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풍류방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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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음악의 아속(雅俗)미학 패러다임 변화 연구 -조선시대 거문고[玄琴]의 아속적 심미를 중심으로- (Study on the Paradigm Shift of Ah-Sok(雅俗) Aesthetics in Korean Traditional Music - Focusing on the aesthetics of Ah-Sok(雅俗) of Geomungo(玄琴) in Joseon Dynasty -)

  • 강유경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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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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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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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아악과 속악의 개념과 범주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논외로 하고, 조선 전기에서부터 후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궁중음악과 풍류방 중심의 민간음악에 일관되게 투영되어 있는 전통 음악의 아속적 심미 체계에 대해 구체적 사료를 통해 밝혀보았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전기 아속과 관련된 음악의 심미는 주로 궁중의 제례악과 연향악에 투영되었고, 특히 거문고[玄琴]의 심미적 사유가 그 중심에 있었다.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아속과 관련된 음악의 심미는 민간으로 확장되어 풍류방 음악에 투영되어 있으며, 거문고[玄琴]의 심미적 사유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정읍 줄풍류와 대풍류의 사회적·공간적 연관성 (The Social-Spatial Relationship between Jeongeup Julpungryu and Daepungryu)

  • 조석연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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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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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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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향제줄풍류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정읍줄풍류는 풍류음악 형성에 있어 지방풍류문화의 사회적·공간적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정읍 풍류음악의 줄풍류와 대풍류의 형성과 연행의 관련 기록을 통해 두 음악 간의 연관성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살펴보았다. 또한 정읍풍류의 사회적·공간적 특수성에 따른 두 음악의 관련성을 가늠해 보았다. 시대적인 흐름은 풍류방에 변화를 가져왔다. 향제줄풍류는 경제줄풍류와 달리 가락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전승계보나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전계문과 같은 지역 전문연주가들에 의해 재해석된 가락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재인청에 소속되어 있던 무계출신의 전계문과 같은 전문연주자들이 향제줄풍류에 참여하면서 변화무쌍한 무속 형식이 자연스럽게 줄풍류에 이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춤반주인 대풍류와 향제줄풍류의 밀접한 관계는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다. 첫째, 향제줄풍류의 태동에 음악적 주체로 참여한 전계문은 악기연주 뿐아니라 춤에도 능한 인물이다. 전계문을 포함한 세습무계 재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된 '향제줄풍류'는 춤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었던 대풍류 가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재인들에 의해 형성된 정읍 줄풍류의 사회적·공간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초산율계 계보도>에 의하면 전계문으로부터 영산회상과 삼현육각을 배운 정형인이 향제줄풍류 피리 연주자로서 피리 계보 맨 위에 위치하고 있다. 정형인은 무계출신 춤꾼 정자선의 아들이다. 전계문과 정형인 모두 춤꾼인 동시에 전계문은 줄풍류 형성에 영향을 주었으며, 정형인은 줄풍류 수석 피리연주자로 활동하였다. 이들이 향유하던 대풍류 선율은 정읍향 제줄풍류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정읍 줄풍류는 재인들의 대풍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 전통음악 (국악)에 대한 자동 장르 분류 시스템 구현 (An Implementation of Automatic Genre Classification System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 이강규;윤원중;박규식
    • 한국음향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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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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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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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본 논문은 한국의 전통 음악, 즉 국악 장르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제안된 시스템은 입력 음악의 내용기반 분석을 통하여 궁중음악, 풍류방음악, 민속성악, 민속기악, 불교음악, 무속음악 등 6가지 장르중 하나로 자동분류하여 해당 음악의 장르 결과를 보여준다. 국악 장르 분류에 사용된 내용기반 알고리즘은 크게 음악의 특징 벡터 추출 그리고 장르 분류를 위한 패턴인식 과정 2가지로 구성된다. 음악의 특징 벡터 추출은 디지탈 신호 처리기술을 이용하여 해당 음악의 spectral centroid, rolloff, flux 등 STFT (Short Time Fourier Transform) 기반의 특징 계수들과 MFCC (Mel frequency cepstral coefficient), LPC (Linear predictive coding) 등의 계수들을 구한 후 SFS (Sequential Forward Selection) 최적 특징 벡터 열을 선별하여 사용하였으며 패틴 분류 알고리즘으로는 k-NN (k -Nearest Neighbor), Gaussian, GMM (Gaussian Mixture Model), SVM (Support Vector Machine) 분류기를 사용하였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입력 질의의 패턴 (혹은 구간) 변화에 따른 시스템의 불확실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MFC (Multi Feature Clustring) 방법을 이용하여 DB를 구축하였다. 모의실험 결과 k-NN 과 SVM 분류기 모두 $97{\%}$ 이상의 장르 분류 성공률을 보였으나, SVM 이 k-NN에 비해 약 3배 이상의 빠른 분류 성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봉수당진찬(奉壽堂進饌)의 무대와 공연 요소 분석 (Analysis of the Stage and Performance Elements for Bongsudang-jinchan Banquet in Joseon Dynasty)

  • 송혜진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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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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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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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에서는 1795년 화성 행궁에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열린 봉수당진찬의 의례와 악무를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및 "정조실록", "홍재전서(弘齋全書)"등의 봉수당진찬 의례기록과 <화성능행도병>등의 도상자료, 일기체의 한글가사 작품인 이희평(李羲平)의 <화성일기(華城日記)>등의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무대와 공연요소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잔치의 주인공에게 충(忠)과 효(孝)의 의미를 담은 음악과 춤, 꽃과 음식, 술과 글을 예를 갖춰 올리는 궁중연향은 예악(禮樂)의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의례로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고유한 음악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예'라는 상징적이며 총체적인 틀 안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있던 연례의 음악과 춤들이 개별 악곡과 춤으로 해체되어 '작품화'되었고. 궁중음악과 춤의 철학이나 원리,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축소된 채, 음악과 춤의 전통은 형식과 예술적 표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1990년대 이후, 궁중의례 전통의 재현(再現)을 목적에 둔 연구와 행사가 추진되면서, 이와 연관된 공연예술 활동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봉수당진찬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무대화 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原典)의 재현(再現) 및 복원(復原) 문제, 완성도 및 예술성에 대한 문제는 과제로 남아있으며, 지금까지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의주의 외형적 재현에 관심을 두었을 뿐, 무대조건이나 공연요소에 중점을 둔 심도있는 분석은 부족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 무대구성과 공연요소 중심으로 분석해 본 결과, 조선시대 궁중연향 중에서 유일하게 '행궁'에서 개최된 봉수당진찬은 '예악의 정치'를 의례와 악무로 구현하는 궁중연향의 기본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군신동락(君臣同樂)'의 친화의 비중이 높은 연향이었음을 밝혔다. 내연과 외연의 성격이 섞인 봉수당진찬에서는 가림막을 최소화하여 신분의 차서(次序)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원리를 충족시키면서도 삼면에 둘러친 휘장 안에 외빈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술과 음식, 음악과 춤을 다 같이 공유하도록 배치되었다. 또한, 연향공간의 상징성을 내포한 차일을 백관들의 공간에 치고, 임금이 솔선하여 선찬(膳饌)과 산화(散華)를 명함으로써 군신동연(君臣同宴)의 의미와 범위를 확장시킨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봉수당진찬이 '예악의 원리'가 강하게 드러나는 여느 궁중 연향에 비해 '정(情)'을 나누는 화친(和親)에 기반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봉수당진찬에서는 여느 내연에서보다 임금의 역할과 비중이 높았으며, 특히 의주 외의 기록으로 전하는 여러 가지 상황 - 7작 이후에 정조가 신하들을 가까이 불러 나눈 대화, 신하들에게 음식과 꽃을 내림, 잔치를 주제로 직접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도 이에 화답하게 한 일 등-은 의주에 따른 단선적인 연향의 진행에 변화를 주고, 연향의 의미를 확장시키는데 한 몫 하였다. 이밖에, 봉수당진찬의 주악과 정재의 구성을 분석해 본결과 연향에서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움직임이 매우 절제된 것은 여느 궁중연향과 비슷하지만, 춤과 음악을 통해 구현된 소리와 색채감은 매우 다채로웠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봉수당진찬에서는 정조 이전에 치러진 내연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정재를 상연하였고, 이 중에는 새롭게 초연된 레퍼토리도 있었으며, 또 기존의 공연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선유락>이나 <검무> 등, 지방 관아 및 민간의 레퍼토리를 궁중연향으로 수용한 점, 풍류방에서 즐겨 연주되기 시작한 생황을 <학무> 와 연계한 것은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궁중연향의 '열린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