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탄성복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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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악 환자에서 조직양화제(tissue conditioner)가 시간과 두께에 따라 체적안정성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 (Tissue conditioner in edentulous patients, depending on the time and the thickness of the changes affect the dimensional stability)

  • 심연수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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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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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94-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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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연구는 임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3종의 조직양화제(Coe-comfort, GC Soft-Liner, Visco-Gel)의 시간에 따른 체적 안정성을 비교하였다. 시편은 10mm의 반경으로 두께를 1.5mm, 3.0mm로 각각 제작하여 두께에 따른 차이를 비교하였다. 체적의 변화는 시편 제작 후 1시간 (baseline), 12시간, 24시간, 36시간, 3일, 7일에 측정하였다. SAS 6.04 통계 package program을 이용하여 ANOVA분석하였다. 실험한 조직양화제에서는 점탄성을 상실하여 조직양화제를 교체하거나 기공 과정을 하기에 적합한 시간은 변형이 적은 혼합 후 36시간~3일이었다. Tissue conditioner의 종류에 따라 시간의 경과에 따른 탄성 변화량에는 유의할 만한 차이가 있었다(p<0.05). 조직양화제 1.5mm, 3.0mm 두께에 의해 체적안정성에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p<0.05). 자체의 이상적인 탄성 변형과 복원력만을 비교 하였을 때를 보면, Visco-Gel 3.0mm군에서 가장 안정적인 체적안정성을 보였다. 또한, 조직 양화제는 재료 간의 체적 안정성에 다양한 범위가 있어 기능인상에 적합한 것을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1957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수리에 사용된 철물(鐵物)의 재료학적 특성 연구 (A Study of the Material Properties of Steel Used to Repair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from Beopcheonsa Temple, Wonju in 1957)

  • 유하림;이재성;이태종;박희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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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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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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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국보 제101호로 지정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조성 후 수차례 이전 및 이건되었는데, 특히 한국전쟁 시 폭격으로 인한 심각한 훼손으로 1957년 전면적인 해체·보수가 이루어졌다. 당시 재료 및 수리 내용이 남아있지 않지만 보존 처리를 진행하면서 지광국사탑에 사용된 다양한 형태의 금속재료를 확인하였다. 각 부재를 연결하는데 꺽쇠 및 앵커볼트 외에 두께 9mm의 원형철근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부재와 모르타르 복원재를 연결하기 위해 다양한 두께의 원형철근과 철사 등이 사용되었다. 건축물로 분류되는 석탑에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이형철근이 아닌 매끈한 표면의 원형철근이 사용되었다. 이는 모르타르 복원 시 재료가 가진 부착 강도와 결합력 강화를 위해 재료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서로 교차시켜 결속하고 불규칙적으로 꼬아 단면적을 늘리는 등 재료의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금속학적 분석법을 적용하여 알아본 결과 전체적으로 탄소 함량이 낮은 아공석강 소재로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미세조직 내에는 불규칙한 크기로 분포하는 방울 형태의 비금속개재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나 전체 성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미량으로 포함되어 있다. SEM-EDS의 면 분석으로 검출되지 않는 망간(Mn)과 황(S)이 정량 분석 및 EPMA 분석법으로 확인한 결과 망간황화물(MnS)로 시료의 형태와 관계없이 미세조직 결정립 내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철물의 형태 제작 후 작업의 용이성을 위해 2차로 균질화 등 열처리를 실시한 것으로 보여지며, 철물의 두께가 얇아질수록 포함된 탄소 함량이 감소하고 탄성과 신장률이 증가하는 특성에 따라 복원 작업 순서를 정하고 다양한 형태의 철물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