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중농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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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賈誼)의 경제사상(經濟思想) 연구(硏究) (A study on the Economic Thought of Jia yi)

  • 조원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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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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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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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가의는 서한 초기의 만연한 빈부격차의 심화와 음란하고 사치스러운 풍속이 유행하는 사회적 풍조와 농업생산 인구가 감소하는 한편 생산 활동에 종사할 수 없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가의가 갖게 되는 문제의식은 바로 서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질서의 붕괴와 도덕적 타락에 대한 염려와 국가재정 고갈의 위험성에 대한 것들이었다. 가의는 서한 초기 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경제적 폐해현상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착수하여 자신의 경제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즉 가의의 경제사상은 한나라 초기의 무위자연의 방임주의적인 경제정책의 폐해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제기된 것으로 중농억상 정책을 구체적인 개혁의 청사진으로 제시하는 한편 화폐제도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개혁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이러한 두 가지의 개혁방안은 가의의 경제사상에 있어서 이론적 근간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의의 경제정책 청사진에 대하여 본문에서는 중농억상 정책과 민간에서의 화폐주조 금지 정책을 중심으로 조명해보았다.

정원에 표상된 이상 - 토머스제퍼슨의 아카데미컬 빌리지와 몬티첼로의 경우를 중심으로 - (Ideals Represented in Gardens - Focused on Thomas Jefferson's Academical Village and Monticello -)

  • 성종상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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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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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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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대체로 정원은 인간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둘 간의 영향관계로 설명되어 왔다(Francis and Hester, 1990). 이 글은 정원을 인간의 꿈과 이상이 구축된 표상으로 간주하고 그 구체적인 면모를 토마스 제퍼슨의 정원을 사례로 하여 고찰해 보려고 한 것이다.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토머스 제퍼슨은 직접 여러 정원을 설계하여 조성한 후 몸소 가꾼 정원가이기도 하였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완성시킨 몬티첼로, 아카데미컬 빌리지, 포플러 포레스트 등에는 그의 국가적 이념으로서 자유와 민주주의, 중농주의 등의 이념적 가치와 함께, 전원에 대한 지향 그리고 고등교육에 대한 이상이 숨김없이 표상되어 있다. 정치가이자 신생국의 선각자로서의 이상과 함께 그의 개인적인 꿈과 신념이 공간적으로 표출되어 있는 것이다. 추구하고자 하는 상징적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그것을 공간적 도식으로 재현함으로써 제퍼슨의 이상은 자신은 물론 그 곳을 찾는 이들에게 재음미되고 공유되어졌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제퍼슨에게 있어서 정원은 이념과 이상을 공간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무대였다고 할 수가 있다.

조선시대 궁원 내 친잠(親蠶)문화의 배경과 공간적 특징 (Backgrounds and Spatial Characteristics of Sericulture in the Rear Garden of Palace in Joseon Dynasty)

  • 허선혜;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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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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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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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궁궐 내에서 일어났던 친잠문화의 배경과 공간적 특징에 대한 탐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조선은 유교적 중농주의 국가로서 국초부터 농업 못지않게 양잠업 장려에 열의를 보여 양잠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해 왔다. 그러한 노력의 일면으로 조선 왕실은 궁궐 내에서 친잠활동을 하게 되었다. 조선은 초기 태조 연간부터 궁원 곳곳에 뽕나무를 심었으며, 세조는 동궁(東宮) 근처에 잠실(蠶室)을 설치하여 세자를 비롯한 궁중 사람들에게 양잠의 중요성을 수시로 알게 했다. 성종 연간에는 조선 최초로 창경궁 후원에 채상단을 만들어 친잠례를 거행하였고, 이후 채상단은 위치를 달리하며 광해군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 후 영조 연간에는 경복궁에 채상단과 정해친잠비(丁亥親蠶碑)를 건립하였는데, 이는 경복궁 유지에 대한 영조의 애착과 양잠의 권면에 대한 적극적 의지의 산물이었다. 경복궁 유지에서 터가 고르고 뽕나무를 심기 적합한 동편이 선택되어 채상단을 축조했으리라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이 장소는 세종 연간 잠실이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