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연향(宴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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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좌도 통신사 교방춤에 나타난 문화예술적 특징 (Cultural and Artistic Characteristics of a Gyobang Dance Displayed in Tonshinsa from Yeongnam Jwa-do Province)

  • 양지선;강인숙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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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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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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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문은 영남좌도 통신사 연향에서 교방(敎坊)의 기녀들이 춘 교방춤을 연구한 것이다. 이 연구를 위해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다녀온 후 기록한 28권의 기행문을 엮은 "해행총재(海行摠載)"와 문집류를 분석하였다. 통신사가 왕명을 받들고 일본으로 가는 길은 영남의 좌도(左道)를 이용했고, 임무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영남의 우도(右道)를 이용했다. 나라에서는 통신사들의 항해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고 무사안일을 기원하기 위해 성대한 연향을 베풀었다. 연향은 통신사들이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는 하행길인 영남좌도에 집중되었다. 통신사들의 기록을 살펴본 결과 통신사 연향(宴享)은 영남좌도의 안동 영천 경주 밀양 부산 등에서 나타났다. 통신사 연향에 나타난 교방춤은 검무 황창무 처용 천도 무동 입춤 중춤이다. 통신사행을 통해 영남좌도는 '조선통신사 길'이 형성되었고 통신사 연향을 통해 교방춤의 예술성이 집대성되었다. 그러나 현재 영남좌도는 영남우도에 비해 전승되고 있는 교방춤이 현저히 적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남좌도의 교방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구자는 조선통신사 길을 통해 형성된 영남좌도의 통신사 연향에 나타난 교방춤의 문화예술적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영남좌도의 통신사 길을 통해 본 교방춤 (Gyobang Dance seen through Tonshinsa-gil of Yeongnam Jwa-do Province)

  • 양지선;강인숙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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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18년도 춘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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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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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영남의 좌도(左道)는 조선통신사들이 지나는 연행로에 있는 지역이다. 통신사 일행이 지나는 영남좌도의 주요 읍(邑)에서는 통신사들을 위한 공식적인 연향(宴享)이 있었다. 연향에는 영남좌도의 교방(敎坊)에 소속된 기녀(妓女)들의 교방춤이 연희되었다. 연구자는 영남좌도의 통신사 길을 따라 연행되었던 교방춤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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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궁중연향 한글악장 - 야연의 <악가삼장(樂歌三章)>을 중심으로 (On the Akjang, the Korean Alpabet used verse at Court banquet in 19th century)

  • 신경숙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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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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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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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이 글은 19세기 궁중 연향의식에서 사용된 우리말 악장을 발굴하는데 목표를 두고 진행되었다. 이 작업을 통해 다음의 네 가지 결과를 얻었다 첫째, 여러 궁중 연향의식들 중에서 야연에서 한글 악장이 사용되었다. 둘째, 야연의 악장들은 모두 <악가삼장(樂歌三章)>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셋째, 이들 작품들은 모두 세 편 가곡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 넷째, 이들 작품은 모두 임금 또는 세자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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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진찬(奉壽堂進饌)의 무대와 공연 요소 분석 (Analysis of the Stage and Performance Elements for Bongsudang-jinchan Banquet in Joseon Dynasty)

  • 송혜진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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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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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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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에서는 1795년 화성 행궁에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열린 봉수당진찬의 의례와 악무를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및 "정조실록", "홍재전서(弘齋全書)"등의 봉수당진찬 의례기록과 <화성능행도병>등의 도상자료, 일기체의 한글가사 작품인 이희평(李羲平)의 <화성일기(華城日記)>등의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무대와 공연요소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잔치의 주인공에게 충(忠)과 효(孝)의 의미를 담은 음악과 춤, 꽃과 음식, 술과 글을 예를 갖춰 올리는 궁중연향은 예악(禮樂)의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의례로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고유한 음악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예'라는 상징적이며 총체적인 틀 안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있던 연례의 음악과 춤들이 개별 악곡과 춤으로 해체되어 '작품화'되었고. 궁중음악과 춤의 철학이나 원리,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축소된 채, 음악과 춤의 전통은 형식과 예술적 표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1990년대 이후, 궁중의례 전통의 재현(再現)을 목적에 둔 연구와 행사가 추진되면서, 이와 연관된 공연예술 활동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봉수당진찬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무대화 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原典)의 재현(再現) 및 복원(復原) 문제, 완성도 및 예술성에 대한 문제는 과제로 남아있으며, 지금까지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의주의 외형적 재현에 관심을 두었을 뿐, 무대조건이나 공연요소에 중점을 둔 심도있는 분석은 부족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 무대구성과 공연요소 중심으로 분석해 본 결과, 조선시대 궁중연향 중에서 유일하게 '행궁'에서 개최된 봉수당진찬은 '예악의 정치'를 의례와 악무로 구현하는 궁중연향의 기본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군신동락(君臣同樂)'의 친화의 비중이 높은 연향이었음을 밝혔다. 내연과 외연의 성격이 섞인 봉수당진찬에서는 가림막을 최소화하여 신분의 차서(次序)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원리를 충족시키면서도 삼면에 둘러친 휘장 안에 외빈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술과 음식, 음악과 춤을 다 같이 공유하도록 배치되었다. 또한, 연향공간의 상징성을 내포한 차일을 백관들의 공간에 치고, 임금이 솔선하여 선찬(膳饌)과 산화(散華)를 명함으로써 군신동연(君臣同宴)의 의미와 범위를 확장시킨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봉수당진찬이 '예악의 원리'가 강하게 드러나는 여느 궁중 연향에 비해 '정(情)'을 나누는 화친(和親)에 기반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봉수당진찬에서는 여느 내연에서보다 임금의 역할과 비중이 높았으며, 특히 의주 외의 기록으로 전하는 여러 가지 상황 - 7작 이후에 정조가 신하들을 가까이 불러 나눈 대화, 신하들에게 음식과 꽃을 내림, 잔치를 주제로 직접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도 이에 화답하게 한 일 등-은 의주에 따른 단선적인 연향의 진행에 변화를 주고, 연향의 의미를 확장시키는데 한 몫 하였다. 이밖에, 봉수당진찬의 주악과 정재의 구성을 분석해 본결과 연향에서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움직임이 매우 절제된 것은 여느 궁중연향과 비슷하지만, 춤과 음악을 통해 구현된 소리와 색채감은 매우 다채로웠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봉수당진찬에서는 정조 이전에 치러진 내연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정재를 상연하였고, 이 중에는 새롭게 초연된 레퍼토리도 있었으며, 또 기존의 공연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선유락>이나 <검무> 등, 지방 관아 및 민간의 레퍼토리를 궁중연향으로 수용한 점, 풍류방에서 즐겨 연주되기 시작한 생황을 <학무> 와 연계한 것은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궁중연향의 '열린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서지방 배따라기 연행고(演行考) (A Study on Baettaragi Performance in Northwestern Province of Korea)

  • 임수정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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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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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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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 인조대에 경기(京妓)가 폐지된 이후 생긴 향기(鄕妓)의 선상제도(選上制度)로 인하여 지방에서 공연되어 지던 교방정재(敎坊呈才)가 궁중으로 유입되어 궁중정재로 채택, 궁중연향에서 연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종목 중 하나가 선유락(船遊樂)이다. 선유락은 정조19년(1795)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에 최초로 기록된 이후 조선후기 궁중연향기록인 각종 의궤의 정재종목으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궁중정재 선유락을 담당한 여기(女妓)들이 당시 평안도 의주, 안주, 성천 등지에서 올라온 선상기(選上妓)들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들에 의해 관서지방의 교방정재인 배따라기가 궁중으로 유입되고 궁중 정재 선유락으로 정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궁중정재 선유락의 형성에 영향을 준 관서지방 교방정재인 배따라기는 명·청교체기후금이 요동지역을 장악하자 명나라 사행(使行)을 바닷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수로조천(水路朝天) 당시의 일을 바탕으로 하여 교방의 기녀들에 의해 공연물로 탄생되었다. 관서지방은 중국으로 사행을 떠나는 사신들이 거쳐 가야 하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사신들을 위한 연향이 많았고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들을 위한 전별연(餞別宴)에 교방청 기녀들에 의해 험난한 사행길을 떠나야 하는 이별의 애끊은 아픔과 사신들의 무사귀환을 축원하며 배따라기가 연행되었다. 관서지방 배따라기 관련 많은 문헌에서 교방정재 배따라기가 수로조천 당시 배가 떠나가는 (船離) 이별의 아픔을 처절한 성조(聲調)와 행위로 공연작품속에 담아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을 토대로 살펴본 관서지방 배따라기는 무구로 사용되는 그림배(畵船)가 등장하고, 동기 한 쌍을 뽑아 군사인 소교(小嬌)로 분장시킨 후 군례를 올리고, 행군을 의미하는 고취악을 연주, 행선 전 부르는 노래와 음악반주, 행선의 모습을 극적(劇的)으로 표현, 무사귀환을 축원하는 이별가(배 떠나는 노래)를 부르는 형식으로 공연을 구성하고 있다. 명·청 교체기 수로로 사행을 떠나는 사신을 이별하며 바닷가에서 배를 떠나보내며 벌어진 실제 상황을 이렇듯 악·가·무와 극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공연물로 탄생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탄생된 관서지방의 교방정재 배따라기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을 위한 각종 연향에서 공연되어졌고 선상기들의 활동에 의해 궁중정재 선유락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궁중연향을 마친 선상기들의 귀향(歸鄕)으로 인해 다른 지방에도 유사한 형태의 공연물(『교방가요(敎坊歌謠)』 소재 「선악(船樂)」, 『이재난고(頤齋亂藁)』 소재 「행선곡무(行船曲舞)」)로 정착되어 지방의 연향에서 그 지방의 특색을 담아 서로 다른 절차로 공연되어졌다.

조선후기 궁중연향 시 숙설소와 중배설청의 배치와 운영에 관한 연구 -궁중연향의궤를 중심으로- (A Study on Layout and Operation of Suk-seol-so and Jung-bae-seol-cheong at Court Banquets in the Late Joseon - Focusing on Uigwe(Ritual Manual) for Court Banquets -)

  • 경세진;조재모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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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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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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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With regard to Gung-jung Yeon-hyang(宮中宴享; court banquet), the frequency of banquets that were held at one time beginning Mu-ja J in-jak(戊子進爵; a royal banquet held in 1828) in 1828 (the 28th year of King Sunjo (純祖)'s reign). In proportion to this frequency, there was an increase in the need and importance of Suk-seol-so(熟設所; a kitchen built in temporarily house for court banquet) and Jung-bae-seol-cheong(中排設廳; a temporary place to put offerings) as a space to assist court banquets. Although Suk-seol-so was a temporary but large-scale facility, it was frequently used for long periods. This facility was flexibly established using the variability of Dong-gung(東宮; Palace for Crown Prince) and enhanced the efficiency of censorship and security in conjunction with palace gates and Suk-wi-cheo(宿衛處; guard station, guard room). In addition, it was reused according to the period when the nation and royal family gave finances or banquets. Jung-bae-seol-cheong was established in the place connected to the central space of court banquets and worked as buffer space to resolve the tension on the day of the event. The location where Jung-bae-seol-cheong was established enabled us to confirm the applicability of Bok-do(複道; corridor) connected to Chimjeon(寢殿; royal residence) when holding court banquets. In short, Suk-seol-so and Jung-bae-seol-cheong were auxiliary spaces, but were considered importantly in the palace operation when holding court banquets.

궁궐 연향 공간의 지의(地衣) 연구 (A Study on the Function of Mats the Banquet space in the Joseon Dynasty)

  • 석진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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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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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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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rituals that were celebrated in the palaces were mainly held inside the palace and in the courtyard of the palace. Mats were spread on the floor of the place where the ritual was held. The mats spread in the Joseon Dynasty rituals divided the space in various ways, and in particular, they were spread in a certain form in the spaces of royal wedding, customs, and court banquet. Mats were the primary physical element that divided the royal ritual space of the Joseon Dynasty, and functioned to elevate the general space to the ritual space. In the ritual space, mats were spread inside the palace, and divided the courtyard of the palace into left and right in a symmetrical form to distinguish the hierarchy of the participants. Mats with special and white patterns were spread in the external ceremonial space and mats with flower and colorful patterns were spread in the internal ceremonial space. This was the subdivision of the Confucianism's male-female division through the mat. The pattern of the mat that divided the space of the royal family elders also meant longevity to reflect the filial thoughts of the Confucianism through the mat. Mats were a physical element for subdividing the royal family and the participants in the hierarchy of the space where the ritual is held, and it also performed a subdividing function between the royal participants. In other words, in the Joseon Dynasty ritual space, mats were temporarily spread while the ritual is being celebrated and functioned to elevate the space to a ritual space. It is confirmed that the fact that the mats were temporarily spread to divide the space into the hierarchies according to the status and were subdivided into colors and patterns to perform the function to reflect the subdivision of the royal family according to Confucianism and the statue of filial piety in the ritual.

연소로 효율증진을 위한 on-line 세정 방법에 관한 연구 (A Study of On-line Cleaning for Increasing of Combustion Efficiency in a Combustor)

  • 한승동;장현태;이지윤;박정희;김준호
    • 한국산학기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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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산학기술학회 2009년도 춘계학술발표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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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8-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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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액상 보일러 및 가열로 등에서 발생되어 연소기기 내부에 침적되는 슈트, 슬래그, 크랭커, 회분, 산화물의 on-line 세정을 위한 세정제의 제조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고상, 액상, 기상연료를 사용하는 보일러 및 가열로에 생성되는 슈트, 슬래그, 크랭커, 회분, 산화물을 제거하는 기술은 보일러 및 가열로의 가동 중단 후 작업자들에 의한 기계적인 처리를 통하여 슈트를 제거하는 기술을 대치할 수 있고 보일러의 중단이 없는 상태에서 침적물을 세정할 수 있는 세정제의 최적고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주 세정제로는 질산암모늄을 사용하였으며, 각종 전이금속에 의한 연향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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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빌딩 스포츠 센타의 충격성 진동으로 기인하는 소음진동 영향성 평가 및 저감대책 (A Study on the Noise and Vibration Reduction at Sport Center on a Tall Building Apartment)

  • 박해동;김강부;강현승;이홍기
    • 한국소음진동공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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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음진동공학회 2003년도 춘계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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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6-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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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철골조 초고층아파트 내부의 스포츠 시설 운영시 이를 사용하는 시설의 종류와 운동양상에 따라 아파트 상하부층에 소음진동의 민원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초고층 아파트 내부에 스포츠 시설의 배치는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에게 편리성의 주지만 철골조의 특성상 충격성 진동원이 발생하는 스포츠 시설은 상하부층인 아파트에 소음진동의 연향으로 인해 이를 방지하는 설계가 요구된다. 일반적인 아파트의 충간 소음진동문제는 이를 발생시키는 상부거주자의 예절과 충간 소음진동 저감기술이지만 아파트 내부의 동일층을 경계로 위치한 스포츠 시설은 시설의 사용성에 반해 하부층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적으로 저감하여야 한다. 입주한 초고층아파트에 발생하는 소음진동문제를 풀기 위하여 스포츠 시설 하부층 아파트의 소음진동 기준을 선정하고 스포츠 시설의 주된 진동원인 런닝머신의 하중식을 산정하고 충간 소음진동 저감을 위한 대책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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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 대리청정시기 창경궁 연향공간의 건축변화 연구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nge of Banquet Space in Changgyeonggung during the Reign of Crown Prince Hyomyung)

  • 석진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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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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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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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The planning acumen led by the crown prince stands out during the banquets that were held continually during the reign of Crown Prince Hyomyung around the late Joseon period from 1827 to 1929. If we examine the changes in banquet space during the period that Crown Prince Hyomyung ruled by proxy, the Jagyeongjeon(慈慶殿) in Changgyeonggung Palace, which was built during the time of King Jeongjo was repaired after the in 1827 during the reign of the crown prince and appeared in its changed form in Muja Jinjakin 1828. It is believed that the Jagyeongjeonwas expanded and repaired during the reign of Crown Prince Hyomyung to conduct banquets for important guests. Jagyeongjeon which was repaired during the crown prince's reign, is a space where banquets were continuously held during the three years that he reigned, and we can see that it is an important space for royalty where the authority of King Sunjo, Queen Sunwon, and Crown Prince Hyomyung was reflected. Yeongyeongdan(演慶堂) was a structure built in 1828, which is after the period when the Jagyeongjeonwas changed in 1827, and it is a space that emerged during the reign of the crown prince. Hwanchwijeong(環翠亭), which was constructed during the time of King Seongjong was changed after 1827 during the reign of Crown Prince Hyomyung and appeared in its changed form in Muja Jinjakin 1828. Hwanchwijeongwas the place where the Crown Prince Hyomyung stayed and planned banquets and it was repaired along with Jagyeongjeonin 1827. During his reign, the political intent of the crown prince was reflected not in superficial political spaces but in spaces where banquets were held and accordingly the main spaces for banquets and their related royal palace locations were changed or newly established. You need to briefly explain what this and Muja Jinjak are. New information is not provided in this paragraph. You have already established why the crown prince renovated the banquets and its significance in the first two paragraphs. You could just add "Jagyeongjeon(慈慶殿), Yeongyeongdan(演慶堂), and Hwanchwijeong(環翠亭) in Changgyeonggung Palace during his reign were changed and renovated during the time when the royal banquets of the 19th century were getting established. It was spaces that reflected the royal family and royal authority" to the end of the second paragraph and it would convey your intended mea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