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사회복지 연구의 주요 경향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페미니스트 인식론과 사회복지 연구의 절합을 모색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사회복지학"에 게재된 양적 질적 연구의 주요 경향과 여성에 관한 연구를 분석하고, 방법론 및 인식론적 쟁점을 논의하면서 페미니스트 인식론의 내용과 사회복지적 함의를 살펴보았다. 페미니스트 인식론으로부터 출발하는 연구는 실증주의적 전통에서 출발하는 객관성의 개념을 재고하고, 지식구축 과정에 작용하는 권력관계와 주체-타자와의 관계를 성찰하게 하여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와의 민주적이고 변증법적인 관계를 새롭게 정립시킨다는 점에서 사회복지 연구에 대안적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자들은 페미니스트 인식론과의 조우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사고를 시작하는 사회복지(학)의 비판적 이론과 실천적 전망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 기대한다.
본고의 목적은 동성애에 관한 사회복지(학) 지식생산 양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론적·실천적 확장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학)의 성적 소수자에 관한 연구 경향들은 병리와 결함으로 개념화했던 초기의 의료적 담론을 넘어 인권과 다양성이라는 인권담론으로 이동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상당한 진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수' 를 정상화하고 규범화하는 이분법을 전제하고 '타자화되는' 사회구조적인 맥락을 간과하면서 다양성을 단순히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두 가지 담론 모두 섹슈얼리티에 관한 본질론적 입장에 근거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에 반해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를 사회적인 구성물이자 역사적으로 의미 부여된 사회적 장치라는 인식하에 섹슈얼리티와 동성애에 관한 새로운 이론화를 진행해 왔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사회적 억압에 대한 변혁의 주체로서 레즈비언 정체성을 강조하며, 페미니스트 퀴어이론은 섹스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분류 그 자체를 문제시하고 해체하고자 한다. 이 이론들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을 제안하며, 섹스와 젠더, 섹슈얼리티에 관한 통념에 도전하게 하고, 이성애/동성애의 이분법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의미화된 권력의 효과라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본 연구자들은 페미니스트 섹슈얼리티 이론의 통찰력을 빌어 사회복지(학)에서의 '성적 소수자' 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구성될 것을 주장하면서 궁극적으로 보다 진보적 사회복지학의 지평을 지향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50대 레즈비언의 생애사연구로서, 연구참여자가 '지식의 주체'라는 페미니스트 인식론적 입장으로부터 '레즈비언 정체성'과 '레즈비언의 삶'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였다. 구술자는 동성애 섹슈얼리티가 본질적이고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애사적 관점을 견지했으며, 구술자가 들려준 생애이야기는 동성애에 할당된 사회적 의미를 체현하고 '순응하는 몸'인 동시에 억압과 차별을 인식하고 타개하고자 실천하는 '저항하는 몸'에 관한 것이었다. 이 생애이야기에는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자연화된 고리를 끊어낼 만큼 고통스러웠던 화상과 '불완전한 몸'이라는 자의식으로부터 상처받은 삶의 굴곡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 타자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복받은 몸"으로 의미를 재구성하는 놀라운 탄력성까지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이렇게 연구참여자를 비정상과 병리 등의 의미가 부착된 이분법적 구분의 '성적 소수자'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에서도 자신의 삶을 탄력적으로 살아가며 일상의 실천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적인 행위자로서 이해하는 것은 사회복지 이론과 실천에서 전혀 다른 전망을 요구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배치해할 것인가?"에 대한 전환적인 모색은 새로운 시대에 당면한 사회복지학이 제시해야 하는 중대한 전망이며, 이는 '성적 소수자'에게만 할당된 이슈가 아니라, 사회의 권력관계와 위계구조를 조직하고 억압과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섹슈얼리티와 이에 연동하는 젠더에 관한 '우리 모두'의 아젠다인 것이다.
본 논문은 지구화와 이주의 여성화 시대에 이주여성들의 위치성을 이론화하기 위한 시론적 연구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이론적 자원을 검토하고 이를 페미니스트 이주연구 및 한국사례에의 적용가능성을 탐색한다. 이주란 국경을 비롯한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상황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물리적 위치를 끊임없이 협상해 나가는 과정이다. 특히 여성 이주자들은 남성 이주자들에 비해 더욱 다면적인 억압과 정체성 변환의 요구에 직면하며 따라서 그 누구보다 위치의 정치학을 체현하는 존재들이다. 본 논문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이론적 자원은 이러한 주변화된 존재들이 다양한 정체성 협상을 통해 페미니즘적 주체로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유용한 인식론적 통찰과 개념 및 언어적 도구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최근 페미니즘 연구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이론들이다. 그것은 글로리아 안잘두아 등이 제안한 경계지대와 메스티자 주체론, 억압의 교차성 이론, 들뢰즈와 과타리의 이론을 페미니즘적으로 전유한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위와 유목적 주체론이다. 권력의 교차와 주체의 변화를 공간적 은유로 개념화한 이들 이론의 검토를 통해 상호 맞물려 있는 공간과 젠더, 이주에 대한 인식론적 통찰은 물론 한국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분석적 도구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서구 여성주의 지리학을 비롯한 일군의 비판지리학자들을 중심으로 발달해 온 스케일(scale) 논의를 재검토함으로써 기존 국내 여성운동 연구에서 나타나는 공간성에 대한 인식과 방법론적 한계를 보완하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연구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운동 연구에 있어서 스케일 개념의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페미니즘 연구에서 종종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공간 메타포는 사회운동의 공간성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메타포로서의 공간에 그치지 않고 사회운동에서 실제로 중요한 인식론적, 실천적 도구가 되는 공간에 대한 탐색을 심화시키기 위해 본 연구는 마스턴과 브레너를 중심으로 제기된 2000년대 이후 스케일 논의의 주요 쟁점을 수용하여 이러한 논의가 여성운동 연구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둘째, 상대적으로 덜 연구된 미시 스케일의 역할을 조명함으로써 미시와 거시가 연결된 다중스케일적 접근을 옹호하고자 한다. 여성주의의 오랜 투쟁의 대상이었던 공적/사적 분리는 위계화된 스케일 인식, 즉 거시 스케일이 더 영향력 있고 중요하다는 인식과 종종 맞닿아 있다. 그러나 여성의 영역이라고 인식되는 재생산 영역은 거시 스케일상의 생산과 정치경제와 불가분의 관련성을 지닌다. 본 연구는 공적/사적 분리와 위계화된 스케일 인식을 단번에 허무는 지점, 즉 사적인 것이 곧 공적인 것이 되고 지구적인 것이 곧 로컬한 것이 되는 지점을 파헤친다. 이를 위해 한미 FTA 반대운동에서 등장했던 유모차 부대의 사례를 간략히 소개함으로써 다중스케일적 접근이 한국 여성운동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 지를 탐색한다.
본 연구는 그동안 '공식적' 역사 속에서 부재, 혹은 침묵되어 왔던 '양공주'의 경험을 자기재현의 서사로 재구성하면서, 재현과 사회적 편견, '듣는 자'와 '말하는 자'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고 '타자 만나기'라는 인식론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여성주의 구술생애사의 방법론적 함의를 찾고자 한다. 기지촌 여성노인의 내러티브는 필연/우연, 강제/자발, 매춘/사랑, 양갈보/색시의 경계에 서 있는 여성이 어떻게 '정상적 한국 여성', '한민족', '정상 가족'에 관한 신화들과 충돌하고 협상하며 비/순응적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새로운 자기정체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구술과정의 만남은 '양공주'가 누구인가에 관한 질문을, 침묵과 드러냄을 강요하는 '듣는' '우리(나)는 누구인가'의 문제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론적으로, '타자'에 대해 연구하는 '우리'는 '서발턴이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선행해서 '우리는 과연 들을 수 있는가, 무엇을 진정으로 듣고 싶은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상상을 분석하면서 기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윤리를 모색한다. 과학기술을 돌봄물(matter of care)로 이해하는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연구(Puig de la Bellacas, 2011)에 기댄 이 글은 우선 인공지능이 자율성을 문화적 상상으로 강력하게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스스로의 경험과 학습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 이 자율성은 기술적 영역을 넘어 이상적인 인간상을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에 기반한 딥러닝 기법과 무장한 무인 비행기가 예증하듯, 인공지능 기술은 보이지 않는 인간노동과 복잡한 물질적 장치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율성은 허구에 가깝다. 또한 이른바 '조수 기술 (assistant technology)'이 보여주듯, 가사노동을 부불노동화하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젠더화된 노동인식에 기초해 수많은 인간의 돌봄 노동은 비가시화되는 반면, 기계의 돌봄노동은 적극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의 문화적 상상은 자율성과 행위능력을 이상적인 인간의 특질로 정의하면서 장애의 몸과 이 몸이 갖는 가치인 연약함과 의존성의 연대는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과 그 문화적 상상은 능력이 있는 몸(abled-bodies)을 이상화하고 기술의 자율성을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서로 의존하는 인간과 기술의 현실적 관계를 삭제하고 있다. 결론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타자의 비정형적인 몸과 인간의 돌봄노동을 가치 없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임 있게 응답하는 기술은 주변화된 존재들에 공감하고 의존성을 긍정하고 연약성 사이의 연대를 촉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는 이런 대안적인 기술을 형상화하기 위해 예술가 수 오스틴의 퍼포먼스에서 영감을 얻어 '휠체어 탄 인공지능'을 제안한다. '휠체어 탄 인공지능'은 자율성을 과시하기보다는 타자의 몸과 노동을 부정하지 않고 이들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상호의존과 돌봄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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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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