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late decade of 1930, under the Japanese Imperialism, the Korean abstract art which was formed with affection by Japan and Europe. They say the early Korean abstract art is colonized, from a point that it derives from exterior impact. And they say also it is colonized not to be related to the representation of their own life world. On the other hand, the early Korean abstract art in 1930s is told as the prehistory of 'Korean Modernism in Art', which flourished in 1970s followed 'Informal Art Movement' in the late 1950s. Because the status of abstract art in 1930s was not more than a germ of 'Korean Modernism in Art', while they understand until 1950s as a period dominated by representational art based on Chosun Exhibition or Korean National Exhibition, the period until 1970s as a period ruled by abstract art which was accepted as 'Korean Modernism in Art', and the period after 1980s as a period by Min-jung Art and Post-Modernism Art. However, the historical value of Korean Abstract Art in 1930s cannot be passed over, if not trying to understand the development of 'Korean Modernism in Art' especially focusing on not their own history but the impact of Western and Japanese art. In the late colonial period, the Korean early abstract art was the strongest utterance of the time paradoxically, even if not related much to optical representation of the Korean subjectivity. Therefore the existing viewpoints about the early Korean abstract art should be changed.
우리는 우리 지방에 자생하면서 기후풍토에 적응된 아름답고 진귀한 많은 야생 화목류와 교목류 등을 부존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을 연구 개발하지 않고 주로 도업종과 재배종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국내외의 관광객이 요구하는 즉, 강원도는 물론 우리나라 고유의 정취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많은 야생종들을 연구, 개발하여 조경식물화시켜 대량으로 번식시키는 동시에 일반 재배화함으로써 향토색 짙은 관광한국을 만들어 관광사업의 근본목표인 경제적 효용을 다하기 위해 매우 개발가치가 있는 교목류 37종과 관목류 73종의 특성, 재배법, 용도 등을 조사하였다.
이 연구는 음식관광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소 마케팅으로서의 가치 인식 등을 배경으로 관광지 식당을 대상으로 관광지 식음료 서비스 품질과 서비스 가치, 고객만족, 관광지 연상 간의 인과관계에 대하여 연구 하였다.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가설과 연구모형을 도출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406부의 유효 설문지에 대하여 SPSS와 AMOS를 이용하여 빈도분석, 확인적 요인분석, 그리고 구조방정식을 이용하여 가설검증을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관광지 식음료 서비스 품질의 '물리적 환경'과 '음식품질' 요인은 서비스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지 식음료 서비스 품질의 '종업원 서비스'와 '음식품질' 요인은 고객만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지 식당의 서비스 가치는 고객만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지 식당의 서비스 가치는 관광지 연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객만족은 관광지 연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첫째, 외식 사업자 입장에서 음식품질 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음식품질은 외식산업의 근본에 해당하는 것으로 각종 광고와 마케팅 속에서도 원칙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시사점이다. 둘째,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 외식 사업자에 대한 물리적 환경개선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메뉴개발과 종업원 서비스 교육보다는 관광성을 증가시키는 시각적 효과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사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역과 관광지 특성이 연상될 수 있는 향토색 있는 메뉴가 개발되어야 한다. 즉 관광지 식당이 관광지 연상으로 이어져 많은 관광객이 많이 찾을 수 있게 하는 마케팅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성 반영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Orientalness is a concept that expresses the collective identity of the Orient in relation to the West. The concept itself is mutable and defin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regions at different points in time. Changes in the concept depend on a number of factors, such as cultural influence, the political balance of power between the two regions, and on the interpretative scheme that defines the relationship. In addition, the geographical notion of the concept evolves culturally, socially and politically. During this process, Oriental-ness becomes Oriental-ism at times. I will attempt to survey and measure the progression of Orientalness from its emergence in early 17th century to its subsequent transformation in modern Korea as reflected in art theory and art works. The recognition of the comparative characteristics of Oriental art began when the Orient was exposed to the art of the West in the late Ming dynasty during the early 17th century. The changes in the artistic climate in China affected the late Chosun. I will start with a brief introduction of this time and the birth of Orientalness. The concept gradually changed during the period of Enlightenment(開化期) towards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nd during the colonial period( 1910-1945) it took on a new form. Establishment of the concept of "Orient"as a single, unifying concept spanning across cultures and national boundaries has been attributed to late Meiji period Japan, whose intention at that time is believed to have been to build a pan-Asia(亞細亞) empire with Japan at its commanding center. It has been stressed that the real motive behind the formation of one single cultural unit, where the shared common written language was Chinese and Confucianism and Taoism were the common metaphysical traditions, was to build one political unit. When the notion of a geographical unit of Asia was replaced by the concept of Asia as a cultural and political unit, a massive growth of interest and discourse were provoked around the concept of Orientalism. When Orientalism was being formulated, Korea automatically became member of "one Asia" when the country became colonized. For Koreans, the identity of the Orient had to be defined in cultural terms, as the political notion of a nation was non-existent at that time. The definition of identity was pursued at two levels, pan-Asian and local. If Orientalism was an elite discourse centered in pan-Asian philosophical and religious tradition, localized Orientalism was a popular discourse emphasizing locality as the byproduct of natural geographic condition. After the liberation in 1945 from colonial rule, a thrust of movement arose towards political nationalism. Two types of discourses on Orientalism, elite and popular, continued as central themes in art. Despite the effort to redefine the national identity by eradicating the cultural language of the colonial past, the past was enduring well into the present time. As discussed above, even when the painting themes were selected from Korean history, the tradition of using history painting as a manifestation of political policy to glorify the local identity had its founding during the Meiji period. The elevation of folk art to the level of high art also goes back to the colonial promotion of local color and local sentiment. Again, the succession of the past (colonial) ideal was defended as the tradition assumed a distinct modern shape that was abstract in style. The concept of the "Orient" is of relative and changing nature. It was formulated in relation to Western culture or civilization. Whatever the real motive of the adoption of them had been, the superiority of the Orient was emphasized at all times. The essence of the Orient was always perceived as the metaphysical tradition as a way to downgrade Western culture as materialistic. This view still prevails and the principle of Orient was always sought in Confucianism, Taoism, and Buddhism. Even when Orientalism was employed by imperialist Japan in an effort to establish her position as the center of the Orient, the spiritual source was still in Chinese philosophy and religion. In art also, the Chinese literati tradition became the major platform for elite discourse. Orientalism was also defined locally, and the so-called local color was pursued in terms of theme and style. Thus trend continued despite the effort to eradicate the remnants of colonial culture long after liberation. These efforts are now being supported politically and also institutionalized to become the aesthetic ideal of the modern Korean art.
이 논문은 '근대 뮤지컬의 형성' 혹은 '한국적 뮤지컬의 뿌리'라는 관점에서 일제 말에 발흥한 향토가극의 공연 현황을 재구하고 양식적 경향 및 특성을 분석한 다음, 이를 근거로 향토가극의 공연예술사적 위상을 고찰하였다. 향토가극은 클래식 음악에 근거한 서양 오페라와도 구별되고, 일본풍 대중가요에 기반한 신파조 악극이나 유흥적인 소녀가극 유형과도 달랐다. 특히 안기영이 작곡한 가극은 제재상 주로 전통설화와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형태상 민요풍의 창작곡이나 오페레타 수법을 운용하여 창작된 향토색(=민족색) 짙은 대중적 음악극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향토가극의 대상으로 안기영이 작곡하고 라미라가극단과 반도가극단에 의해 제작된 <콩쥐팥쥐>, <견우직녀>, <은하수>, <에밀레종>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설의식 작사, 서항석 극본, 안기영 작곡의 <콩쥐팥쥐>, <견우직녀>, <은하수>, <에밀레종>은 라미라가극단과 반도가극단에 의해 식민지 시기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일반 대중에게 장기간 향유되었다. 특히 <콩쥐팥쥐>와 <견우직녀> 전·후편은 경성중앙방송국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이었다. 향토가극의 양식적 경향에 대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향토가극은 노래와 대사가 절반씩 섞이고 춤도 곁들인 대중적인 음악극, 즉 뮤지컬의 형태에 가깝다. 다양한 음악재료들이 혼합된 음악성, 성악가와 대중가요 가수의 동반 출연으로 인한 창법의 이질성, 기본 형상수단으로서의 무용은 향토가극을 근대 오페라보다는 뮤지컬의 한 갈래로 분류하게 만든다. 향토가극운동이 일관되게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고, 일본통치에 대한 내면화된 저항 의식을 견지했다는 평가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콩쥐팥쥐>와 <견우직녀>는 일제와 공유될 수 있는 설화 소재이기에 일본순회공연과 전조선방송이 가능했다. 해방공간에서 향토가극의 극작·연출가인 서항석은 악극과 오페라 연출자로 활동했고, 한국전쟁 이후 향토가극의 작곡가 안기영은 북한에서도 가극을 창조하여 향후 '민족가극'과 '혁명가극'의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향토가극 활동에 참여한 음악평론가 박용구는 1960년대에 예그린악단 단장으로서 창작 뮤지컬의 기획·제작을 진두지휘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향토가극은 남북한의 대중적 음악극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향토가극에 대한 연구는 근대 악극의 갈래 분화 양상과 사회문화적 의미, 한국 뮤지컬의 정체성 수립, 분단시대 남북한 음악극의 동질성 해명 내지 연극사를 복원하는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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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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