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이만수(李晩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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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사(紅泉社)의 결성과 시세계 - 연구시(聯句詩)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Hongch'ŏn Poetry Society : Focused on the Linked Verses of the Hongch'ŏn Poetry Society)

  • 오보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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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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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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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고는 그동안 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홍천사(紅泉社)라는 시사를 소개하고, 그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홍천사는 1817년(순조17)에 이만수(李晩秀)(1752~1820)를 맹주로 하여, 이락수(李洛秀)(1755~?) 신진(申縉)(1756~?) 신작(申綽)(1760~1828) 신현(申絢)(1764~1827) 및 박종우(朴宗羽)(1745~?) 정수구(鄭遂龜)(1750~?) 권식(權?)(1753~?) 김계온(金啓溫)(1773~?)이 함께 모여서 결성한 시사이다. 홍천사에서 창작된 시들은 "천사집(泉社集)"으로 엮어져, 이만수의 문집인 "극원유고(?園遺稿)"에 수록되었다. 홍천사는 이만수를 맹주로 하고, 신진 신작 신현 3형제를 주축으로 하여 결성되었다. 이 시사는 1817년부터 이만수가 세상을 떠나는 1820년까지 계속되었다. 홍천사의 동인들은 주로 기대(企臺)의 방운루(放雲樓)에 모여 분운시, 차운시, 연구시 등을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 이들이 지은 시는 "천사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천사집"이 이만수의 개인 문집인 "극원유고"의 일부로 편차된 탓에, 이만수 이외의 인물들이 시회에서 지은 분운시 차운시는 "천사집"에 실려 있지 않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부득이하게 연구시를 중심으로 홍천사의 시세계를 조망하였다. 홍천사의 연구시는 먼저 홍천사 동인들이 각자의 시재를 겨루는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홍천사 동인들은 전고를 화려하게 사용하여 자신들의 능력을 드러냈다. 홍천사 동인들은 연구시를 지을 때, 함축된 시어 안에서 대를 맞추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다. 특히 <성남연구(城南聯句)>의 형식을 본 뜬 <방운루연구(放雲樓聯句)>에서는 홍천사 동인들이 서로 시재를 각축하며 시상을 매끄럽게 전개해 나가는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는 홍천사의 동인들이 비록 그동안 학계에서 주목받은 인물들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의 문학적 역량을 갖춘 이들이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정서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홍천사의 연구시를 분석해보았다. 홍천사의 연구시에도 다른 이들의 연구시와 마찬가지로 교유의 즐거움이 전반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노년에 벗들과 즐기는 한아(閒雅)한 정취가 주된 정서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홍천사의 연구시는 단순히 노년에 즐기는 벗들과의 우정을 읊은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왕의 덕택이라며 태평성대를 예찬하고 있다. 즉 홍천사의 연구시에는 산림 생활의 한가로움, 태평성대의 풍요로움, 관료로서의 자부심 등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