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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로의 전환기에 표현된 패션의 미학적 특성(제2보) -정량분석을 중심으로-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Fashion in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21s1 Century(Part II) -Quantitative Study-)

  • 이봉덕;양숙희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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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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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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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Based on the qualitative analysis regarding five dominant characteristics of fashion in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21s1 century, subsequent quantitative analysis was conducted and the following results were obtained. First, it was found that 85% of the clothes analyzed showed these five characteristics. Secondly, among the five characteristics, the new-naturalism shows the most significant trend and neo-retro was also found as one of the leading features along with the new-naturalism in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21 st century. However, the frequency of technicism is less than was expected. Thirdly, analysis of the distribution of fashion characteristics according to fashion designers and seasonal changes show that new-naturalism, neo-retro and hybrid spread relatively evenly among each designer. The quantitative study confined the results obtained through the qualitative study.

21세기로의 전환기에 표현된 패션의 미학적 특성(제1보) : 정성분석을 중심으로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fashion in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21st century(Part I) : Qualitative study)

  • 이봉덕;양숙희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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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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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49-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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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It is anticipated that, in the 21st century, aesthetic sense will be altered radically with the introduction of new value systems and ethical standards. At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new aesthetic senses and identities have already emerged and exerted influence to the society, arts and fashion trend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aesthetic characteristic of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21st century. This study employed the qualitative analysis and the main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the 21st transitional period were found as hybrid, technicism, neo-retro, new naturalism, and multi-nationalism. The transitional fashion in the 21s1 century mirrors the post-modern trends with diversity and indeterminacy as the basis of changes. It is expected that this pattern will continue to extend persistent and dominant influence to the future fashion industry. In the subsequent study, quantitative analysis wi]1 be conducted to verify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analyzed in this study.

조선 지성인들의 '고금(古今)' 인식과 역사변동 - 학파 간의 차이를 중심으로 - (Joseon Intellectuals' Awareness in 'Gǔ(古) and Jīn(今)' and Historical Changes - Focusing on distinctions between different schools)

  • 최영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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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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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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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조선시대 지성인들이 고(古)와 금(今)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그 결과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고찰하였다. 학파 간의 차이를 중심으로 거시적 차원에서 조망을 한 것이다. '고'와 '금'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학술과 예술, 나아가 정치 등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학자에 따라, 학파에 따라 고 금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면서 전통과 창조, 보수와 진보, 이상과 현실의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또 그런 논의가 역사적으로 정치와 사회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시대는 전반적으로 '고'를 중시하는 문화 전통이 뿌리를 내렸다. 그러는 가운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금(今)'이나 '신(新)'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었다. 현실이 혼란하거나 타락하였다고 판단될 때에는 근본으로 되돌아 가자는 복고(復古)를 기치로 내걸기도 하였다. 고와 금에 대한 인식이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만 '고'를 버려둔 채 '금'을 말하거나 '신' 을 외치는 경우는 없었다. '고'를 비판한 경우도 고에 얽매인 것을 비판한 것이지 '고' 자체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금'은 사실상 '고'의 종속 변수였다. '고'를 보수, '금'을 진보라고 보는 것은 이분법적인 인식이다.

《해동명적》을 통해 본 조선 초기 서풍 (Calligraphy Style in the Early Joseon Period : An Examination of Renowned Calligraphy of Korea)

  • 유지복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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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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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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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논문은 ${\ll}$해동명적(海東名迹)${\gg}$에 실린 필적을 분석하여 조선 초기 서풍의 흐름과 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ll}$해동명적${\gg}$은 16세기 초에 신공제(申公濟)가 간행한 서첩으로, 우리나라 역대 명필의 필적을 한데 모아놓은 최초의 집첩(集帖)이다. 필자는 선행연구에서 다양한 이본으로 남아 있는 목판본과 석판본의 간행 배경과 판본을 분석하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ll}$해동명적${\gg}$에 실린 조선 초기 필적의 서풍을 분석하는 데 주력하였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관각(館閣)의 문서를 담당했던 사수(寫手)들의 서풍과 고령신씨(高靈申氏) 집안에 가전(家傳)되어 오던 서풍의 변화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전통적인 왕희지 서풍이 건재한 가운데 원말 복고주의의 영향으로 파생된 다양한 서풍이 수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서역 변방 출신 강리노노(康里??)의 서풍이 폭넓게 수용된 흔적이 주목된다. 이는 으레 조맹부(趙孟?)의 송설체(松雪體)로 대변되었던 여말선초에 실은 다양한 원대의 서풍이 유입되고 있었다는 징표이다. 마지막으로 "패관잡기"에 실린 어숙권(魚叔權)의 기록의 진위 여부를 추론해 보았다. 어숙권은 ${\ll}$해동명적${\gg}$에 실린 박경의 필적이 실은 신자건이 쓴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숙권의 출신과 정치적 입지를 기준으로 신자건과 박경의 관계성을 분석한 결과 어숙권의 주장이 타당치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