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에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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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농서(古農書)에 나타난 한(旱)·수해(水害)와 그 대책(對策)에 관한 고찰(考察)(2)

  • 장권열;최규홍
    • Journal of Biosystems Engine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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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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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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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
  •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三國時代) 천년 동안에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난 농업재해(農業災害)에 관한 기록을 본바 한해(旱害)와 수해(水害)에 대한 기록이 제일 많고, 한해(旱害)에 대한 기록이 수해(水害)에 대한 기록이 수해(水害)에 대한 기록보다 두드러지게 많았다. 한해(旱害)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 시대에 11회(回), 백제시대에 20회(回), 신라시대는 연대(年代)도 길어서 통일(統一)신라 이전에 22회(回) 그리고 통일신라 이후에 23회(回) 등 100회(回)에 가까운 한해(旱害)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수해(水害)에 대한 기록은 한해(早害)에 대한 기록보다 적으나 고구려 시대에 5회(回), 백제시대에 3회(回), 그리고 신라시대에는 15회(回)의 수해(水害)(대수(大水))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한해(早害)나 수해(水害)로 인하여 흉년(凶年)을 당했을 때, 특히 한해(旱害)에 대한 재해(災害)를 입었을 때에는 국가적(國家的)인 대책(對策)을 세워 기아민(飢餓民)의 구호(救護)에 힘을 기울였다는 기록은 얼마든지 있다. 여기에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내여 민심(民心)을 수습하고 국가(國家)에서 비축(備蓄)하고 있었던 양곡(糧穀)으로 구호(救護)하였고 그 시대(時代)가 이천 년 전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 초기부터 라는 것을 볼 때 이들 구호(救護) 대책(對策)의 시행(施行)이 이천 년 전(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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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PES2002 기념세미나-'디지털시대의 인쇄문화'

  • 유창준
    • 프린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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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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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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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대한인쇄문화협회와 한국이앤에스가 공동 주최하고 대한인쇄연구소가 주관한 'KIPES2002 기념세미나'가 8월 30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무역전시장 2층 세미나실에서 '디지털시대 인쇄문화산업 경영전략'이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제1주제 '디지털시대의 인쇄문화'에 대해서는 이중한회장(문화복지협의회.출판인쇄평론가)이, 제2주제 'CTP 올바른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이근순교수(신구대학.프린트피알대표)가, 제3주제 '플렉소인쇄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서는 박치범사장(㈜필텍인터내셔날)이 각각 강연했다. 다음은 각 주제별로 요약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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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집을 통해 본 조선시대 복식명칭 연구: 유해서를 중심으로

  • 김은정;강순제
    • 한국복식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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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복식학회 2004년도 제29회 정기총회 및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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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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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복식명칭은 복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써, 이에 대한 고찰은 많은 문헌 자료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본 연구는 $\ulcorner$한자학습서에 기록된 복식용어의 시대적 의미변화에 관한 연구$\lrcorner$에 이은 후속연구로서, 조선시대에 편찬된 유해류 역학서인 <역어유해>.<동문유해>.<몽어유해>.<위어유해>.<방언유해>에 기록된 복식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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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옥추보경』(玉樞寶經) 중의 신장(神將)에 관한 연구

  • 인즈화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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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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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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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옥추보경』(玉樞寶經)은 송대의 유명한 도교 경전으로 정식 명칭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설옥추보경』(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說玉樞寶經)이다. 송·원시대 이후 『옥추보경』은 중국 각 지역에 광범위하게 전해지면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명나라의 세종(世宗)과 신종(神宗)은 『옥추보경』을 새로 간행하여 직접 서문을 쓰고 동시에 매우 숭앙하였다. 『옥추보경』의 집주본이 조선에 전해진 시기는 대략 명대 시기로 보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전해졌던 『옥추보경』 집주본은 융경(隆慶) 4년(1570)에 전라도 무등산(無等山) 안심사(安心寺)에서 최초로 발간되었다. 그러나 당시 안심사 판본은 첫 페이지와 경문 중의 또 다른 페이지가 없는 불완전한 판본이었다. 옹정(擁正) 11년(1733)에 송몽삼(宋夢三), 서두추(徐斗樞) 등의 제안에 따라 영변(寧邊)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에서 『옥추보경』을 새로 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불완전한 판본이었으며, 병진년(1736)에 잃어버린 두 페이지를 우연히 찾게 되면서 완전한 판본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광서(光緖) 무자년(1888)에 김흡(金潝)이 『옥추보경』을 새로 교정하였고, 계룡산(鷄龍山)에서 이를 다시 간행하였다. 명대의 『도장』에 수록된 『옥추보경』 집주본에는 신장도(神將圖)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세 종류의 판본은 모두 신장도(神將圖)가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간행본과 비슷한 판본으로 영국의 대영도서관 소장본과 일본 천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의 소장본 및 중국 국가 도서관 고적관의 소장본이 있다. 그런데 안심사 판본은 41명, 보현사 판본은 47명, 계룡산 판본은 48명의 신장도가 포함되어 있으며, 대영도서관은 45명, 중국 국가 도서관은 45명 등으로 차이가 있다. 이러한 판본들에 수록된 신상의 수가 다른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에 본문에서 필자는 먼저 계룡산 판본 『옥추보경』에 근거하여 48신장의 내력에 대한 초보적인 고찰을 진행하였다. 언어상의 문제로 『옥추보경』과 관련된 한국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는 못했지만, 『옥추보경』의 48장과 대순진리회의 『전경』에 등장하는 48장이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조명하는 데 유의미한 기초 작업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토대로 나아가 대순진리회의 48신상도와 『옥추보경』의 판본간의 형태적 특징에 주목하여 면밀한 상호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대순진리회의 신앙체계와 『옥추보경』의 관련성을 규명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친환경 녹색성장을 주도할 '그린홈' 시대 열다

  • 대한설비건설협회
    • 월간 기계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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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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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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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그린'은 미래를 이끌어갈 신성장동력 즉, 향후 녹색성장을 주도할 핵심이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 역시 탄소저감기술 '그린'에 대한 영역확보와 시장선점에 사활을 걸면서 그린 기술을 접목한 첨단주택을 발빠르게 선보이고 있으며 특성화를 통해 브랜드의 친환경적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정부도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진하면서 '그린홈 보급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바야흐로 친환경 녹색성장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본지는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그린홈'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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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사(仁和寺)에 소장된 "황제내경태소(黃帝內經太素)" 고권자초본(古卷子抄本)의 전사과정(傳寫過程)에 나타난 일본(日本)에서의 오류(誤謬)에 관하여 (仁和寺藏古巻子抄本"黃帝內経太素"に見られる 日本的な誤りについて)

  • 좌합창미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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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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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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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당(唐)나라 고종시대(高宗時代)(7세기후반기(世紀後半期))에 유행(流行)했던 양상선(楊上善)이 선주(選注)한 "황제내경태소(黃帝內経太素)"가 일본(日本)에 전(傳)해진 것은 현종시대(玄宗時代)(8세기전반기(世紀前半期))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태소(太素)"는 중국(中國) 송대(宋代)에는 이미 거의 모두 유실(流失)되었다. 일본(日本)에서도 점차 확실하게 전승(傳承)되지 못했지만 강호시대말기(江戶時代末期)에 이르러 경도(京都)의 인화사(仁和寺) 서고(書庫)에서 재발견(再發見)되었다. 따라서 지금 볼 수 있는 "태소(太素)"에 수록된 내용들은 모두 인화사(仁和寺)에 저장된 고권자초본(古卷子抄本)(이하(以下)에서 인화사본(仁和寺本)이라고 약칭(略稱))으로부터 유래(由來)해온 것이다. 이 초본(抄本)은 1165~1168년(年)에 단파뢰기(丹波頼基)가 직접(直接) 쓴 것이다. 그가 기초로 삼았던 원본은 일세대전(一世代前)의 단파헌기(丹波憲基)가 쓴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살펴본 결과, 인화사본(仁和寺本) "태소(太素)"의 정리(整理)에서 최초에 초사(抄寫)할 때 착오(錯誤)가 있었다는 것을 고려(考慮)할 필요성(必要性)이 일반고의적이상(一般古医籍以上)으로 크다고 말할 수 있으며, "소문(素問), "영추(靈樞)"와의 이동점(異同點)에 대해서도 교기(校記)할 필요(必要)가 없는 것을 응당 지적(指摘)해내야 한다. 그중 상당한 부분(部分)은 옮겨쓴 사람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일본인(日本人)에 의하여 교정(校正)하는 것이 더 편리(便利)하다고 생각된다. 단지 대륙(大陸)의 문화(文化)가 고대일본(古代日本)에 전입(轉入)되는 과정에서 고대한국인(古代韓國人)의 작용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태소(太素)"초본(抄本)에도 "일본적(日本的)인 착오(錯誤)"외에 "고대한국적(古代韓國的)인 착오(錯誤)"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금후(今後)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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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대(六大) 다류(茶類)에 대하여 -제 1보 신라시대 이전- (On the Six Kinds of Teas -Part I Silla Dynasty-)

  • 김명배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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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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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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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
  • 1979년(年) 이전(以前)까지 찻감(다식품(茶食品))의 분류(分類)에는 사종분류법(四種分類法), 육종분류법(六種分類法), 십종분류법(十種分類法)이 통용(通用) 되었다. 그러다가 1979년(年) 이후(以後)부터는 다(茶)의 화학적(化學的) 성분(成分)에 의(依)한 육대(六大) 다류(茶類)의 분류법(分類法)이 등장(登場)하였다. 한반도(韓半島)에도 육대(六大) 다류(茶類)의 전래(傳來) 여부(與否)와 제다(製茶) 및 음다(飮茶) 여부(與否)를 각(各) 시대별(時代別)로 고찰(考察)함에 있어서, 신라시대(新羅時代)에 당(唐)나라로부터 전래(傳來)된 녹다(綠茶)인 병다(餠茶)의 풍습(風習)은 현대(現代)까지 전승(傳承)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確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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