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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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pression of Divinity and Humanity of Christ through His Body and Clothes in the Medieval Paintings, Transfiguration (중세 '변형' 도상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 Choi, Sun Young
    • The Journal of the Korea Content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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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18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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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9-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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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When expressing Christ visually in the medieval Christian painting, the most important issue was how to express the divinity as Son of God and the humanity as attribute of human in a balanced manner.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examine both formative and symbolic characters of divinity and humanity on the Christ's body and clothes in the Medieval paintings, Transfiguration of Christ. In the paintings, Christ's body is definite evidence to show both his divinity and humanity. In connection with the body, the clothes reveal Christ's humanity and divinity as well. Through this research, the study found that the divinity and humanity on the Christ's clothes in the Transfiguration of Christ were as follows: Blue, gold, purple, white and bleaching effect are the emblem of divinity, and red and color contrast effect with a high chroma stand for humanity of Christ. In addition, unstructured wrinkles of clothes reveal Christ's divinity, on the other hand, structured drapery shows his humanity through emphasizing volume of the body. Finally, divinity of Christ is shown on the gold clavus and red clavus intensify his humanity. Medieval Christian paintings are products planned out to express Christ's dual nature. There is a significance that the paintings represent the profession of painter's faith and the dogma of the era. Furthermore, they suggest the importance of the image to deliver the abstract concepts by visualizing.

헤이안쿄[平安京]의 변용과 중세 초기 정권도시

  • 오노 마사토시
    • Korean Journal of Heritage: History &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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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46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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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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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고는 중세도시연구의 관점에서 도성 헤이안쿄(平安京)가 중세 교토(京都)로 변화하는 계기와 그 의미, 그것이 새로운 무가(武家) 정권도시(政權都市)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하여 논하였다. 율령제 마지막 도성인 헤이안쿄는 천황을 절대적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이 동심원구조로 구현된 '왕성(王城)의 땅'이었으나, 10세기 후반 이후 도성의 구심점이었던 내리(內裏)가 헤이안큐(平安宮) 밖으로 나오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고, 도성의 이념과 틀이 급속하게 해체 변용되었다. 또 고대왕권을 대신하여 새로운 형태로 왕권과 여러 권력을 담당한 원(院)과 롱관가(瀧關家), 대두하는 무가권력 등이 그 본거지에 권력의 개성과 시대성을 반영한 새로운 경관과 공간원리를 생성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는다. (1) 큰 정토정원을 갖는 御堂(사찰)과 세트를 이룬 御所(천황의 거소). (2)황통(천황가 내의 계통)과 가족의 상징으로서 조상을 모신 분묘를 중심으로 한 도시형성. (3) 내리를 기점으로 남북으로 주축을 갖는 고대도성과 달리, 어당과 어소가 동서로 배열된 동서가로를 주축으로 한 도시계획. (4) 수도와 외부를 잇는 교통의 결절점에 입지하였고, 특히 하천변을 향해 적극적으로 확장된 도시. 일본 중세는 무가정권의 시대를 맞이하여 도고쿠(東國) 초기 무가정권의 본거지 히라이즈미(平泉)와 최초의 막부가 열린 가마쿠라(鎌倉)가 모델로 한 것은 '도성 헤이안큐'가 아니라 헤이안큐 수도 밖 신도시의 경관과 공간원리였다. 특히 히라이즈미와 가마쿠라 등이 가정기관(家政機關)과 조상의 묘를 중심으로 한 '가족 원리'에 따른 정권도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단순한 도시의 모방이 아니라 주종관계를 축으로 의제적인 '집(家) 원리'로 권력이 형성된 무가에는 더욱 어울리는 논리이며, 또 고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그 한편으로 무가의 대들보로서 무사들에 의해 추대된 초기 무가정권은 도시의 논리와 경관을 도입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과 공통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였다. 그것이 최신의 도시를 모방한 어당과, 그것과는 대조적인 도고쿠 무가의 전통적인 어소의 병립이라는 종교공간과 정치 일상공간에서의 권위표상의 의식적인 분리에 의해 표현되었다. 히라이즈미와 가마쿠라에서는 유통, 상공업 등의 도시기능과 도시적인 경관이 정비되기까지 약 50년의 시간이 경과할 필요가 있었다. 12세기 일본의 무가정권은 스스로의 거점으로서 도시를 기획, 형성하는 의식과 실현하는 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가 검토가 필요하다. 명확한 동아시아모델의 도성을 실현함으로써 왕권의 존재를 드러낸 고대 율령정권과의 차이점은 매우 크다. 이후 무가가 권력의 의도를 도시구조로서 명확하게 드러낸 것은 15세기 후반의 전국시대 다이묘(大名)의 죠카마치(城下町)로부터이다. 특히 16세기 후반부터 천하통일을 실현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연합정권에서는 구체적인 성(城)과, 그 성을 중심으로 한 계층성을 명시한 죠카마치의 공간설계가 있었다. 여기서는 다시금 '도시의 경관'이 명확한 권력의 상징으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The Natural hazards and Drought Periodicity during the Medieval Times in Korea Based on the History of Goryeo(Goryeosa) (고려사를 통해 본 한국 중세의 자연재해와 가뭄주기)

  • YOON, Soon-Ock;HWANG, Sangill
    • Journal of The Geomorphological Associat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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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17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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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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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e natural hazards such as droughts, floods and frost injuries, and their relationships with the social unrest phenomena such as years of famine, smallpox and revolutions during the Medieval times(AD 936~1391) in Korea are compared and analyzed based on the History of Goryeo containing astronomical weather and climate events during the Goryeo Dynasty. Among the natural hazards during the Goryeo Dynasty, the droughts with a period of 4~5 years on average are recorded most frequently. By time series analysis, the most frequency of droughts can be found in AD 286~335, AD 786~835 and AD 1261~1320 during the Ancient and Medieval times. It is suggested that three cycles of the droughts during approximately 1,500 years of the Ancient and Medieval times are recognized and they had happened with the time intervals of approximately 500 years. The frequency of droughts increased in the late Goryeo Dynasty is consistent with those of the social chaos factors such as years of famines, smallpox and revolutions. These records suggest that the natural hazard such as years of famines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influencing on the collapse of the Goryeo Dynasty, agrarian cou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