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축제기록물

검색결과 3건 처리시간 0.014초

축제기록물의 통합관리를 위한 메타데이터 스키마 개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Metadata Schema for Integrated Management of Festival Archives and Records)

  • 윤은하;배삼열;심갑용;김용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 /
    • 제14권1호
    • /
    • pp.25-51
    • /
    • 2014
  • 본 연구에서는 개별적으로 생산 관리하고 있는 축제기록물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메타데이터 스키마를 제안하였다. 연구방법으로 메타데이터와 축제기록물에 대한 문헌조사 및 한국, 호주, 영국의 기록관리 메타데이터 표준을 분석하고 축제조직위원회의 축제기록물 담당자 면담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축제기록물의 다양한 특성을 반영한 메타데이터를 제안함으로써,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기관들로부터 생산되는 기록물의 통합관리의 효율성을 확보하여 축제 기록물의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남원 춘향제 기록물의 관리방안 (A Study on the Management of the Chunhyang Festival Records)

  • 문지희;장우권
    • 한국비블리아학회지
    • /
    • 제25권1호
    • /
    • pp.397-420
    • /
    • 2014
  • 이 연구는 지역축제기록물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축제 중 하나인 춘향제를 중심으로 남원 춘향제 기록물관리현황에 대해 조사 분석하였다. 그 결과 나타난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춘향제 기록물관리의 문제점은 첫째, 민관협력체제의 부재와 춘향제전위원회의 한시성, 둘째, 축제기록물관련 조례의 부재, 셋째, 체계적인 문서관리의 부재, 넷째, 기록관리 전문인력 및 기록관 운영의 부재로 나타났다. 따라서 춘향제 기록물이 통합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관리방안을 제시하였다.

한문 희곡 <동상기(東廂記)>의 구성과 야담 <동상기찬(東廂記纂)>과의 연계성 (A Study on the Configuration of Chinese Drama and the Connection between Yadam )

  • 김준형
    • 공연문화연구
    • /
    • 제39호
    • /
    • pp.325-355
    • /
    • 2019
  • 1791년 6월 12일, 노총각 김희집과 노처녀 신덕빈의 딸의 혼인이 이루어 졌다. 이 혼인식은 국가가 주도해 시행한 일종의 노처녀노총각 혼인 프로젝트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혼인은 인륜의 시작으로, 때를 놓치면 천지의 조화로운 기운[和氣]이 상한다던 당대 통념을 염두에 둔 정조가 진두지휘한 국가 정책이었다. 정조는 이 사건을 이덕무에게 기록하게 했는데, 그것이 <김신부부전>이다. 민간에서도 이 혼인에 주목했는데, 이옥(李鈺)은 희곡의 틀을 빌어 <동상기>를 창작했다. <동상기>는 가난한 백성에게 덕화를 베푼 임금을 찬양한다는 주지 아래, 오락적 요소를 가미한 텍스트다. 희곡을 모방했지만, 공연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동상기>를 두고 수준 낮은 작품이란 평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완정한 극적 구성물로 이해했던 결과다. <동상기>는 극 형식만 차용했을 뿐, 주된 목적은 임금의 덕화를 찬양하되 다양한 오락적 요소를 틈입시킴으로써 축제의 장을 담아내려 했다. <동상기> 4개의 절(折)마다 각각 다른 문체가 사용된 것도 그러하다. 1절과 2절에는 설화와 속담, 3절에는 판소리, 4절에는 연극을 배치시켰다. <동상기>를 통해 공연하겠다는 의도 대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문체를 적용한 것이다. 이후 1918년 한남서림 주인 백두용은 이옥의 <동상기>에 기존 야담 <동상기찬>을 더한 동상기찬을 출판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동상기>와 <찬>을 별개의 텍스트로 인지했지만, 기실 둘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애초 김신 부부가 임금이 살펴줌으로써 인륜의 도리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백두용은 근대로 전환하는 도정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 줄 것을 고대했다.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백두용은 그 단서를 임금이 가난한 백성에게까지 눈길을 미쳤던 <동상기>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 백두용은 이옥이 쓴 정일(正目)을 각각 '재현(才賢)', '덕혜(德慧)', '권택(眷澤)', '복연(福緣)', '보유(補遺)'로 분류하고, 기존 야담에서 해당 범주에 맞는 작품을 선취하여 <찬>을 만들었다. 그러니 <동상기>와 <찬>은 '지기(知己)'라는 연결 고리로 이어진다. 실제 백두용은 1절에서 4절까지를 '누군가가 나를 알아줌 → 내가 누군가를 알아줌 → 적선→ 여경(餘慶)'으로 각각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구체화했다. 우리가<동상기>와 <찬>을 분리시켜 다룰 수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