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자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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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일본의 자명종과 시각제도

  • Lee, Yong-Jeong;Kim, Sang-Hyeok;Lee, Yong-Sam
    • Bulletin of the Korean Space Scienc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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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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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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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17세기 이후 조선과 일본은 서로 다른 시각법을 사용하였다. 일본의 경우 서양의 자명종을 받아 들여 12시(時) 100각법(刻法)의 부정시법을 기초로 한 일식시계(和時計)인 자명종을 제작 발전시켰다. 이러한 자명종의 제작기술이 조선에 유입되었지만 조선과 일본의 시각법의 차이로 인해 정확한 기계시계임에도 불구하고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자명종 유물은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자명종의 경우 12시 96각법을 기준으로 하여 자명종 전면에 원형으로 12시와 1시진(時辰)에 8각(현행 1시간당 4각)으로 각인되어 있고, 그 밑 부분에 "구(九)", "팔(八)", "칠(七)", "육(六)", "오(五)", "사(四)"가 2회 반복하여 각인되어 있다. 타종장치는 파손되어 있고 구조와 형태로 봤을 때 일정한 시간에 한번 종을 치는 일정천부방식(一挺天符方式, Foliout) 자명종이다. 서울대학교 자명종은 시반에 12시와 숫자만 표기되어 있다. 이 자명종은 "구(九)", "팔(八)", "칠(七)", "육(六)", "오(五)", "사(四)"의 숫자 표기가 고려대학교 자명종과 일본 자명종 유물과는 다르게 반대의 방향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자명종의 타종장치는 정해진 시각에 해당 시각만큼 타종하는 장치가 달린 이정천부방식(二挺天符方式) 자명종 형식이다. 서울대학교 자명종의 경우 일부 부품이 유실되고 개조된 것으로 보이며, 야간용 천부(天符)와 알람장치가 유실된 상태이다. 이는 일본의 부정시법 자명종을 조선의 정시법로 사용하기 위해서 개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수차례에 걸친 국내와 일본의 학술조사를 수행하여 당시의 조선과 일본의 시각법에 대한 비교조사와 유물 및 문헌을 통해서 두 자명종의 구동방식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일본의 자명종 제작 기술 발달 과정과 비교하여 두 자명종의 제작시기 등을 추정하였다. 아울러 두 자명종의 파손된 부분에 대한 구조를 연구하여 기계적 작동원리에 대한 개념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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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rvation and Analysis of the Bracket Clock in the Collection of the Korean Christian Museum at Soongsil University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자명종의 보존과 분석)

  • Park, Haksoo;Kwon, Mihye
    • Conservation Science i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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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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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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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The Bracket clock in the collection of the Korean Christian Museum at Soongsil University underwent conservation treatment for a special exhibition. The compositional analysis showed that the body was made of brass plated with gold by fire-gilding(gold amalgam process), while the dial was identified as pure copper coated with enamel. The hands were made of steel. Remnants of adhesive tape on the dial were cleaned, followed by the addition of a protective coating. In order to restore it to a condition as similar to its original form as possible, replacements for missing parts were newly constructed out of brass and were connected to the hands and the dial. The dial was then fixed to the body using an acrylic support. The compositional analysis and conservation treatment have left the clock in stable condition and readily available for exhibitions and future studies.

역사속 과학인물-호남의 4대 실학자 하백원

  • Park, Seong-Rae
    • The Science &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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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8 no.5 s.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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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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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만 전념한 조선조 후기 전남 화순출신의 실학자 하백원은 자명종 시계를 만들고 지도도 제작했으며 특히 자승차를 고안했다. 그가 고안한 자승차는 아래에 흐르는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장치로 저서를 통해 발표까지 했지만 실험을 거치지 않아 그 당시에도 실용성엔 의문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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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les Man

  • Chae, Yun-Gyeong
    • Cartoon and Animatio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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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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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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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신사복에 중절모를 쓰고 잡동사니가 든 가방을 든 세일즈맨이 경쾌한 걸음으로 외판에 나선다. 집집마다 초인종을 울리고 인사와 함께 침을 튀기며 물건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문전박대 당하거나 개에 쫓기고 심지어는 물벼락을 맞기까지 한다.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는 세일즈맨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그러나 다음 날 자명종이 울리면 똑같은 세일즈맨의 하루가 시작된다. 간과 쓸개를 모두 빼 놓은 채 물건을 팔기 위해 억지 웃음을 짓는${\cdots}$${\cdots}$.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 방식을 사용하면서 디자인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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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과학인물-중국에 서양과학 소개한 이 선교사 마테오리치

  • Park, Seong-Rae
    • The Science &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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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31 no.3 s.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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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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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1518년 이탈리아 출신의 선교사로 중국에 들어와 서양과학기술을 처음소개한 마테오 리치(1552-1610년)는 직업적 과학자는 아니지만. 서양의 기하학을 동양에 보급하는 업적을 남겼다. 로마대학에서 과학과 신학을 전공한 리치는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동안 임금에게 자명종을 바쳐 환심을 끌었으며 동문산지등 많은 수학책을 남겼다. 서양의 천문학도 소개했고 특히 세계지도를 만들어 보급했는데그가 그린 지도인 양의현람도는 현재 숭전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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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과학인물 - 조선에 망원경 등 전한 포르투갈 선교사 '로드리게스'

  • Park, Seong-Rae
    • The Science &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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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32 no.6 s.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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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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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1631년 조선조 인조때 명나라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은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선교사 로드리게스로부터 망원경, 서포, 자명종 등을 기증받아 서양문물을 처음 들여왔다. 우리나라에 서양문물을 처음 전한 로드리게스(1561~1633년)는 포르투갈 고아출신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일본어에 능통하여 당시 일본을 방문한 교황청 주교가 지배자이던 풍신수길을 만났을 때 통역을 맡기도 했다. 로드리게스는 그 후 일본에서 금교령이 내려지자 마카오로 퇴거했는데 중국서 우리 사신에게 이러한 서양문물을 기증한 2년 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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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Dae-Yong and Engineering Education (홍대용과 공학교육)

  • Rho Tae-Cheon
    • Journal of Engineering Education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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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5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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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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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The 18th century Joseon(朝鮮) science philosopher Hong Dae-Yong(洪大容, 1731-83) tried to create his own scientific system, while partially keeping the Eastern view of nature and accepting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Most of all, he confirmed that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was based on mathematical principles and accurate observation and wrote a math book, [Juhaesuyong(籌解需用)]. Therefore, we have good reason to call him a mathematician. He produced so many achievements that he can be considered a natural scientist in the late Joseon era; he accepted the Eastern view of nature critically and sometimes refused it. He also suggested new and various scientific thoughts, including an infinite universe theory, on the basis of Western scientific thought. Hong Dae-Yong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practice. He understood the principle of the Western Honcheonui(渾天儀) and manufactured an alarm clock with a craftsman's help. He was an excellent engineer and he set a personal observatory. Considering the level of scientific technology at that time, it is reasonable to regard Hong Dae-Yong as a 'scientific technologist in the 18th century Joseonera', well equipped as a mathematician, a natural scientist, and an engineer. In conclusion, it is with 'mathematical thinking, creative conception, and practical activities' that Hong Dae-Yong maintained throughout his life that we can set a guide to produce excellent Korean scientific technologists and engineers in the 21st century.

Study on the Manufactures for the Korean Astronomical Instrument

  • Lee, Yong Sam
    • The Bulletin of The Korean Astronom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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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43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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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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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일제 강점기를 지난 후 광복을 맞았지만, 전란의 폐허 속에 개설된 대학의 천문학과의 관측 시설들은 전문한 상태였다. 필자가 학부 재학 중이던 6-70년대까지도 시 시공(時空)의 흐름은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몰아가고 있었다. 당시를 회고 하며 지금까지 걸어 온 "천문기기 제작 연구의 삶"을 회고하고자 한다. 대학 재학 시절 교수님의 도움으로 막스토브 망원경을 제작하고, 40cm 카세그레인 망원경 등 광학계의 원리와 특성연구를 통해 부품 조립을 수행할 수 있었다. 태양 흑점관측을 위한 10cm 굴절 망원경의 투영시설을 고안하여 6개월 동안 관측하였지만. 석사 논문을 위해 광전측광 관측시스템을 제작하여 식쌍성 관측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시설로 UBV 광도곡선 완성하여 1975년 가을 천문학회에서 발표하였다. 1976년 2월 국립천문대 천문계산연구실에 발령 받고 역서편찬 업무를 담당하면서 소백산 60cm 망원경 최종 설치를 끝내고, 천문대(현 역삼동 과총회관 빌딩) 옥상에 2m 규모의 목재 돔을 설계 제작하고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천문 활동을 시작하였다. 재직 중에 항상 한국의 열악한 천문시설의 상황을 실감하고 20대를 마감하면서 퇴직하여 "한국천문기기 연구소"라는 명칭으로 천체 돔을 설계하고, 돔 제작기계를 개발하였다. 망원경만 보관 중인 국내 4개 대학에 돔을 납품 한 후 연세대학교 천문대의 직경 6m 스텐레스 돔을 제작하였다. 아울러 연세대 천문대 60cm망원경을 설치하면서 이 곳에 입사하여 관측 장비개발 연구와 관측에 전념하게 되었다. 재직 기간 중 대학의 배려로 카나다 국립천문대(DAO) 방문연구원으로 1.8m 망원경으로 식쌍성들의 분광관측을 수행하여 시선속도곡선을 완성하였고, 체류 중에 스텝들과 국내에서 사용할 60cm용 첨단 분광기를 설계하였으나 대학에 재원이 없어 제작을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1989년 2월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에 부임하면서 열악한 상황이지만 교육과 연구 장비로 20cm와 35cm 소형 망원경의 디지털 광전측광시스템으로 간이 천문대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학과 설립 10 주년(1998년)을 맞아 40cm 망원경과 6m 돔을 설치하여 교내천문대가 완공되었다. 2000년이 되면서 대중 천문활동 을 위해 이동 천문대를 제작하여 4륜 자동차에 견인하여 여러 지역을 찾아 관측과 강연 활동 등 학과의 대중천문 활동의 특성을 살리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학과 설립 20주년(2008년)을 맞으면서 충북 진천에 16개 자동분할 개폐식 스릿의 9m 돔 안에 1m 망원경을 원격관측 시설을 완비하여 대학 본부의 기관으로 충북대학교천문대를 개관하고 관측시설을 완비하였다. 우리의 전통적인 세종시대 천문시설은 당대 최대의 시설이지만 당시 유물들이 모두 소실되어 현존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은 실로 아쉬움이 큰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 구조, 형태, 원리, 기능, 사용방법 등을 밝히고 복원을 시도해야 할 시급함이 있었다. 문헌을 통해 1991년부터 학부졸업 논문으로 "고천문 의기(儀器) 복원연구" 분야의 발표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를 통해 세종탄신일에 영릉에서 숭모제 행사 후 그 곳에서 수년간 세종시대 고천문의기 한가지씩 작동모델을 복원하여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유물복원 회사 (주)옛기술과 문화 와 함께 팀을 이루어 매년 제작할 종목을 준비하게 되었다. 간의(簡儀)를 복원한 후에는 일성정시의, 소간의, 앙부일구, 정남일구, 석각천문도, 혼천의, 혼상, 각종 해시계 등 매년 지속적으로 복원되어 큰 규모의 야외 전시장이 완성되었다. 작동모델 설계연구팀의 자문과 제작팀과의 팀웍으로 이룬 성과인 것이다. 한번 시작품이 발표된 모델들은 국내 과학관과 박물관, 천문관에서 후속 모델을 설치하였다. 한국천문연구원과 부산 동래읍성 내에 장영실 과학 동산은 간의와 혼상을 비롯한 각종 해시계들을 설치한 큰 규모의 야외 전시장이다. 조선의 명망 높은 유학자들이 인격적인 하늘을 살펴보았던 혼천의와 일만원권에 그려 있는 국보 230호 자명종 혼천시계(일만원권의 그림)의 작동 모델을 제작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은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통하여 더 심층적인 연구들이 발표되었고, 각종 조선(한국)의 천문의기(天文儀器) 연구 자료들은 연구팀들을 통해 중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도 발표되었다. 지금까지 복원된 유물들이 완성되기까지는 참여한 많은 연구원들과 제작팀들이 합심하여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여 최종 작동모델들이 하나 둘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보람된 일이었고, 은퇴 후 지금은 재능기부자로서 즐거운 삶을 이어 갈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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