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전주읍성(全州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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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초년(英祖初年)의 전주읍성(全州邑城) 개축공사(改築工事)에 관한 재고찰(再考察) (A Review on the Reconstruction of Jeonju Eupsung during the early years of King Young-Joe)

  • 서치상;조형래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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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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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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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Through reinvestigations of early years of King Young-Joe provincial castles, Jeonju Eupsung, this study seeks to broaden the understanding of castle construction of the later period of Chosun Dynasty. Jeonju Eupsung was established by reform-minded king and his loyalist Cho, Hyun Myung. Their new conceptual framework for reconstruction of Jeonju Eupsung was affected by Yoo, Hyung Won, a realist scholar of 17th century. It is obvious that adopted new administrative systems of financing, building and maintaining of Jeonju Eupsung were based on the his theories of castle. This study demonstrates that Jeonju Eupsung built by Cho, Hyun Myung, during the early years of King Young-Joe were based on those new concepts and systems of the new age. The study shows that the designer of this castle had in mind efficient construction design and execution and effective defense of provincial towns located on flat ground. And, the study explains how those original designer sought higher productivity through greater localization of securing resources and more detailed and improved organization of construction responsibilities. In short, this study seeks to prove that the provincial castles of the early 18th century reflected the new thinking on practicality that was spreading throughout the society of Chosun Dynasty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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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308호 전주 풍남문 주요 부재의 수종 연구 (Study on Species Identification for Pungnammun Gate (Treasure 308) in Jeonju, Korea)

  • 박정혜;오정은;황인선;장한울;최재완;김수철
    • Journal of the Korean Wood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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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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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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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에서는 전라북도 전주시에 소재한 보물 제 308호 풍남문 건축부재의 수종을 분석하였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풍남문은 전주를 둘러싸고 있는 옛 전주읍성의 남문이다. 1388년 전주부성을 세우면서 동서남북 4개의 문도같이 설치되었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34년 재건하였고, 1768년 3층루였던 것을 2층루로 수축하면서 이때 읍성의 남문을 '풍남문'이라 지은 것이 오늘날에 이른다.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의 양식과 다른 문루 건축에서 볼 수 없었던 건축양식들이 잘 남아 있어 1963년 보물 제 308호로 지정되었다. 수종분석은 건축 부재 중 기둥, 보, 창방, 도리, 장여, 주두, 동자주, 추녀, 귀틀, 종대(종보)를 대상으로 실시하였으며 분석 결과 모두 소나무(Pinus spp.)로 식별되었다. 이는 조선후기 건축물에 나타나는 주요 수종으로 소나무를 사용한 것과 일치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문루 건축문화재의 수종 자료 구축 및 훗날 문화재 수리 과정에서 참고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조선신사(朝鮮神社)의 장소(場所)와 권력(權力): 전주신사(全州神社)를 사례(事例)로 (The Relationship between Power and Place of the Jeonju Shrine in the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 최진성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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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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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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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의 신사(神社)와 관련해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장소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는데 있다. 조선신사는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달성키 위한 식민지배 전략 중 하나로서 공간적으로는 중일전쟁(1937년) 이전까지 개항장을 비롯한 전국의 중요 도시들에 51개의 신사들이 세워졌으며, 당시의 철도체계와 연계해서 해안과 내륙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한 일종의 "신사 네트워크"였다. 또한 시각적으로 이 신사들은 도시의 조망이 탁월한 구릉에 대부분 입지하였으며, 일본인 거류지를 포함한 식민지 경관들과 인접하였다. 이 신사들에 안치된 천조대신(天照大神)과 명치천황(明治天皇)은 응시의 주체로서 지배자를, 그리고 피식민지인들은 응시의 대상으로 전락하였음을 상징하였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신사는 식민지 지배를 위한 감시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사례지역인 전주는 공간적으로 호남평야의 중심도시로서 전라선 철도와 연계되었다. 또한 전주신사는 전주읍성의 서문 밖에 위치한 다가산(多佳山)(65m) 구릉의 정상에 세워져 전망이 탁월하였으며, 일본인 거류지를 비롯한 식민지 경관들과 인접하였다. 그런데 광복이 되자 전주신사가 시민들에 의해 해체되었다. 이것은 훼손된 민족 정체성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한 시민들의 저항 담론의 결과였다. 그 장소에는 대신 충혼탑과 가람 시비가 세워짐으로써 다가산은 일제의 신사가 세워졌던 장소에서 국가 및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탈바꿈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경관을 통해 장소에 재현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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