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A shamanic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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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틀의 확장을 통한 디지털 예술의 무(巫)적 체험 (A Shamanic Experience in Digital Art by Expansion of Body Schema)

  • 성정환;성희원
    •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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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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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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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디지털 기술을 통한 관객과 예술작품의 관계의 확장을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의 몸틀(Body Schema)의 확장이라는 관점으로 보고 이를 통해 획득되는 예술적 가치를 하이데거의 낯섦(Defamiliarization)으로 설명한다. 이에 본 연구는 디지털 예술과 관객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낯선 경험이 디지털 예술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또한 본 연구는 관객이 사이-존재, 혹은 시인으로서 하이데거의 사방(四方 : The fourfold)즉 세계와 대지, 신적인 것과 죽을 자 사이에서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기존 예술작품과 비교하여 디지털 예술작품에서의 독특한 예술적 체험을 무(巫)적 체험으로 부르고, 이를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디지털 예술의 예술적 가치로 설명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소설 『토지』 배경지 평사리의 문화산업화와 콘텐츠 변화 방향 연구 (A Study on the Cultural Industrialization and Content Change Direction of Pyeongsari, a Novel 'Toji (Land )' Background Space)

  • 최유희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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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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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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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논문은 소설 『토지』의 주요 무대이자 작중인물들의 삶에 새겨진 원체험 공간인 평사리의 의미를 진단하고 <토지>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평사리의 방향성을 제안한다. 소설 속 가상공간인 평사리는 원작의 배경지에서 출발하여 하동군의 대표 문화 공간으로 현재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간의 방문자들이 자기만의 장소성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문화체험형 콘텐츠로 재탄생할 필요가 있다. 원작에서 평사리는 이상적 공동체이자, 수난과 개척이라는 한국 근대사의 축도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를 살려 유교문화, 여성의 노동문화, 무속문화를 보여주는 문화체험공간을 마련하여 방문자들의 체험을 이끌어내야 한다. 아울러, 평사리 재편의 동력이 된 변용작품들과 연계하여 앱을 개발하고, 증강현실을 이용한 교육과 체험 공간을 웹에 마련한다. 디지털과 현실의 이러한 교호작용은 원작이나 변용작품들의 의미를 사유하게 하는 동시에 방문자들이 저만의 장소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한다. 또한 이를 통해 평사리는 한국문화와 삶의 의미를 사유하는 문화체험 콘텐츠 플랫폼으로의 진화가 가능하다. 이 글은 '의미 있는 장소들의 지리'를 위한 평사리의 공간 기획 방향성을 제언한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또한 문학 작품 원작의 상상 공간이 현실의 공간을 어떻게 재편해 왔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문학작품의 미디어 콘텐츠화와 문화예술산업 지형 구축에도 시사점이 있다.

증산사상(甑山思想) 형성에 미친 지역적 영향원(影響源)으로서의 농악·당산제에 관한 사례적 고찰 -정읍지역을 중심으로- (A Case Study on Nongak and Dangsanje as Regional Sources of Influence on the Formation of Jeungsan Thought: Focused on Jeongeup City, Jeonbuk-do Province)

  • 허정주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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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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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7-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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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연구의 목적은 정읍 출신 사상가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사상 형성에 미친 정읍지역의 당산제 및 농악의 영향관계를 구체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살펴보는 데에 있다. 그 결과, 본고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첫째, 어떤사상가의 사상은 그가 태어나 성장한 지역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둘째, 강증산이 태어나 자라고 나중에 자신의 증산사상(甑山思想)을 이룩해 나아간 중심 지역은 정읍지역이다. 셋째, 정읍지역 마을굿 당산제에는 전통적으로 농악이 그 필수 요건으로 수반되고, 정읍의 농악은 마을굿으로서 당산제와 긴밀한 상호관계 속에서 공연되었다. 넷째, 증산이 본인의 생존 당시에 자신의 고향에서 볼 수 있었던 농악은, 바로 이와 같이 정읍지역의 마을굿인 당산제와 관련하여 공연되던 농악으로 파악된다. 다섯째, 증산은 어릴 때부터 마을굿 당산제와 농악과 무당굿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체험적으로 파악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관련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섯째, 이러한 영향 양상은 실제로 그가 남긴 언행록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일곱째, 증산의 정읍에서의 농악/풍물굿 체험은 그의 사상이 처음으로 종교화된 보천교의 종교악을 농악의 재창조 형태로 구성하게 하였다. 여덟째, 이러한 농악의 보천교 종교악화 과정은 이후에 정읍농악 및 호남농악 전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