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황룡사

검색결과 31건 처리시간 0.024초

통일신라~고려시대 황룡사 사역의 변화과정 검토 (A Review of the Changes Made to the Sites of Hwangnyongsa Temple during the Unified Silla and Goryeo Periods)

  • 정여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5권1호
    • /
    • pp.265-280
    • /
    • 2022
  • 황룡사는 약 68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법등이 이어진 대사찰이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1탑 3금당식의 가람배치가 밝혀진 후 크게 네 차례에 걸쳐 창건부터 최종까지의 가람추정도가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황룡사 가람구조에 대한 연구는 회랑내곽(佛地) 위주로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사찰의 건립 이유를 생각한다면 금당지 등 중심건물지에 대한 연구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사찰 전체의 가람구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회랑외곽(僧地)에 대한 연구도 선행되어야 한다. 신라 사찰의 회랑내·외곽을 포함한 전체 가람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라시대 대표사찰인 황룡사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까지 조사된 삼국시대 사찰은 회랑외곽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고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추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황룡사는 사방으로 주변과의 경계인 담장이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어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회랑내곽과 외곽, 회랑외곽과 사역외곽과의 공간을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 사역 전체 가람 구조의 변화를 추정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황룡사 사역이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어떠한 변화를 거쳤는지 확인하고 전체 가람 구조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황룡사 사역 남쪽으로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는 남문지의 건립시기와 사역 경계인 사방 담장의 축조시기와 변화과정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회랑내곽의 가람변화와 함께 회랑외곽 역시 1~3차에 걸쳐 변화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황룡사의 전체 가람구조가 변화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사찰 규모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신라왕경의 중심지에 창건된 지리적 중요성과 함께 주변으로 도시유적이 들어서면서 사찰의 경관 역시 변화를 같이 한 것으로 생각된다.

황룡사 창건 구층목탑 단상 (A Study on the Architecture of the Original Nine-Story Wooden Pagoda at Hwangnyongsa Temple)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2권2호
    • /
    • pp.196-219
    • /
    • 2019
  •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황룡사 구층목탑은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에 의해 선덕여왕 13년(645)에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이후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고군의 침략으로 사찰이 완전히 불타버리기 전까지 약 700년 동안 당시대인의 정신문화 속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징이자 호국불교의 구심체로서 존재하였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문헌기록과 발굴조사 자료를 근거로 황룡사 창건 목탑에 대한 구조와 전체적인 형태에 대한 다양한 복원안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황룡사 목탑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목탑지의 외형적인 형태와 단순한 목구조를 가정한 사각구층의 형태였다. 이는 관련 자료의 부족과 제한된 지식으로 인해 황룡사 창건 목탑의 기술적 계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새로운 자료의 발견과 고대 대형 불탑의 구조 체계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충분히 수정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2005년부터 진행된 <황룡사 복원 연구>를 통해 정리된 목탑지에 대한 재분석 자료를 근거로 동아시아 고대 불탑의 구조 체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 속에서 황룡사 창건 목탑의 계보와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황룡사 창건 목탑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쳐 적어도 두 번의 큰 중창을 겪는 동안 기단의 규모와 평면 형식 등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상부 구조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유구에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구층목탑과 관련된 흔적은 현재 판축으로 조성된 기단토와 심초석 정도이며, 그외 초석과 기단 석재 등 대부분은 9세기 이후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황룡사 창건 목탑의 실질적인 구조는 당시 동아시아 대형 불탑의 변화과정 속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기술적 계보는 북조의 영향을 받은 백제의 대형 불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에 표현된 9층 마애탑의 모습과 황룡사지 강당지에서 출토된 금동제 불탑 난간편 분석을 통하여 파악된 고고자료를 근거로 황룡사 창건 목탑의 이미지를 추정해본다면 외형상으로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순수한 목구조를 한 사각구층탑과는 다른 형태로 파악되는데, 아마도 실심체를 갖춘 이원 구조의 팔각구층탑일 것으로 파악된다.

황룡사 가람계획 척도 연구 (A Study on the Units of Measuring Scale in Hwangnyongsa Temple Planning)

  • 김숙경
    • 건축역사연구
    • /
    • 제25권4호
    • /
    • pp.65-73
    • /
    • 2016
  • This paper aimed to identify the units of measuring scale in Hwangnyongsa temple planning with the published excavation survey reports. Hwangyongsa temple site was planned under Silla Capital's urban planning in 6~7C, its full size was $800{\times}800$, and main temple was $400{\times}515$ of Goguryeo's system of measurement. Main hall was located in the center of Hwangnyongsa temple site, and its location could be seen that there was the arrangement of main temple divided into 3 : 2. Building plan measuring units proved to be 351~356mm and 294~ 296mm by analyzing measured data of remains. Lecture hall and Wooden pagoda were rebuilt by using the ancestors' units of measuring scale again and Bell hall was not planned by Tang's system of measurement in middle of 8C. In this respect, it would be important to have a deliberate attitude and lay down stereotypes on research of the units of measuring scale in ancient architecture.

신라왕경 방장(坊牆)에 관한 연구 - 황룡사 및 그 주변을 중심으로 - (A Study on Bang Walls in the Capital of Silla - With a focus on the Hwangnyongsa Temple and its surroundings -)

  • 현승욱
    • 건축역사연구
    • /
    • 제30권1호
    • /
    • pp.7-17
    • /
    • 2021
  • Bang walls surround the four sides of Band in ancient capital cities of East Asia where the Bang system was in operation. There are ongoing research efforts for the structure of a capital city and Bang system around the capital of Silla, but there is a huge shortage of research on Bang walls. This study thus set out to examine Bang walls in the capital of Silla around the Hwangnyongsa Temple and its surroundings. The findings show that the Bang walls in the capital of Silla were built with a mix of earth and stone and with tiled roofs on top. The sizes of Bang walls were distinguished from the walls of individual structure groups inside Bang and closely related to the Bang size and the width of adjacent roads.

皇龍寺 49萬소斤 巨鐘은 어디로 (The Whereabout of the Bell Imperial-Dragon-Temple)

  • 이병호
    • 한국음향학회지
    • /
    • 제16권6호
    • /
    • pp.5-11
    • /
    • 1997
  • 작금에 皇龍寺 49萬소斤 巨鐘의 행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최근 경주시가 그 종을 찾아서, 우리 민족 문화의 국보를 되살리고, 이를 경주 황룡사 종루에 복원하면 그 종소리와 더불어 영원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리하여 해군에서도 최신 장비를 동원하여 그 종이 빠졌다는 동해구를 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종은 고려 숙종조에 녹여 져서 신종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 三國遺事 卷三, 皇龍寺 鐘條에 나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니 皇龍寺 巨鐘: 무게 41.0 ton, 높이 3.14 m, 구경 2.44 m 皇龍寺 新鐘: 무게 7.4 ton, 높이 2.07 m, 구경 1.61 m임이 드러났고 종의 收率(종의 무게/입증)이 聖德大王 神鐘은 34.7 %, 皇龍寺 巨鐘은 13.6 % 임을 알았다. 그리고, 1103년에 皇龍寺 新鐘(7.4 ton)이 원 황룡사 거종이 달려있던 자리에 매달려 있다가, 1238년 11월에, 몽고 제3차 침입군에 의하여 황룡사 전체는 타 버리고, 그 新鐘은 지금의 ④번 國道의 course를 따라 토함산맥 제일 낮은 고개를 넘어, 보문양북면 大鐘川동해구로 끌려가서 동해구에서 몽고행 배에 싣다가 그 곳에 빠뜨렸다고 보여진다. 이번에 잘하면 해군이 7.4 ton의 황룡사 신종을 건질 수 있을런지 모른다.

  • PDF

회원작품

  • 대한건축사협회
    • 건축사
    • /
    • 7호통권267호
    • /
    • pp.20-47
    • /
    • 1991
  • 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