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hoe Cheony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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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금동인(鍼金銅人)의 제작(製作)에 대한 고찰(考察) (A Production of Chimgeumdongin(鍼金銅人) the Acupuncture Bronze Man in 18th Chosen dynasty)

  • 박영환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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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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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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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he Chimgeumdongin(鍼金銅人) is a Acupuncture Bronze Man that casted by Choe Cheonyak(崔天若) the meister and directed by O Jicheol(吳志哲) the royal chief acupuncture doctor of Chosen dynasty(朝鮮) in 1741. Choe Cheonyak casted the Chimgeumdongin at least 12 parts. After welding the parts, engrave the names of acupuncture point on it. It is suggested that there maybe one or more Wooden Acupuncture Man that remedy mistakes for a longtime before 1741. This became a prototype of Chimgeumdongin. The contents of Chimgeumdongin's acupuncture points are equal to which was recited by royal acupuncture doctors for hundreds years. Chimgeumdongin rigorously apply the bone proportional unit measurement of . and the range of error was between 0.01cm~1.67cm. Specially, they made it's head 1.34 times bigger, by long experience. Accoding to , the Chimgeumdongin was used for training inexperienced royal acupuncture doctors. As shown above, the Chimgeumdongin could be represents standard acupuncture technology of Chosen dynasty.

조선 18세기 조각가 최천약(崔天若) 연구 (A Study on the 18th Joseon Dynasty Sculturers Choi Cheon-Yak)

  • 김민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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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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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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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최천약(崔天若 1684경~1755)은 동래(東萊) 출신 무인(武人)으로 1713년부터 왕실의 공역을 담당한 별간역(別看役)이었다. 그는 능묘석물, 건축, 옥공예, 주조(鑄造) 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해 당시 사대부들은 '최천약은 형태가 없는 물건을 잘 창조한다[천약선창의(天若善創矣)].'라며 그의 재주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1713년 옥보(玉寶)의 거북이[귀구(龜瞿))를 깎는 것을 시작으로 왕실 공역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1720년대에는 자신만의 옥보 거북이 양식을 만들어 냈다. 왕실 공예품 중에서 동인(銅人 1741년)은 우리나라 유일의 금속제 침구동인상(鍼灸銅人像)으로 인체 각 부분의 표현이 사실적인 작품으로 최천약이 감동(監董)한 작품이다. 1731년 인조 장릉 병풍석에 십이지신상 대신에 모란과 연꽃을 조각한 최천약은 이때부터 왕릉 및 사대부묘 석물에 감동을 시작하여 단경왕후 온릉(1739년), 의소세손묘(1752년)에서 초상조각에 가까운 문인석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천약은 공민왕릉 무인석을 모델로 조현명묘 무인석(1752년)을 제작하고, 그가 1755년 사망하자 후배들은 조현명묘 무인석을 계승해 박문수묘(1756년)와 정성왕후 홍릉 및 인원왕후 명릉 무인석(1757년)을 조각한다. 그 결과 14세기 말 공민왕릉 무인석의 충갑(衷甲), 흉갑의 매듭, 대(帶)의 화문(花紋) 등이 18세기 무인석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의소세손묘 문인석 조현명묘 무인석 등 최천약이 제작한 문무인석들은 초상조각으로도 손색 없으며, 조선 후기 조각의 대표작으로 김하정(金夏鼎) 변이진(卞爾珍) 등 별간역(別看役)들과 김천석(金千碩) 박필심(朴弼深) 등 최고의 석수(石手)들이 있었기에 제작 가능한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최천약이 제작한 다른 문무인석의 발굴 및 다른 별간역들의 활동과 작품 등의 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 능묘석물의 실체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