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안감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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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이후 저고리 안감깃 봉제방법 소고 (Sewing Method of Inner Collar of Women's Jeogori in Modern Korea)

  • 김진홍;조우현
    •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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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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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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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and analyze sewing methods according to the shape of the inner collar among women's jeogories in order to understand such sewing techniques, which has emerged during modern Korea, and has utilized diversly for the shape of the jeogori's inner collar and as part of the inner collar. The study was conducted on relics possessed between 1900 to 1990, or 515 pieces of jeogories. Jeogories were classified into single-layered and double-layered jeogories according to the shape of their composition. Inner collar shapes of jeogories have also been categorized. It was found that single-layered jeogories comprise 49 inner collars with shapes identical to those of the outer collars. Double-layered jeogories comprise of the following three types: 43 pieces of godae close, 18 pieces in which the inner collar of the outer bodice are cut without a connecting line and the inner collar of the godae and inner bodice are suspended, and 405 pieces in which the share of the inner collar is identical to that of the outer collar. From the shapes of inner collars mentioned above, the following sewing methods have been derived: 1. To sew the inner collar of single-layered jeogories, a seaming technique had been used. 2. Among the inner collars of a double-layered jeogori, godae close was sewn with only a short part of the godae by using a lining, and then finished with overage and blind stitches. Godae close was a covenient way to attach inner collars, and also saved much time. 3. Inner collars with shapes identical to the outer collar are divided into two groups: those with outer collars cut out fellowing the cloth without seam and shifted towards the linings and used as an inner collar, and those with outer collars made of outer linings and inner collar of inner linings. To sew the collar, paste and needlework had been employed, where the methods of needlework were divided into blind stitch, overage stitch, and catch stitch. In sewing with paste, only godae was blind stitched or overage stitched, and the remainder had been painted with paste or the collar had been finished with heated soldering iron after the entire inner collar was painted with p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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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용 한복의 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Children's Hanbok for the formal Ceremonies of Korea)

  • Ji, Yoon-Young;Lee, Hye-Young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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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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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7-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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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세계화, 국제화, 개방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통과의례나 전통 명절과 같은 특별한 행사에 의례복으로 한복을 애용하는 것은 한복이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를 강하게 간직하고 있는 한국적 조형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의례복은 특별한 행사 자체를 위해 착용되었던 만큼 당시대의 내 적 가치를 가장 현저하게 표출하고 있는 복식으로 인정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시대 적으로 현대 전통 한복의 기본 형 식을 제공한 조선시대와 그 이후의 복식 중에서 특히 분명한 착용동기와 목적, 복식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상징성 등을 함축하고 있는 아동용 의례복을 대상으로 복식의 형태, 색채, 문양, 소재 등의 조형 요소를 고찰하는 것이다. 또한 양식적 특성을 살펴보고, 그러한 조형적 특성을 형성시킨 당시대의 사상적 가치를 추론해 보는 것이다. 구체 적인 연구 방법은 먼저 관련된 문헌 고찰을 통한 이론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아동용 의례복의 범주를 설정하고 현재 보전중인 실물과 또는 사진, 풍속화에 나타난 복식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당시대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고찰을 병행하여 이들에 내재된 문화적 가치를 추출해 보았다. 연구 결과 양식적 특징으로는 남아의 두루마기나 전복 그리고 쓰개류 등에서 기능성을 고려한 변형적 양식이 나타나고 있었다. 색채 역시 음양 보색이나, 오행색을 바탕으로 한 기본색의 구성 이외 에도 소매나 섶에 응용된 색의 배열이나 맞깃 전복의 깃에 나타난 색의 조화는 다양한 색의 조형미를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색동 등에 나타난 오행색의 배열, 안감과 겉감, 상의와 하의, 외의와 내의에 사용된 색의 조화는 미의식에 관한 문화적 가치를 추론해 볼 수 있다. 더우기 장식 표현에 주로 쓰인 자연물 문양이나 글자 문양은 당시의 지배 사상이 지향하는 덕목 이외에도 전통적으로 내재된 수명과 복록, 부귀와 영화에 대한 내적 가치들을 반영하는 조형적 상징들이라 할 수 있다. 소재는 비교적 계절을 고려하여 사용되고 있었지만 의례적 성격을 지닌 외의나 쓰개류의 경우 계절적 구분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도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장신구의 경우는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아니나 역시 상징적 인 가치를 표현하는 실물들을 미적으로 재구성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아동용 전통 의례복은 형태, 색채, 문양, 소재, 장신구 등에서 양식의 다양성과 변형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적극적인 내적 가치의 상징들을 복식을 통해 표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 복식의 디자인에 있어 아동용 의례복에 나타난 창조적인 양식의 변형과 다양성 그리고 복식을 통한 내적 가치의 반영 등이 현대 사회와 조화를 이룬 실질적인 복식 디자인 제시 및 창작에 작은 영감으로 작용하길 바란다.

1817년 효명세자 입학례의 왕세자 복식 고증 (A Study on the Costumes for the Crown Prince Based on the Picture for School Entrance Ceremony in 1817)

  • 손윤혜;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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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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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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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에서는 1817년에 거행된 효명세자의 입학례 의주(儀註)와 절차별 장면을 담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본 ${\ll}$왕세자입학도${\gg}$를 중심으로, 입학례 절차에 따라 왕세자가 착용하는 복식의 종류와 구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입학례를 구성하는 첫 번째 절차인 <출궁의(出宮儀)>는 산선시위를 비롯하여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관원들, 그리고 의장군들이 왕세자와 함께 동궁을 출발하여 성균관을 향하는 절차이다. 산선시위를 비롯하여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관원들이 동행하고, 이 대열 앞에 의장군이 앞장서 출궁을 알린다. 이때 왕세자는 서연복(書筵服)을 착용하였다. 서연복은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 독옥대(禿玉帶), 흑화(黑靴)로 구성된다. 그러나 입학례 당시 효명세자는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익선관 대신 쌍동계(雙童?)라는 머리모양에 쌍옥도(雙玉導)를 꽂는 공정책(空頂?)을 썼다. 곤룡포는 다홍색 안감을 넣은 아청색 혹은 자적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허리에는 청정(靑?) 독옥대를 띠며 청색 또는 흑색 깃 장식의 흑피화를 신었다. 성균관에 이르면 <작헌의(酌獻儀)>, <왕복의(往復儀)>, <수폐의(脩弊儀)>, <입학의(入學儀)>를 치르게 되는데, 그동안 줄곧 학생복인 청금복(靑衿服)을 착용하였다. 왕세자는 학생복으로 연두건(軟頭巾)을 머리에 쓰고 아청색 도포를 입고 자적색 세조대, 흑화를 착용하였다. 도포 안에는 대창의와 중치막을 받쳐 입었다. 왕세자가 성균관에서 학생복을 착용하는 것은 왕세자가 왕위 계승자로서의 서열을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학문의 스승을 맞이하고 유학의 학맥을 잇는 자임을 표방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성균관에서 의식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온 후, 효명세자는 창경궁의 시민당(時敏堂)에서 입학례의 마지막 절차인 <수하의(受賀儀)>를 거행하였다. 이때 원유관복(遠遊冠服)을 착용한다고 하였으나 관례를 치르기 전이므로 원유관 대신 공정책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