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전서(篆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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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양액재배 소괴경의 절편크기 및 절편수에 따른 생육 및 수량 (Effects of Seed-piece Size and Seed-piece Number Per a Hydroponiclly Grown Mini-tuber on Growth and Yield of Potato)

  • 강봉균;강영길;문현기;송창길;김찬우;박정식
    • 한국작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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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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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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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양액재배산 소괴경의 절단 재배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2001년 분무경 양액재배산 괴경을 3, 5, 7, 9, 11, 13g의 절편이 되도록 1(전서), 2, 3, 4개로 절단하여 플러그묘판에서 출아시켜 이식재배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파종 후 35일에 출현율은 절편크기가 7-13g에서 83.0-85.4%, 3, 4절단서 재식구에서 84.0-86.6%로 높았다. 2. 10a당 총서 및 종서규격서 수량은 절편크기가 3g에서 9g으로 증가됨에 따라 10a당 총서수량은 각각 2,052kg과 1,589kg에서 2,924kg과 2,428kg으로 크게 증가되었으나 그 이상 절편의 무게가 증가되었을 때에는 괴경수량의 증가는 크지 않았다. 3. 10a당 총서수량은 전서 재식구에서 1,918kg이었던 것이 3절 절단서 재식구에서 2,982kg로 증가되었고 종서규격서 수량도 전서 재식구에서 1,422kg/10a이었던 것이 3절 절단서 재식구에서 2,579kg으로 증가되었으나 3, 4절 절단서 재식구 간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4. 평균서중은 절편크기가 3g에서 13g으로 증가함에 따라 46.3g에서 71.5g으로 증가되었으며, 전서 및 2절 절단서 재식구의 56.5g과 58.0g보다 3, 4절에서 재식구에서 63.6g과 64.9g으로 무거웠다.

행사 - 인협, 도쿄국제도서전서 165건 180만 달러 수출상담

  • 임남숙
    • 프린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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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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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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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대한인쇄문화협회(회장 조정석)는 지난 7월 1일부터 4일까지 4일간 일본 도쿄 빅사이트전시장에서 열린 2015 도쿄국제도서전(TIBF)에 한국인쇄관을 설치하고 인쇄물 수출 지원 및 2016년 세계인쇄회의 홍보활동을 적극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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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HTML 코드 생성기의 설계와 구현 (Design and Implementation of XHTML Code Generator)

  • 계승철;전서현
    • 한국멀티미디어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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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멀티미디어학회 2001년도 추계학술발표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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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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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XHTML은 HTML의 요소와 XML의 문법을 가진 마크업 언어이다. XML과 HTML의 장점을 결합하여 발표되었으며, HTML에서 XML로 가는 중간단계로, HTML을 대체할 언어로, 또는 유무선 통합을 위한 마크업 언어로 보고 있다. XHTML 언어를 이용하기 위해 텍스트나 기존에 널리 쓰이고 있는 HTML을 규칙에 맞는 HTML로 바꾸고, 간단한 조작으로 쉽게 XHTML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XHTML 코드 생성기를 설계·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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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白石(제백석)의 인학(印學)적 실천 탐색 (Exploring the Humanistic Practice of Je Baek-seok)

  • 주원야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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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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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7-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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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시문, 서예, 회화와 조각에 모두 해박한 제백석은 중국 근현대 예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서화, 전각의 대가로 자리매김하였다. 명청(明清)시기에 정경(丁敬), 황이(黃易), 등석여(鄧石如), 오양지(吳讓之), 조지겸(趙之謙), 황목보(黃牧甫), 오창석(吳昌碩) 등 많은 전각 대가의 등장과 같이 전각예술은 개화기에 들어 장족의 발전을 거두었다. 제백석은 바로 이러한 사회 배경 아래 독창적인 제파(齊派)를 형성했다. 제백석의 전법은 한위(漢魏)시대의 작품을 모방하면서 형성됐는데 그가 『사삼공산비(祀三公山碑)』를 근간으로 하고 『천발신참비(天發神讖碑)』의 필의를 구사하면서 진권(秦權), 소판(詔版), 장군인(將軍印)을 조화시켰다. 게다가 단입도법(單入刀法)을 과감하게 사용함으로써 서예 예술성을 남김없이 발휘하면서 인면(印面)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고 금석 정취를 더 한다. 본고는 제백석의 전서 변모 과정 및 인학 실천을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고찰하였다. 첫째, 제백석의 전서 변모 과정을 정리할 예정이다. 두번째, 제백석의 인학 실천을 분석하였다. 본고는 제백석 작품을 예시로 제백석의 전각예술의 독창성을 규명함으로써 제백석의 인학 사상과 실천적 모색을 보다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이것은 후세 학자에게 학습경로 및 풍부한 경험을 제시해줄 것이라 사료된다.

『이충무공전서』 정고본의 지질분석과 보존처리 (Material Properties and Conservation of 『Collection of Yi Chungmugong』 in Manuscript)

  • 임세연;안지윤;양민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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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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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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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충무공전서" 정고본은 1795년 간행된 이충무공전서 1책에 해당하는 부분을 수기(手記)한 것으로 인쇄하기 전 초고(草稿)를 마지막으로 수정해 내용을 완전하게 한 판본으로 추정된다. 책의 형태는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의 선장본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책 하단부분의 습해로 인한 얼룩, 결실, 산화 등 손상으로 보존처리가 시급하였다. 또한 과학적 조사 및 분석을 통해 지질과 섬유의 특성을 밝히고, 보존처리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였다. 종이의 크기(cm), 두께(mm), 무게(g), 평량($g/m^2$), 밀도($g/cm^3$), 발 끈 간격 및 초 수($3{\times}3cm$) 측정 등 지질 조사를 실시하였다. 지질 조사 결과 조선시대 후기 왕실 발행 도서에 이용된 종이 특징을 추정할 수 있었다. 표지, 책지 등의 종이 섬유를 C염색법으로 분석한 결과 닥 인피섬유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장정된 끈은 면(棉) 재질로 확인되었다. 종이에 포함된 첨가물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SEM-EDS 분석을 실시한 결과 주성분인 탄소(C)와 산소(O) 외에 결정화 된 칼슘(Ca) 성분이 검출되었다. 본 유물은 "이충무공전서"의 정고본으로 전해지는 유일한 책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으며, 정확한 시대와 발행 기관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 고전적의 인쇄과정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전적류 문화재의 보존 및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로써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비빔밥의 역사 (The History of Bibimbap)

  • 정경란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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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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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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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식품의 역사는 문화적인 측면이 강하여 인문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인 방법이 아닌 문화적 측면에서 연구되어 오기도 하는데, 때로는 잘못 알려진 인문학자들의 연구결과가 후대에 까지 반복적으로 수용되어 현재까지 그 연구결과가 정설인 것처럼 전수되기도 한다. 비빔밥의 경우가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비빔밥은 19세기 말엽의 "시의전서"에 비로소 등장한다고 하여 비빔밥의 문헌상의 역사는 약 100년 정도 밖에 안 된 것으로 잘못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비빔밥은 지금부터 약 500여년 전에 골동반(骨董飯, 汨董飯), 골동(骨董, 汨董), 혼돈반(混沌飯) 등 한자로 표현되었으며, 부르기는 부빔밥이라고 함에 따라 부빔밥에 맞는 부비반이라는 한자도 만들어졌다. 이는 비빔밥이라는 실체를 두고 한자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비빔밥은 이러한 한자로 표기되기 수백년 전부터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한글 비빔밥 명칭은 1810년 "몽유편(夢喩篇)"에 브뷔음으로 처음 등장하고 부뷔음, 부빔밥, 부?밥, 부뷘밥, 부뷔엄밥, 부뷔음밥으로 다양하게 기록되다가 오늘날 비빔밥으로 정착되었다. 혹 비빔밥의 어원이 골동반에 왔다고 잘못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골동반은 비빔밥의 실체를 글 (한자)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지 비빔밥은 순수 우리말 '부뷔음밥'에서 왔다 비빔밥은 지금까지 조사된 문헌상의 역사로는 500여년 이상이며, 지금까지의 이야기된 19세기 말엽의 "시의전서"에 비빔밥이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빔밥의 역사는 비빔밥이 문헌에 기록되기 훨씬 이전 시기, 즉 지금부터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