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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남의 논설 「연극과 사회」(1920) 고찰 (Review of the Yun, Baek-nam's Articles 「Theater and Society」(1920))

  • 성명현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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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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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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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연극영화인 윤백남(1888-1954)의 논설 "연극과 사회"를 포스트콜로니얼 비평의 시각에서 고찰하고 그의 흥극사업 주창의 핵심논점들과 연극관 및 현실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의 결과, 윤백남은 일제치하의 식민지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며 실리를 찾은 인물로, 그의 흥극사업론은 제국 일본 지향적 개조주의를 기조로 하며 일제의 민풍개선정책에 추수하는 주장이란 점에서 문화적 민족주의자들의 문화운동과는 대척점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의 서양연극사 개관은 연극의 사회적 역할과 공리적 기능에 치중한 결과 적잖은 오류를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연극-배우 옹호론은 연극과 지식인이 본격적으로 교우하는 시대의 개막이자 연극문화의 주요 담당계층이 지식층으로 교대되는 지형적 변화의 단초로써 의미가 있으며, 그의 계몽주의적 연극관은 장차의 신극운동을 위한 하나의 초석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호동왕자 서사의 근대적 재현 양상 연구 (The Modern Representations of Prince Hodong stories)

  • 유인혁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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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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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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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근대 이후 호동왕자의 서사가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정리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호동왕자의 이야기는 12세기에 『삼국사기』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현재 TV 드라마, 영화, 소설, 희곡 등 다양한 갈래에 걸쳐 재생산되고 있는 대중적이며 민족적인 서사이다. 흥미로운 점은 『삼국사기』를 제외한 근대 이전의 문헌 속에서 호동왕자의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호동왕자는 1935년에 이르러 윤백남에 의해 최초로 문학적으로 재현되었으며, 비로소 현재와 같은 대중성을 갖게 되었다. 즉 호동왕자의 이야기는 근대에 들어와 발견(명)된 '전통'의 표상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윤백남을 필두로 이태준의 『왕자호동』, 유치진의 『자명고』로 이어지는 글쓰기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호동왕자의 성격들을 주조했다. 윤백남은 정사(情死)의 모티프를 삽입하여 낭만적 연인으로서의 호동의 모습을 만들어 냈고, 이태준과 유치진은 낙랑을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으로 설정함으로써 민족(국가)주의적 컨텍스트를 삽입했다. 이 두 양상 모두 『삼국사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위 작가들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삽입된 성격들은 각 텍스트들이 생산되었던 시기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윤백남의 경우 과거를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근대적 미의식을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태준의 경우 총동원체제를 (반)내면화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사유체계를 보여 주고 있고, 유치진은 해방 공간 속에서 역사적 인물을 통해 민족의 남성성을 상상해내는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렇게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 소환되고 전유된 호동의 표상들이 모여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호동왕자'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