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불교는 제도종교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 20세기 중반 이후 그리스도교와 함께 대표적인 제도종교로 받아들여진 역사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특히 불교는 전통에 기반한 제도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교는 또한 철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철학을 지적 명료함과 삶의 지혜 추구로 정의해온 서양철학적 배경을 수용한다고 해도, 불교는 고타마 붓다가 발견한 진리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하지 않고 철학적 비판의 가능성을 충분히 허용한다는 점에서 철학으로 분류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철학으로서 불교의 가능성은 불교의 철학함(doing philosophy) 가능성으로 직결된다. 불교의 철학함은 일상으로부터의 거리두기와 그 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관찰과 집중, 새로운 세계관의 형성 등의 세 과정으로 제시될 수 있고, 이러한 철학함은 후기 자본주의적 일상에 지친 우리의 삶에 명상 같은 방법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교는 종교로서의 속성 또한 분명히 지니고 있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종교와 철학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지난한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스도교 문명권의 종교와 철학 사이의 엄격한 분리 전통은 불교를 철학으로 분류하는 일을 꺼리게 하는 요소로 현재까지 작동하고 있다. 철학의 목적에 지적 명료함과 삶의 실천적 지혜 추구를 함께 포함시킬 경우, 불교는 안심(安心)이라는 종교 고유의 기능과 입명(立命)이라는 철학과 종교의 공통 역할을 공유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종교와 철학 사이의 관계에 관한 우리의 새로운 관점 모색 또한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문화'가 좋아 인쇄를 하게 되었다는 박종도 (주)윤일문화 대표이사가 최근 큰 일을 해냈다. 바로 '한국철학사전'을 기획 발행한 것이다. 세계철학에 비해 한국철학은 체계화되지 않았고 홍보도 부족해 한국철학=무속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한국철학사전을 발행하게 되었다고 박종도 대표이사를 만나 한국철학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한국철학사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 글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렇지만 한국의 실천철학사에서 반드시 유념해 봐야할 인물, 무엇보다 '철학적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할 사회철학자로서의 김두헌의 철학(함)의 본질적 실상을, 그의 실천철학 체계의 핵심 얼개를 이루고 있는 '가치론적 변증법'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적으로 규명해 보는데 일차적 목적이 있다. 이러한 작업은 해방 이후 이제껏 70여 년 이상 한국 사회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통치 권력을 행사해온 소위 '친일 독재 세력'의 정치적 지배 권력을 비호하고 정당화한 주도적인 이데올로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 철학자적 역할을 수행해 나갔던 김두헌의 실천적 철학함 방식과 그 철학적 여정에 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려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현실 권력과의 거리두기 철학(함)'은 김태길 윤리학의 가치론적 지향성인 '사회 개혁(성)'에 기초한-비록 소극적인 형태이지만-실천철학적 저항의 한 방식인가? 아니면 외관상 독재 정권과의 비타협성을 가장하여, 반민주적 통치 세력을 용인해 버리는 일종의 변형된 가치중립적 기회주의 행태인가? (2) 박정희 유신 정권 하에서 김태길이 제기한 '국민윤리 교과 개설 및 교육의 전면적 활성화'에 대한 옹호 논변은 과연 그 자신의 고유한 실천철학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인가? 혹은 유신체제의 존속 및 강화를 위한 이념적 정당화 작업의 일환으로 국민윤리 교과의 대학 내 개설과 교육의 효과적 추진 사업에-측면 지원을 통해서라도-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그를 둘러싼 외적 조건과 상황으로 인해 초래된 것인가? 두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1) 무엇보다 김태길 윤리학이 자신의 실천철학적 방향성으로 설정한 현실 개혁(성)이 그의 사상적 전후기를 일관하는 중심적인 윤리학적 특성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독재 정권 하에서 나타난 거리두기 철학함은, 비록 미온적이며 소극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독재 권력에 대한 실천철학적 저항의 한 형태였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한 거리두기 철학은 현실 개혁이라는 그 자신의 사회윤리학적 지향성 및 신념에서 의도되어 수행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현실 권력 영합적인 철학적 실천'으로 귀착된다는 점에서 그 결정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2) 김태길로 하여금 그러한 옹호 주장을 펼치는데 보다 일차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그의 철학적 신념보다는, 그의 철학자적 삶을 둘러싼 통치 세력과의 관계 그리고 체제 옹호 이데올로그로 나선 주요 선배 철학자들과의 친밀한 인간관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명을 잠정적으로 보다 설득력 있는 것으로서 채택하였다. 그럼에도 어느 쪽으로 해석되든지 간에, 당시 국민윤리 교육 및 교과에 대한 옹호 논변을 개진한 김태길의 행위는, 정의로운 민주 사회의 구현을 추구하는 개혁적 도덕 철학자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 뿐 아니라, 오히려 그에 '역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제아무리 비판이 가해져도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더불어 측면에서의 그러한 지지 입장은, 정통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 권력과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시도하는 철학함 방식을 철저하게 고수하지 못한 탓에 야기된 것임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러한 옹호 논변은, '거리두기 철학함의 기저에는 사회 개혁(성)의 이념, 즉 반민주적 독재 체제에 대한 도덕적 비판과 거부, 그리고 민주사회의 구현이라는 실천철학적 이념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해석에 의거하여 개진된, 그의 사회윤리학에 대한 긍정적 평가마저 일순간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을 내장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본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기본 이해와 태도에 대하여 그의 저작이 전승된 과정에 주목하여 반성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일관되고 통일된 하나의 체계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 철학이 가진 학문적 위상에 비춰볼 때 당연한 기대처럼 여겨진다. 특히 현재 우리에게 전승된 그의 저작은 논리학에서 출발하여 자연학, 형이상학, 윤리학과 정치학, 그리고 수사학과 시학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순서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이념에 기인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저작이 전승되고 편집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기대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해하기보다 오해하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초기 전승사, 특히 기원전 1세기경 최초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의 편집자로 알려진 로도스 출신의 안드로니코스의 작업을 주목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가진 구성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전승의 역사적 이해와 함께 전승된 저작에 대한 고전문헌학적 고찰, 그리고 그의 철학 전반에 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와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가지는 구성적 특징을 그의 저작이 전승된 과정에서 유심히 살펴봄으로써 '순수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완전한 복원과 재구성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그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종교개혁은 근대철학과는 무관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근대철학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철학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은 두 가지 면에서 근대철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의 기본원리인 신적 이성에 대한 신적 의지의 우위를 강조하는 주의주의는 교회의 전승을 무시한 채 '오직 믿음으로'를 강조함으로써 성서와 교리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허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극심한 종교적 분쟁이 야기되었고 근대지성인들은 이를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이른바 보편종교라 할 수 있는 이신론과 자연종교를 추구하게 되었다. 또한 주의주의는 자연에 대한 탐구에 있어 종래의 사변적 탐구를 탈피해 관찰과 실험에 근거한 실험적 탐구에 나서게 함으로써 인간 본성에 대한 실험적 탐구인 실험철학(경험론)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요컨대 종교개혁은 한편에서는 보편종교의 추구를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험철학의 출현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보편종교란 행동과 실천의 근거가 되는 신비적 종교가 아니라 단순히 과학적 탐구를 위한 근거가 되는 세계관에 불과한 것이기에 보편종교를 추구한 철학은 '과학을 위한 철학'이었다. 또한 실험철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인간본능을 탐구한 이른바 인간학이란 점에서 '과학에 의한 철학'이었다. 결국 종교개혁은 과거 철학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종교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과학을 앉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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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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