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조형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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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되기: 투쟁과 협상의 변주곡, 2003-2016년 ('Becoming Regular Employees': A Variation of the Struggle and Bargaining of Irregular Workers at Hyundai Motor Company, 2003-2016)

  • 유형근;조형제
    • 산업노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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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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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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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의 목적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투쟁과 협상 과정을 사회운동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2003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사관계의 제도적 틀 바깥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제기하며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투쟁과 협상을 지속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는 애초 견지하던 '문제의 부인'에 입각한 대결적 태도에서 벗어나 점차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자세로 이동했다. 결국 2016년 초 6천 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특별 고용'이라는 운동의 성과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을 분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둘러싼 동맹/갈등 체계의 변화와 저항의 사이클을 기준으로 3개의 시기를 구분하였고, 각 시기별 동맹 체계 내의 협력-갈등 관계, 비정규직 운동과 갈등 체계와의 대결-협상 관계, 동맹/갈등 체계 사이에서 등장한 유력한 중재자의 역할 등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궤적을 살펴보았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특별 고용'으로 귀결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그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를 드러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결국 '정규직 되기'로 수렴되었고, 정규직 노조의 동맹 체계로부터의 이탈이 나타났으며, 정규직 전환의 결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소멸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종합적 평가를 통해 우리는 6천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특별 고용'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생산 현장의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며 글을 마친다.

역사·문화가로의 구성요소 및 색채특성 분석 연구 - 김해시 가야의 거리를 중심으로 - (A Study on Analysis of Components and Color Characteristics of History·Culture Streets - focused on Street of Gaya in Gimhae -)

  • 안수미;손광호;최인영
    • 한국과학예술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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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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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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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역사·문화거리란 그 지역만의 역사·문화적 자원과 도시가로의 연계를 통해 지역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가로환경으로 이를 위해서는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특색 있는 디자인 적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에 조성된 가로 대부분이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물리적 환경 정비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의 개선을 위해서는 역사·문화거리에 대한 정확한 진단 및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에 본 연구는 대표적 역사·문화가로인 김해 가야의 거리를 대상으로 구성요소 및 색채특성을 분석하여 역사·문화가로 조성을 위한 계획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는 역사·문화가로를 이해하는 틀로서, 나아가 그 가치를 재인식하고 활성화하는 데 의의가 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역사·문화가로의 구성요소를 포괄적 측면에서 비 물리적 요소와 물리적 요소로 구분하여 세분화하였다. (2) 구성현황을 살펴본 결과, 가야의 거리는 역사·문화유적과 조형물, 가로시설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파악하였다. (3) 색채 분석 결과, 역사·문화가로의 경우 역사·문화유적과의 조화와 통일성을 중심으로 계획되고 있으며, 전체 가로경관을 통합하는 체계적 디자인 접근이 미흡하고 장소 아이덴티티 부여 및 효율적 정보전달을 위한 추가적 색채계획이 필요함을 파악하였다.

한국인 생활 속 인삼 문화의 상징성 (Symbolism of the Ginseng Culture in Korean Lifestyle)

  • 옥순종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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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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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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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문화는 한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고 전승해오고 있는 행동 양식과 생활 양식을 의미한다. 한국인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생활 도구, 공예품, 설화, 시문에 들어간 인삼은 한국인의 행동 양식과 생활 양식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인삼은 무병장수의 상징으로서 생활 기물과 공예품, 시문에 새겨져 우리의 문화가 되었다. 도자기에 기품있게 그려진 인삼은 조형미와 함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그려진 것이다. 산신도에 공통으로 들어간 소품은 불로초(不老草) 인삼으로 수복강녕과 함께 인삼의 신령함에 대한 믿음이 컸음을 보여준다. 떡살, 밥상보, 장식품, 성냥, 부채 등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생활 도구에 인삼이 새겨진 것은 인삼을 건강과 장수를 염원하는 부적처럼 여겨 가까이 두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떡은 제사, 회갑 잔치, 결혼의례, 생일잔치 등 제례와 잔치에 올리는 음식이었는데 우리 선조들은 신령하고 건강을 상징하는 인삼을 떡에 새기기 위해 떡살에 인삼을 무늬 틀로 만들었다. 가족 공동체 안에서 '기다림과 배려'를 의미하는 생활 기물인 밥상보에 인삼 무늬를 장식하는 둥 생활 기물 중에서도 특히 먹거리와 관련된 생활 도구인 젓가락, 숟가락, 찻잔. 단지 등에서 인삼문양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전승되고 있는 인삼 관련 설화(說話)중 가장 많은 것은 효행담으로 인삼은 효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건강을 기원하는 인삼을 선물하며 주고받은 서신과 시문에 인삼은 단순한 약재가 아니라 우정과 은혜를 나누는 귀물(貴物)로 감사의 상징이다. 생활 기물, 예술품, 시문과 서신에 드러난 인삼은 다음과 같은 상징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설화, 민담에서 나타나는 인삼은 부모에게 바치는 효행의 상징이었다. 둘째, 존경하는 스승, 우정 깊은 친구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상이었다. 셋째, 생활 기물, 예술품에 새겨진 인삼은 심미성과 더불어 수복강녕을 상징하는 주술적 역할을 했다. 밥상보, 떡살 등 생활 기물에 새겨진 인삼은 무병장수의 기원과 함께 배려의 공동체 정신을 담고 있다.

입지와 장소 특성으로 본 암각바둑판의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 (A Study on the Meaning and Cultural Properties Value of Rock-Go-Board from the Viewpoint of Site and Location Characteristics)

  • 박주성;노재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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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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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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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종합적인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국내 돌바둑판의 위치 및 형태 그리고 입지 유형을 파악하는 한편 주변 경물과 각자 그리고 인근의 전래지명과의 관련성 분석과 해석을 통해 암각바둑판의 본질적 특성 및 장소적 의미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바둑판에 나타난 '네모난 바둑판과 둥근 바둑돌'의 천원지방적(天圓地方的) 형상, 흑백 바둑돌로 표상되는 음양조화 그리고 하늘 회전을 표현한 361로 등은 '우주적 질서가 투사(投射)된 상징체'이다. 또한 영원성을 바탕으로 바둑 삼매경에 빠진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리고 '난가(爛柯)' 모티프는 속세를 벗어난 망우청락(忘憂淸樂)의 '위기선미(圍棋仙味)'를 통해 '인생과 자연'의 관계를 시공간적으로 일치하고자 했던 천인합일의 표상이자 우미와 소요를 추구한 고아한 풍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돌바둑판은 총본 연구는 종합적인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국내 돌바둑판의 위치 및 형태 그리고 입지 유형을 파악하는 한편 주변 경물과 각자 그리고 인근의 전래지명과의 관련성 분석과 해석을 통해 암각바둑판의 본질적 특성 및 장소적 의미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바둑판에 나타난 '네모난 바둑판과 둥근 바둑돌'의 천원지방적(天圓地方的) 형상, 흑백 바둑돌로 표상되는 음양조화 그리고 하늘 회전을 표현한 361로 등은 '우주적 질서가 투사(投射)된 상징체'이다. 또한 영원성을 바탕으로 바둑 삼매경에 빠진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리고 '난가(爛柯)' 모티프는 속세를 벗어난 망우청락(忘憂淸樂)의 '위기선미(圍棋仙味)'를 통해 '인생과 자연'의 관계를 시공간적으로 일치하고자 했던 천인합일의 표상이자 우미와 소요를 추구한 고아한 풍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돌바둑판은 총 18개로 이중 강진 월남사지 돌바둑판, 양산 소한정 돌바둑판, 반룡대 돌바둑판 등 3개소(16.1%)는 이동이 가능한 석국으로 분류된 반면 방학동 돌바둑판을 비롯한 15개소(83.9%)는 자연 암반에 새긴, 원래 장소를 이탈하지 않은 암각바둑판으로 밝혀졌다. 돌바둑판의 입지조건을 유형화한 결과, 계류형 15개소(83.9%), 암봉형 3개소(16.1%)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1,389m)이었다. 총 15개 돌바둑판은 모두 500m 이하의 저산지에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이 새겨진 입지는 속세와 멀지 않은 생활권의 일부였으며 모두 경관성이 탁월한 계곡 및 산봉에 입지하였다. 돌바둑판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찰되는바 특히 암각바둑판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추구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함께 노니는 풍류도의 정신을 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궁극적으로 바둑의 전통적인 상징성인 '은일의 매개체이자 자연귀의의 도에 다다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정수'인 동시에 유선적 취향의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적으로 암각바둑판이 새겨진 단양 소백산 신선봉을 비롯하여 괴산 선국암, 무주 사선암, 장수 신선바위 등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의 일체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선' 바위와 암각바둑판이야말로 선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소통방식이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관대상이자 조망처로 판단된다. 한편 암각바둑판이 입지하는 장소의 입지유형 등 물리적 환경과 팔경 및 동천구곡의 설정 여부, 유학자 등의 관련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 그리고 '상산사호' 모티프 및 '난가고사' 상징의미 등 3가지를 '장소정체성 판단을 위한 해석 틀'을 기준으로 하여 고찰한 결과, 암각바둑판 주변에 각자 되어있는 동천, 동문 등의 모티프는 주자학적 '구곡팔경'의 개념 보다는 선취적 '선유동천' 개념의 공간성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계류형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공간은 유가의 은둔지향적 공간이나 선도적 은일지향적 공간으로 시대추이에 따라 습합되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산봉형의 암각바둑판은 별도로 신선 강림의 숭엄지향성이 장소정체성 지배의 중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곳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동천구곡이나 팔경의 일부로 널리 알려진 승경의 요처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선비 및 사대부 계층이 주체인 주변 각자들 중에도 신선 관련 표현어가 다수 발견됨에 따라 바둑판 조영의식의 이면에는 신선경 동경을 바탕으로 한 선도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총합할 때 암각바둑판은 조선조 선비들의 은일과 운둔을 통한 자연경영의 문화 현상이 집약적으로 함축된 유산이자 전래 승경의 요처로, 명승과 같은 자연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남한내 17개의 돌바둑판 중에서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을 비롯하여 방학동 암각바둑판, 충주 사로암 암각바둑판, 무주 사선암 암각바둑판, 양산 어곡동 반룡대 석국 등은 세월의 풍파와 사람들의 접촉으로 마모되면서 바위가 깨어지거나 바둑판 줄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언양 반구대 집청정 암각바둑판은 토사 매몰로 그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암각바둑판은 자연과 바람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이자 선인들의 자연 사랑의 마음과 선계동경의 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문화유적으로, 이에 대한 국내 분포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조사와 보존관리가 시급하다고 사료된다. 18개로 이중 강진 월남사지 돌바둑판, 양산 소한정 돌바둑판, 반룡대 돌바둑판 등 3개소(16.1%)는 이동이 가능한 석국으로 분류된 반면 방학동 돌바둑판을 비롯한 15개소(83.9%)는 자연 암반에 새긴, 원래 장소를 이탈하지 않은 암각바둑판으로 밝혀졌다. 돌바둑판의 입지조건을 유형화한 결과, 계류형 15개소(83.9%), 암봉형 3개소(16.1%)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1,389m)이었다. 총 15개 돌바둑판은 모두 500m 이하의 저산지에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이 새겨진 입지는 속세와 멀지 않은 생활권의 일부였으며 모두 경관성이 탁월한 계곡 및 산봉에 입지하였다. 돌바둑판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찰되는바 특히 암각바둑판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추구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함께 노니는 풍류도의 정신을 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궁극적으로 바둑의 전통적인 상징성인 '은일의 매개체이자 자연귀의의 도에 다다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정수'인 동시에 유선적 취향의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적으로 암각바둑판이 새겨진 단양 소백산 신선봉을 비롯하여 괴산 선국암, 무주 사선암, 장수 신선바위 등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의 일체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선' 바위와 암각바둑판이야말로 선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소통방식이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관대상이자 조망처로 판단된다. 한편 암각바둑판이 입지하는 장소의 입지유형 등 물리적 환경과 팔경 및 동천구곡의 설정 여부, 유학자 등의 관련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 그리고 '상산사호' 모티프 및 '난가고사' 상징의미 등 3가지를 '장소정체성 판단을 위한 해석 틀'을 기준으로 하여 고찰한 결과, 암각바둑판 주변에 각자 되어있는 동천, 동문 등의 모티프는 주자학적 '구곡팔경'의 개념 보다는 선취적 '선유동천' 개념의 공간성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계류형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공간은 유가의 은둔지향적 공간이나 선도적 은일지향적 공간으로 시대추이에 따라 습합되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산봉형의 암각바둑판은 별도로 신선 강림의 숭엄지향성이 장소정체성 지배의 중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곳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동천구곡이나 팔경의 일부로 널리 알려진 승경의 요처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선비 및 사대부 계층이 주체인 주변 각자들 중에도 신선 관련 표현어가 다수 발견됨에 따라 바둑판 조영의식의 이면에는 신선경 동경을 바탕으로 한 선도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총합할 때 암각바둑판은 조선조 선비들의 은일과 운둔을 통한 자연경영의 문화 현상이 집약적으로 함축된 유산이자 전래 승경의 요처로, 명승과 같은 자연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남한내 17개의 돌바둑판 중에서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을 비롯하여 방학동 암각바둑판, 충주 사로암 암각바둑판, 무주 사선암 암각바둑판, 양산 어곡동 반룡대 석국 등은 세월의 풍파와 사람들의 접촉으로 마모되면서 바위가 깨어지거나 바둑판 줄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언양 반구대 집청정 암각바둑판은 토사 매몰로 그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암각바둑판은 자연과 바람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이자 선인들의 자연 사랑의 마음과 선계동경의 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문화유적으로, 이에 대한 국내 분포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조사와 보존관리가 시급하다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