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신사적 자본주의

검색결과 2건 처리시간 0.015초

1870-1914년 영국의 초국적 기업 발전을 저해한 요인 분석: 연결망(네트워크) 이론의 개념적 적용 (A Conceptual Study of the underdevelopment of the British Multinational Corporations, 1870-1914: from the perspective of the network theory)

  • 양오석;강원택
    • 국제지역연구
    • /
    • 제14권1호
    • /
    • pp.129-153
    • /
    • 2010
  •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요 퍼즐은 '왜 영국은 19세기 말 ~ 20세기 초 기간 동안 다른 국가와 달리 초국적기업이 출현하는 일반 구조를 발전시키지 못했는가?'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비록 완전한 대답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영국 사회의 속성을 보여주는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의 맥락에서 그 원인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 하에 이 글은 사건을 둘러싼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와 (사건에 대한)통제력이 빚어내는 사건의 가치 상승효과를 고려한다. 이 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국 사회 내에 팽배해 있었던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경멸과 대기업 및 초국적 기업 육성의 필요성에 대한 영국 정부의 불식, 그리고 신사적 지배층의 확산과 더불어 수반된 시티의 상업-금융 자본가들의 영향력 확대 등도 영국 기업의 초국적화를 가로막았다. 둘째, 영국의 정치적 지배구조와 경제구조의 토대는 지속과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1850년 이래 영국 사회구조는 점진적으로 시티의 상업-금융 자본가들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구도로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제조업체의 초국적화가 아닌 금융서비스업의 초국적화였다. 셋째, 영국 엘리트 집단들이 주도한 사회연결망의 형상은 단절과 연계로 구분되는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와 통제력을 통해 구성된다. 서로의 이익이 상호보완적이었던 것과 달리 통제력의 차원에서 초기에는 지주계급과 상업-금융 자본가들의 자발적 동기에 기반 한 의도된 연계가 형성되었으나 결국 통제력의 소유는 산업자본가들을 배제한 채 상업-금융자본가들에게로 이전되어 사회연결망의 재구축이 이루어졌다.

인삼왕 손봉상의 업적을 통해 본 개성인삼 개척사 (The ginseng magnate BongSang Son; His life and achivements)

  • 김조형;옥순종
    • 인삼문화
    • /
    • 제2권
    • /
    • pp.27-38
    • /
    • 2020
  • 개성은 고려인삼의 메카다. 개성이 고려인삼의 대표 브랜드가 된 배경은 복합적이다. 인삼 재배에 적합한 천혜의 자연조건에 개성의 막강한 상업자본과 증포소 설치가 물적 토대라면 개성상인의 단합과 근검, 실리주의, 창의적인 상업제도 등 인적 토대가 결합하면서 개성은 한국 인삼의 본산지가 되었다. 개성 인삼의 부흥을 끌어온 개성상인으로 손봉상, 김원배(金元培), 공성학(孔聖學), 김정호(金正浩), 박우현(朴宇鉉) 등을 들 수 있다. 개성 삼업을 주도한 이들은 인삼경작법과 병충해 방제법을 보급하고 관립종삼회사를 설립, 종자보존을 하고 영농자금 선불제를 도입하는 등 현대적 경영기법을 선보였다. 그 중 인삼 대왕으로 칭송되는 손봉상(孫鳳祥)의 생애를 조명함으로써 개성 인삼 상인의 업적을 살펴본다. 1927년에 발간된 '조선인회사, 대상점사전(朝鮮人會社 大商店辭典)'에 "손봉상은 개성 인삼경작계의 원로이며 그의 손에 의하여 발명된 인삼 제품도 적지 않다. 이 인삼 경작업은 손씨가의 전래지업(傳來之業)이나 손봉상에 의하여 대성되었다"고 소개되어있다. 손봉상의 주요한 업적은 첫째, 인삼에 적부병(赤腐病)이 발생하여 인삼경작이 절망(絶望)에 빠졌을 때 종삼회사(種蔘會社)를 창립, 우량한 종삼(種蔘)을 재배하였고 둘째, 종삼 심사 제도를 도입하여 우량 종삼 확보 제도를 확립시켰고 셋째, 개성삼업조합(開城蔘業組合)을 창설해 경작자금 저리 융자, 종삼의 개량, 병충해 예방, 경작법 개량 등을 시행하였고 넷째 개성인삼동업조합(開城人蔘同業組合)을 창립해 인삼의 성가(聲價)를 회복시켰다. 그는 삼업에서 모은 자본을 바탕으로 각종 회사 설립에 참여하여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12년 10월 합자회사 영신사(永信社)를 개성의 거상인 김원배(金元培), 공성학(孔聖學), 김정호(金正浩), 박우현(朴宇鉉)과 함께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고, 상품의 도산매·위탁판매, 창고업과 금융업을 경영하였다. 또 개성의 전기 보급을 위하여 1917년 4월 개성상인들과 합작으로 전기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취체역을 맡는 등 다양한 기업 활동을 했다. 개성 인삼 상인들은 삼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연결하는 시대적 선구자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