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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홍석주의 예술론(藝術論)에 대한 일고찰 - 정약용(丁若鏞)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 (A study about art theory of Yeoncheon Hong Seok-joo - Focused on difference with Jeong Yak-yong丁若鏞)

  • 윤종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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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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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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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연천 홍석주(淵泉 洪奭周: 1774-1842)는 정조의 문체반정 정책에 충실한 수행자의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1794년 이래 초계문신으로 정조를 가까이 대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조 사후(1800) 이래 비교적 순탄한 사환기(仕宦期, 1795-1836)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관을 정립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홍석주는 성리학적 문학론의 핵심개념인 '도본문말(道本文末)' 사상에 바탕을 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이론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문(文)과 시(詩)의 기능을 명교(明敎)와 감인(感人)으로 구분한다. 문의 방면으로는 교훈적 대사회적인 기능을, 시의 방면에서는 성정과 천기를 중시하는 감성적 이해에 주목하였다. 홍석주는 세교설(世敎說)에 입각하여 도덕적 감발과 그를 통한 사회적 교화를 예술 창작의 핵심에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작품의 중요 요소로 언급되고 있는 '흥관군원(興觀群怨)'이나 '여항구요(閭巷謳謠)'와 같은 표현은 예술행위에 있어서의 객관적 대상의 실재를 중시하고 그 실상과 부합되는 묘사를 요구하는 태도에 연결되는데 이러한 표현방식은 마치 회화에 있어서 그가 풍속화적(風俗畵的)인 특성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미망으로도 추정된다. 반면 정약용은 성리학적 문이재도론의 입장에서 주희의 '시경론'을 비판하는 데로 나아간 것이 특징이다. 그는 "시경"의 시편과 일반시의 정치사회적 기능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주희의 시에 관한 담론을 자신의 견해에 의하여 재해석한다. 작자(作者)가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행한 것이 국풍의 시라는 것이다. 정약용의 국풍론은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사대부 계층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하는 정약용의 사상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교육관 탐구 - 성리학적 본질의 심화 - (Quest for Yeoheon Jang Hyeon-gwang's View on Education - Deepening of the intrinsic nature in accordance with the Neo-Confucianistic thought)

  • 신창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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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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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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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여헌 장현광은 조선시대 여타의 유학자에 비해 철저하게 성리학의 본질을 충실하게 탐구하고, 심도 있게 학설을 확장시킨 학자이다. 여헌은 성리학적 교육의 기본 체계인 "대학"과 "중용"에 의거하여 자신의 학설을 강화한다. 이러한 사유의 전개에 근거하여 여헌의 교육사상은 세 측면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첫째, 여헌은 교육의 기준으로서 성인군주론(聖人君主論)을 심화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존천리알인욕(存天理?人欲)을 추구하며, 도덕적 각성과 덕치주의를 강조한다. 둘째, 여헌은 교육의 양식으로서 성경(誠敬)의 공부론을 강조한다. 여헌은 마음에 성(誠)과 경(敬)을 세울 것을 강조하고, 두 가지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한다. 셋째, 여헌은 교육의 방법으로서 분합(分合)의 조화를 주창한다. 여헌은 그의 독특한 리기경위설(理氣經緯說)을 통해, 역(易)의 논리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지나치지 않는 중용의 관점을 유지한다. 이러한 여헌의 교육적 사유는 현대 교육적 의미에서 볼 때, 교육의 표준을 도덕의 확립에 두고, 교육의 양식과 방법에서 중용적 통찰을 고려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요컨대, 여헌의 교육사상은 일관성을 지닌 전통 성리학의 교육적 지혜를 담고 있는데, 현대 교육의 기준 혼란, 내용의 비체계화, 방법적 치우침에 대한 균형 감각의 중요성을 재검토하는 데 주요한 시사점을 준다.

조선시대 부권(婦權)의 존재 양상 연구 (The Modes of Existence for the Housewife's Authority in Joseon Dynasty)

  • 이은봉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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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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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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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주부의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제사 문화와 시집살이 문화는 어쩌면 오랜 전통이 아닌 최근의 문화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조선시대 부권(婦權)의 상실이 조선 후기 성행한 '양반-되기' 문화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조선 중기까지 여성 특히 가정 내 부인은 친정에서 가지고 온 재산과 친정과의 유대를 통해 나름의 권위를 가지고 주체적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러한 부권(婦權)은 임병양란 이후 영세해진 가문을 지키기 위해 딸을 상속에서 배제하면서 사라졌다. 그렇지만 전 인구의 양반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양란을 기점으로 종법제에 입각한 성리학적 가부장제가 전 인구로 확산될 수는 없었다. 성리학적 가부장제가 전 인구의 보편적 윤리가 된 것은 양란 이후 지속적 사회 변화 속에서 양반의 수가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자부터 평민까지 모든 사람이 종법제를 지켜야 한다는 정주학의 예론은 모든 집안에 '사당'을 두어 조상의 제사를 모시라고 하는 "주자가례"를 통해 실현되었다. 경제력을 상실한 양반이 자신을 양반으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오직 준엄한 의례밖에 없었으며, 양인에서 양반이 된 사람들 또한 양인과의 구별을 위해 '형식적 예'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19세기 조선의 '양반-되기' 문화는 성리학적 가부장제에 의한 예법을 공고히 했다. 이 결과 여성은 오로지 시집을 위해 종사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남편과 아들의 가문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해 스스로를 옥죄기도 했다.

『대학(大學)』해석(解釋)을 통해 본 주자(朱子)의 격물치지론(格物致知論) (The Study of Zhuzi's Gewuzhizhi Theory)

  • 서근식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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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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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9-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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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주자(朱子)는 본래 "예기(禮記)"의 43번째 편이었던 "대학(大學)" 독립시켜 "대학장구(大學章句)" 재편집하였고, 이 과정에서 134자(字)를 보충하였다. 보충한 134자(字)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관한 것으로 주자(朱子)의 이러한 해석(解釋)은 후대 학자들이 "대학(大學)"을 해석(解釋)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주자(朱子)는 격물(格物)을 천지(天地) 사이에 존재하는 사물(事物)들의 이(理)를 궁구(窮究)하는 것으로 해석(解釋)하였다. 격물(格物)이 사물(事物)들의 이(理)를 궁구(窮究)한다는 의미라면 궁리(窮理)라는 표현이 보다 적합하다. 그러나, 궁리(窮理)라고 하지 않고 격물(格物)이라고 한 것은 사물(事物)의 실체(實體)를 얻기 위해서라고 주자(朱子)는 주장한다. 이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허학(虛學)이 아닌 실학(實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의 과정을 통해 나의 앎이 지극해지는 단계이다. 즉,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을 통해 얻은 지식들을 종합하여 진지(眞知)를 구하는 단계이다. 이 진지(眞知)는 사의(私意)가 개입할 수 없으므로 진지(眞知)는 보편적인 앎과 같은 것이 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해 양적으로 축적된 것은 활연관통(豁然貫通)을 통해 질적인 변화를 하게 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가 하학공부(下學工夫)라면 활연관통(豁然貫通)은 상달공부(上達工夫)에 해당되는 것이다. 활연관통(豁然貫通)은 나의 이(理)가 보편적인 이(理)와 하나가 되는 단계로서 내 마음 속의 준칙(準則)이 보편성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즉, 내 마음 속의 준칙(準則)과 보편적인 준칙(準則)이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최종 목표는 지선(至善)에 도달하는 것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지선(至善)을 지향하고 있다면 활연관통(豁然貫通)을 통해 얻은 내 마음 속의 보편적 준칙(準則) 또한 지선(至善)이 그 기준이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주자(朱子)의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인식론(認識論)의 측면과 윤리적(倫理的)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