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응지상소(應旨上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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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상소(應旨上疏)의 언론(言論)으로서의기능 확대와 국왕의 대응-연산군과 중종 대를 중심으로- (The expansion of the function as a press of the eungji-sangso and the response of the king-Focused on the era of Yeonsangun and Jungjong-)

  • 송웅섭
    • 한국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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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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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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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에서는 재변 발생을 계기로 관료나 사대부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는 구언을 시행했다. 구언은 성종 대를 거치며 언론으로서의 실질적인 기능이 강화되었다. 청요직 중심의 권력구조가 확립되면서 언론이 항시적으로 활성화되고, 응지상소의 언론으로서의 기능이 증대되었던 것이다. 청요직들은 구언을 또 다른 언론 기회로 활용하면서, 응지상소 작성에 적극성을 보였다. 또한 응지상소 처벌불가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평소에는 언급하기 어려운 민감한 사안들까지 응지상소를 통해 제기했다. 이에 민감한 사안들이 구언을 계기로 표출되면서 조정 내에서 파란이 일기도 했다. 한편 군주의 입장에서 응지상소가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확대해가는 상황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에 연산군과 중종은 점차 구언하는 일에 소극적으로 변해갔고, 사소한 일을 문제 삼아 응지상소 제출자를 처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변을 맞아 시행되는 구언은 공론과 민감한 사안들이 제기되는 또 하나의 언론 기회로 자리매김해 갔으며, 장기적으로는 관직이 없는 포의(布衣)들에게도 국정 현안과 관련한 의견 개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언론 참여의 저변을 넓히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