기술 등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기표(記表, signifiant)가 다르더라도 그 개념 및 의미 내용인 기의(記意, $signifi{\acute{e}}$)는 같았다. 출처주의와 원질서 존중의 원칙은, 'provenance', 'original oder'라는 기표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전래의 기록관리 교육과 실무에서도 유지되었다. 3장에서는 현존하는 역사학과 기록학 사이의 학문적 전문성과 보편성의 방향을 모색하였는데, 역사학계의 측면에서는 기록의 생산-전달-활용을 다루는 학문으로서의 역사학과의 기록학과화(化)를, 기록학계의 측면에서는 전문성의 핵심인 평가와 기술 부문에서 기존 역사학의 성과를 충분히 수렴할 것을 제안하였다. 역사학은 탈-기록학을 반성하고 있는 듯하다. 다행이다. 반면 기록학은 탈-역사학을 시도하는 듯하다. 어리석다. 역사학이 기록학의 손을 놓으면 토대가 흔들리고, 기록학이 역사학의 손을 뿌리치면 뿌리를 잃는다. 더구나 동지는 많을수록 좋다. 우리 앞에는 불길한 조짐과 새로운 가능성, 둘 다 놓여있다.
고성오광대는 1950년대 말부터 학술조사가 시작되어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까지는 종이탈을 사용하였으나 1965년에는 이미 나무탈로 바뀌었으며 이후 탈의 변화 양상이 매우 크다. 1960년에는 9개의 탈을 사용하였는데 문둥이, 초란이, 말뚝이, 청보양반, 젓양반, 할미, 제밀주 탈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여기에 소무는 제밀주와, 청보양반과 비비양반은 영감과 탈을 겸용하기도 하였다. 황봉사와 상주는 탈을 쓰지 않고 맨얼굴로 등장했다. 1965년부터 고성오광대 연희용 탈은 전체가 나무탈로 바뀌었다. 상주, 마당쇠, 상두꾼을 제외한 전 배역이 탈을 쓰고 있는데 비비, 홍백양반, 봉사 탈은 1964년까지는 등장한 적이 없는 탈이다. 초라니는 종가도령으로 바뀌었고 청보양반은 원양반으로 대체되었다. 1969년을 기점으로 연희용 탈은 종류가 현재와 같아지는 안정기에 들어선다. 비비양반과 소무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개별탈을 사용하여 총18점의 탈을 사용한다. 양반들은 적제양반까지 확실하게 분화되어 총 7명의 양반이 등장한다. 이렇게 탈의 종류와 재질 및 표현법에 변화가 큰 것은 1세대 탈 제작자가 사망하면서 탈 제작의 전승이 끊어진 이유도 있겠으나 지정 이후 연희자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연희환경의 극심한 변화에도 그 원인이 있다. 연희자들의 자족적인 놀이였기 때문에 세부 사항에서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유동적인 놀이였으나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공연을 위한 준비로 바뀌었다. 춤이나 의상, 소품들도 점차 화려해졌고 시각적인 효과와 짜임새 있는 연출을 시도하면서 연희 전반의 변화와 함께 탈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를 보존회 내부에서도 수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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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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