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완주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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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의 재질특성 및 제작기법 해석 (Interpretation of Making Techniques and Material Characteristics for Molding Clay of Four Guardian Statues in Wanju Songkwangsa Temple, Korea)

  • 한두루;이찬희;조영훈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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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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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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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연구에서는 완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의 제작기법을 해석하였으며, 소조토의 산지를 추정하여 동일재료로 보존처리 및 복원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하였다. 사천왕상에 사용된 소조토는 층위별로 다양한 재질적 특성을 나타냈다. 원소조토로 추정되는 초벌층과 중벌층은 성인적으로 동일한 토양이 사용되었으며, 마감층은 약간의 차이를 보였으나 거의 유사한 토양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보수층은 모든 분석결과에서 원소조토와 재질특성이 일치하지 않았다. 감마선 촬영 결과, 사천왕상의 제작은 심목과 부목을 강선과 'ㄷ'자 꺽쇠, 못, 새끼줄 등으로 연결하여 뼈대를 형성하고, 이 위에 소조토를 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조토의 산지해석 결과, 추정산지 일대 토양은 마감층에 사용된 토양과 동일기원으로 나타나 보존처리용 재료로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결과는 소조상의 제작기법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종의 Crack과 용접에 관하여

  • 염영하
    • Journal of Welding and Jo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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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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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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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
  • 종은 타명기로서, 소리(음향)를 내기 위해서는 동양종은 외부에서 타격하고 서양종은 내부에서 타격한다. 그러므로 종을 사용하는 사이에 이 타격으로 인하여 종에는 누적된 피로(Cumulated fatigue)가 생기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크랙의 발생.rarw.성장.rarw.파괴로 진전되어 사용 불가 능케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같은 사례는 국내에서 그 실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예 1) 상원사종(국보 36호), 2) 보신각종(보물 2호), 3) 완주송광사종, 또한 외국의 경우, 미국의 자유의종 (Liberty Bell)등 대단히 많다. 여기서는 위의 종에 대한 크랙과 상원사종의 용접을 중 심으로 달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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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나한전 단청안료 분석 (Analysis of Dancheong pigments at the Nahanjeon Songkwangsa Temple, Wanju)

  • 홍종욱;이장존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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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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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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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전라북도에 소재한 유형목조문화재의 단청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송광사 나한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에 채색된 안료에 대한 X-선형광분석을 실시하였으며, 이들에 대한 색상별 안료의 성분과 보수시기의 동일성을 비교하였다. 분석결과 주성분 및 미량성분을 검토한 결과 나한전에 사용된 안료는 청색은 군청(($3NaAl{\cdot}SiO_4{\cdot}Na_2S_2$), 녹색은 양록($Cu(C_2H_3O_2)_2{\cdot}3Cu(AsO_2)_3$, 주황은 장단($Pb_3O_4$), 황색은 크롬옐로($PbCrO_4$)로 분류되었다. 나한전 외부, 내부의 안료 성분분석으로는 채색 시기를 구별하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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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이 본 조선 후기 완주 송광사의 가람배치와 대웅전의 구조 (The Site Plan and the Design of Daeungjeon(Main Buddhist Hall) of Songgwangsa Temple Seen by Yi Ok, in the Late Joseon Period)

  • 탁경백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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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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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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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While going into troops for writing in the vignette style(小品文) in opposition to the Classical Chinese(古文), Yi Ok stopped by Songgwangsa Temple in Wanju. The things he felt during this stop were recorded in the Temple Chapter("寺觀") written in 1795. Therefore, the present dissertation evaluates the Songgwangsa Temple of the time based on this Temple Chapter. Data in the Temple Chapter draws attention to the fact that it records the layout of the temple in detail. Thus the study was able to confirm the change in layout by reviewing relevant records about repair. This reveals that the form of layout in general has been maintained although there were changes involving the relocation of the buildings and their names. Furthermore, the original Buddhist building was changed to a quarter for the monks. Also, in terms of layout after the 18th century, there are frequent name changes of the Myeongbujeon(冥府殿) and Nahanjeon(羅漢殿). After two repairs, in order to find the appearance of a Daeungjeon(Main Buddhist hall) with a two-storied structure of five bays at the front, the study evaluated the Geugnakjeon at Muryangsa Temple and the Daeungbojeon at Magoksa Temple. The evaluation revealed that the 'Jeol' used in the Temple Chapter were small pillars erected on a ridgepole just like the Geugnakjeon at Muryangsa Temple, and that the angle rafters were installed to corner bays in rectangular form. The intellectual Yi Ok left behind invaluable architectural data that reveals the Songgwangsa Temple of the 18th century.

부여 무량사(無量寺)의 17세기 재건(再建)과 조영 계획(造營 計劃) (Reconstruction and building plan of Buyeo Muryangsa Temple in the 17th century)

  • 오세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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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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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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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부여 무량(사無量寺)의 17세기 재건(再建)과 조영 계획(造營 計劃)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본고는 임진왜란 이후 무량사의 재건 과정과 후원 세력 등을 검토해 보았다. 아울러 재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극락전의 건축적 특징과 의장 계획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무량사의 재건 과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량사의 1624~1636년까지 1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된 중창 순서를 재검토해 보았다. 이를 통해 기존에 알려진 극락전의 재건시기를 1633년에서 1624년으로 조정하여 전체적인 무량사의 불사 순서가 1624년 극락전 중창, 1627년 괘불 조성, 1636년 소조삼존불 조성, 1636년 범종 조성으로 이어지도록 하였다. 둘째, 무량사 재건은 일반 사찰에 비해 1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진행되고 있어 강력한 후원 세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특히 완주 송광사 불사를 주도적으로 이끈 진묵대사가 무량사 불사에 영향을 미친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진묵대사의 불사를 지원했던 송광사 후원 세력인 왕실 신씨 일가의 영향이 무량사까지 미친 것으로 보았다. 셋째, 무량사 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극락전의 건축적 특징을 검토해 보았다. 무량사 극락전을 다른 중층 불전과 비교를 통해 건축형식을 살펴볼 수 있었으며 특히, 공포와 가구의 특징을 검토해 보았다. 이를 통해 무량사 극락전과 완주 화암사 극락전이 동일한 계통의 장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극락전을 조영하는데 사용한 309mm의 용척을 중심으로 건물의 의장 계획을 검토해 보았다. 이를 통해 극락전은 일반 조선후기 중층 불전에 비해 완벽한 비율이 확인되고 대체로 1 : 1.41의 황금비율이 건물의 곳곳에 남아있다. 또한 극락전의 안정적인 의장은 조선후기 무량사 재건 당시 이미 전체적인 가람의 조영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