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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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학교교육론(學校敎育論)과 그 도덕교육적(道德敎育的) 함의 (Yeoheon Jang Hyeongwang's perspective on schooling and the implication of moral education)

  • 박학래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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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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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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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고는 퇴계(退溪)와 율곡(栗谷) 이후 조선 성리학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학교 교육, 특히 향교(鄕校) 교육(敎育)에 대한 입장과 구체적인 활동을 검토하고, 그것의 도덕교육적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16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구체화된 향교 교육의 폐단에 대해 퇴계와 율곡은 모두 그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처방에서는 구별되는 입장을 드러냈다. 퇴계가 향교 교육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유학교육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서원(書院)의 건립과 위상 강화에 주목하였다면, 율곡은 관학 교육기관으로서 향교의 교육 개혁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고, 이를 통해 학교 교육의 면모를 일신하고 인재 양성과 윤리기강의 확립을 추구하였다. 본고에서는 퇴계와 율곡의 구별되는 학교 교육 개혁에 대한 입장에 유의하면서 여헌의 학교 교육에 입장을 고찰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향촌 사회의 도덕 질서 회복에 주목한 그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향교 교육과 연결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석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의 향교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그가 제시한 인동 향교의 교육 조목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 그가 의도한 향교 교육의 내용과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검토하였다. 나아가 여헌의 향교 교육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도덕교육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피고, 현재 교육 현실과 연관하여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시론적(試論的)인 입장을 제시하였다.

제주도 정의향교의 유교문화경관에 대한 공간분석 (Spatial Analysis of the Confucian Cultural Landscapes at Jeongeuihyanggyo, Jeju Island)

  • 이행열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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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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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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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제주도 소재 정의향교는 전통적인 유교 예제건축으로 유교문화경관을 표상하는 사례가 된다. 조선 태종16년(1416)에 정의현 설치와 함께 성산읍 고성리에 처음 세워졌으나 헌종 15년(1849)에 성내 서쪽으로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향교가 가지는 문화경관 자원의 특성을 공간구성과 유교의 공간예제 적용방식을 통하여 규명하는데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연구를 위하여 정의향교가 가지고 있는 유교문화경관의 공간구조와 유교예제에 관한 특징을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분석하였다. 즉 정의향교의 건립과 이건에 따른 변화과정, 고지도를 통한 입지적인 해석, 정의향교의 유교적 상징요소, 공간구성과 배치형태, 물리적 구조, 주요건축물, 지형면에서의 입지특성, 축선의 변화, 그리고 대성전 전면공간의 위요감(D/H비) 등을 통하여 유교예제가 공간구조에 나타나는 특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의향교는 제주도라는 단절된 섬 지역에서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유교적 교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며, 성내 입지라는 한정된 공간 조건 가운데서도 수평적, 수직적으로 다양한 배치기법을 통하여 유교 특유의 공간예제를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되살려서 정의향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유교문화경관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910년대 향교(鄕校) 건축의 유지와 관리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Maintenance and Management of Local Confucian School architecture in the 1910s)

  • 송혜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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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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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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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This study was described with a focus on the maintenance and management of Local Confucian School(Hyanggyo) architecture, centering around cases investigated through official documents written in the 1910s. In 1910, by the Japanese imperial rule, the regulations on Local Confucian School(Hyanggyo) property were enacted, and the income was paid solely to elementary school education expenses and ancestral rites. Through this process, many Local Confucian School(Hyanggyo) buildings were destroyed while only the space for ritual sacrifices remained by the Japanese colonial rule. In particular, as the land, which was the basis of Local Confucian School's property, was sold for various reasons, the finances gradually deteriorated. In addition, as the architectural acts that Local Confucian School preserves itself are restricted, it loses its original character. This study was of great significance that identified the intention to dispose of Local Confucian School(Hyanggyo) property by Japanese imperialism in the 1910s and clarified the purpose of its disposal.

전주향교 완영책판(完營冊板) 보존현황 및 활용방안 (A Study of Woodblocks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at Jeollado in Joseon Dynasty)

  • 홍성덕;김철배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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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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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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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본 연구는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에 대한 조사연구이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서적을 간행할 때 사용하던 책판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諦늣논${\ulcorner}$주자대전${\lrcorner}$ ${\ulcorner}$성리대전${\lrcorner}$등 총 11종 4,290판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조사한 결과 769개가 많은 총 10종 5,059개의 책판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의 종류는 ${\ulcorner}$자치통감강목${\lrcorner}$, ${\ulcorner}$동의보감${\lrcorner}$, ${\ulcorner}$주자대전${\lrcorner}$, ${\ulcorner}$율곡전서${\lrcorner}$, ${\ulcorner}$성리대전${\lrcorner}$, ${\ulcorner}$증수무원록언해${\lrcorner}$, ${\ulcorner}$사기${\lrcorner}$, ${\ulcorner}$사략${\lrcorner}$, ${\ulcorner}$호남삼강록${\lrcorner}$, ${\ulcorner}$주서백선${\lrcorner}$ 등 총 10종이다. 이들 서적을 모두 제작할 경우 책판은 10,621개 21,238면이 필요하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장판각 소장 완영책판의 현존율은 책판 $47.6\%$, 면수 $46.3\%$이다. 또한 중복된 면이 219면이므로 실제적인 면수 현존율은 $45.2\%$이다. 육안조사에 의한 충해피해의 정도는 $5.51\%$ 258개이며, $90.19\%$의 책판 4,562개에서는 쪼개짐이나 균열의 피해가 조사되었다. 이런 이유는, 책판 좌우에 있는 마구리를 헤어내는 과정에서 무리한 압력을 가하여 책판과 마구리를 고정하였던 철심부를 중심으로 가로로 쪼개지거나 균열이 발생하였기 때문으로, 마구리의 부존율이 $92.2\%$인 점과 연관되어 있다. 탈첨자와 같은 보각의 흔적은 $2.89\%$인 292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보각한 편 4점이 책판 이송과정에서 수습되었다. 복각의 경우 총 216면이 2개 이상 복각되었고, 동일책판이 2개 복각된 것은 213개, 동일책판이 3개 복각된 것은 3개가 각각 보존되어 있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지방 관청에서 사용한 책판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매우 크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기록문화전통과 연계해 볼 때 완영책판의 효율적인 보존관리와 심도 있는 조사연구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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