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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창천명 삼족오문(三足烏紋) 고려 동경에 새겨진 배의 국적

  • 김성준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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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항해항만학회 2017년도 추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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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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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2017년 5월 필자는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에 새겨진 배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고려의 배가 아닐 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의 원 도안은 북송대에 유래하여 금대에 크게 유행한 뒤 무역을 통해 고려에 유입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은 중국에서 유래한 원도안을 모방하여 재주조, 변형, 재창조한 것이므로 뒷면에 새겨진 배는 고려의 배라기 보다는 중국의 배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된 삼족오문 고려 동경(덕수 4927; 덕3194)에 새겨진 배는 평면형 저판 및 선수미, 중첩된 삼판, 최상부 삼판에 보이는 가룡목의 흔적 등 여러 면에서 원양항해용 평저선형 고려선박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이 기원지인 중국에 비해 고려에서 널리 모방, 변형, 재창조되어 활발하게 주조 및 유통되었다는 점이다. 유리판(于力凡)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은 북송의 휘종(徽宗)(재위 1100-1125) 황제의 성덕(聖德)을 찬양(讚揚)할 목적으로 주조되었다. 그러나 이배근의 견해를 원용하면, 고려에서는 항해도문안을 태조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의 설화로 해석하여 태조 왕건을 룡손(龍孫)으로 지체를 높이기 위한 상징물로 활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것이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이, 북송과 금을 통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에서 이를 모방 및 변형하고 독창적으로 재창조하여 널리 유통되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 이는 차후의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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