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시대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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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 시대, 정부3.0의 위험과 과제 (A Study on Government 3.0 in the Era of the Right to Know)

  • 김유승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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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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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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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알권리제도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박근혜정부의 정부3.0이 당면한 과제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알권리와 정보공개제도에 관한 선행연구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알권리의 개념을 협의와 광의로 구분하여 정의한다. 또한, 18세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알권리제도의 연혁을 고전적 자유주의 기반의 알권리 시대, 청구에 의한 수동적 정보공개시대, 적극적 정보공유의 시대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알권리제도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 정부3.0의 성과와 한계를 논하고, 결론에 갈음하여 정부3.0의 위험과 과제를 공공정보의 '품질', '수집과 활용을 통한 통제와 감시', '보안'이라는 3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구분마연 기술로 본 한국식동검문화의 개시 연대 - 중국 자료의 편년을 통하여 - (The Commencement Period of the Korean Type Bronze Dagger Culture, Seen from the Condition of the Section Polishing Technique - Through the Chronology of Chinese Data -)

  • 허준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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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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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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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글은 중국 자료의 편년을 통해 한국식동검문화의 개시 연대를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여기에서는 한반도의 한국식동검과 중국의 동주식동검에 동일한 구분마연 기술이 존재하는 점을 주목하였다. A1식 구분마연 기술이 관찰되는 동주식동검은 '1958년 산동성 안구시 수습품'으로 전해져 명확한 출토양상을 파악할 수 없다. 때문에 비교자료인 제남 좌가와 1호묘 출토 동주식동검과 공반품을 제시하였다. 공반품은 청동무기, 청동예기 등이 출토되어 유적의 연대는 춘추-전국시대 과도기~전국시대 전기로 편년된다. 출토된 양 동검은 형식학적 유사성 및 편년적 위치를 동일하게 설정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한반도 제유적 출토의 한국식동검은 중국 출토 A1식 구분마연 기술의 동주식동검과 일정기간 병행되어 성립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A2식 구분마연 기술이 확인되는 산서성 만영묘전 61M1호묘의 연대는 전국시대 전기~중기로 편년되며 A1식 구분마연 기술과 연동되어 전개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결국 중국 자료의 편년을 통해 볼 때 한국식동검문화의 개시 연대는 춘추-전국시대 과도기~전국시대 전기로 이해되고, 기원전 5~4세기로 편년된다. 이와 같은 연대는 기원전 6~5세기로 편년되는 심양 정가와자 6512호묘에 후행되며 요령식동검문화와 한국식동검문화는 자연스럽게 연동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A1식 구분마연 기술은 한반도 서남부지역과 중국 산동반도, A2식 구분마연 기술은 한반도 남부지역과 중국 산서지역 및 일본 북부구주지역에 분포한다. 구분마연 기술의 무기형청동기를 통해 볼 때 중국 산동반도(중원지역) ${\leftrightarrows}$ 한반도 서남부지역(서북부지역) ${\leftrightarrows}$ 일본 북부구주지역은 하나의 교통로(전파 경로)로 설정된다. 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구분마연 기술이 출현하고, 지역적 확산이 전개되는 바이다.

전남지역 선사고고학의 연구성과 (Results of the Studies on the Prehistoric Archaeology in Jeonnam Province)

  • 최성락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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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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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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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전남지역의 선사유적에 대한 조사는 1970년대부터 시작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활발하였고, 1990년 이후 유적의 발굴조사는 급증하였고, 그 성과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최근 영산강유역에서도 구석기시대 유적이 활발하게 조사되었고, 지석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철기시대의 패총과 무덤인 주구토광묘가 새로이 확인되었다. 이와 더불어 각 시대의 편년과 유물${\cdot}$유적의 성격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전남지역은 문화적으로 동부와 서부 등 두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고, 각 시대의 문화양상에 따라 충청지역이나 영남지역과 관련되었다. 그리고 선사시대의 사회가 평등사회에서 계층화된 족장사회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각 시대의 문화상이나 대외관계 등에 대할 심층적인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이것은 고고학 자료의 수집이 주로 제한적인 구제발굴에 의존하고 있고, 고고학연구도 유물의 연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러한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적이 뚜렷한 학술발굴이 이루어져야 하고, 고고학자료의 분석이 좀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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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화시책(禁火施策)의 전개과정에 관한 연구 - 금화정책, 금화계획, 금화사업, 금화시설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Progression of Fire Control Policies in Joseon Dynasty - Regal & Administrative System, Planning Tools, Works and Facilities -)

  • 김상희;이경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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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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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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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도시 전체가 화재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조선시대 화재는 많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화재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계획수법, 기술과 시설들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 연구는 화재와 관련한 정책, 계획, 건축, 구조물 시설물 등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금화시책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의 금화시책은 그 목적에 따라 화재예방을 위한 비보풍습(裨補風習)과 비화(備火)시책,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경계(境界)시책, 화재를 끄기 위한 멸화(滅火)시책, 구화(救火)시책 등으로 구분된다.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금화시책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먼저 태종대로부터 문종대에 이르는 시기로, 이 시기에는 행정 및 사법체제 정비, 금화행정, 금화계획, 금화사업, 금화기구 개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금화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제2단계는 기와를 공급하는 관아가 소멸되는 단종대부터 현종대에 이르는 시기로, 부분적인 금화사업을 중심으로 금화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제3단계는 숙종대부터 순종대에 이르는 시기로 금화사업보다는 금화기구 개발을 중심으로 금화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시대 갑주 유물의 감정을 위한 현황파악과 시대구분 (Present Situations of the Remaining Korean Armors and Helmets of Joseon Dynasty and their Periodization for A Better Appraisal)

  • 박가영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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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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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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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is is a basic study of the remaining armors and helmets of the Joseon period for our better understanding and better maintenance of them. For the purpose, this paper shall try to show the present situations of the remaining armor and helmets of the period in Korea, and their typical classification for periodization, and the nomenclature about them. First, to oversee the present situations of the remaining armor and helmets of the period, study was done about the kinds of armors and helmets, their users, and their possessors today. It was found that the exact dates and users were unclear for many cases of the armors and helmets under our consideration. It is understandable when we consider many of them were exported to foreign countries, instead of being well-preserved in Korea upon excavations. Secondly, for their typical classifications for periodization, types were delineated from the pictures and drawings in reference to the periodical changes of them from Korean historical records. The result was that we can find out 4 types of armors, and 3 types of helmets, with their combinations. This shall be usefully applied for the better periodization of the remaining items. Thirdly, we come to the problem of naming of the remaining armors and helmets. For better nomenclature of the remains all the names of the armors and helmets for the Joseon period are collected from historical literature, to figure out some principles of nomenclature for them. I found some discrepancies with the present names of them, and my propositions are suggested to replace them.

스마트시대의 기술혁신을 위한 R&D 전략

  • 김흥남
    • 정보와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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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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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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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스마트시대는 전 산업분야,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IT가 활용, 재생산되어 인류 삶의 질을 보다 향상시키는 시대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기술(스마트 기술)의 혁신은 타산업과의 융합은 물론, IT산업발전을 위한 총체적(holistic)접근이 요구되며, 단기적이고 금전적인 성과를 지향하기 보다는 비금전적(non-financial)이며, 사회성과 등 미래 성과를 지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본고에서는 스마트시대 기술 진화방향을 생태계(CPND) 활성화 차원에서 조망하고, 혁신을 위한 R&D 전략을 기술도메인의 발굴 및 선택을 위한 기획전략, 효과적 성과창출을 위한 수행전략 그리고 효율성 제고를 위한 성과 활용전략으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즉, 미래 스마트시대에 부합하는 기술혁신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아날로그적 형식에서 가상(Virtual) 공간/디지털 형식으로, 폐쇄적 플랫폼에서 개방형 플랫폼으로, 음성/데이터중심에서 지능화된 디바이스로, 대인통신에서 사물통신으로 진화하는 메가트렌드를 고려하여, 지향점에 따른 차별적 기획체계 구축, 다양한 가치생성방식의 활용, 성과극대화형 R&D 수행방식 수립, 그리고 특허경영과 같은 활용체계 구축 등의 R&D 전략이 필요함을 제시하였다.

디지털 시네마의 지표성과 영화언어의 진화와의 관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Relation between Indexicality of Digital Cinema and Evolution of Cinematic Language)

  • 정민아
    • 한국융합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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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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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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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프레임에서 픽셀로의 전환은 영화가 기술적 차원에서 거대한 전환을 이룬 것뿐만 아니라 영화언어 차원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필름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정의하며, 필름 시대의 영화와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스타일 차원에서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본고는 지표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지각적 사실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담론은 환영주의와 고전적 사실주의의 이분법적 구분을 해체한다. 이에 따라 이미지의 현실성은 지표적 차원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보다 근본적으로 관객이 어떻게 지각하느냐 하는 수용의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는 효과로서의 수용성이라는 차원에서 디지털 시네마의 지표성과 세계, 그리고 디지털 이미지 간의 관계에 대해 검토하는 작업을 해야 하며, 또한 이미지 생산의 관점에서 재고찰해야 할 것이다.

출토복식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남자 편복포의 시대구분 (The Periodization of Men's Coat(Peonbokpo) of the Joseon Dynasty Based On Excavated Costumes)

  • 홍나영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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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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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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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e basic costumes of the joseon dynasty such as pants and jackets were not particularly distinctive over the period in comparison to po. The coat that was worn over pants and jacket, however, had different forms in the course of the joseon dynasty. In this paper, I will analyze the changing style of pyeonbokpo, the daily costumes of Joseon man, which were excavated in recent years. Changes in the collar style were the most distinctive of joseon pyeonbokpo such as cheolik, dapho, aekjueum, jikryeong, daechangyeui, jungchimak, and juyeui. Although pyeonbokpo had double collar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y disappeared in the seventeenth century: a straight line also replaced by a curve for the collar perimeter. Front-adjusting of pyeonbokpo was very deep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ront-adjusting became si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sulting in the central positioning of a ribbon. The rectangular form of a gusset(mu) was stitched to the bodice through various pleats. Gusset patterns changed greatly into various forms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along with the ladder gusset form. The long vest(dapho) was half-sleeved and had a deep front adjustment in the early joseon dynasty; however, it did not have collars and sleeves since the eighteenth century. The waist line of cheolik had the ratio of 1.2 to 1 for the bodice to skirt. But the length of skirts grew gradually into the ratios of 1 to 1, 1 to 2, and 1 to 3.8 while the waist line moved upwards to the chest line. Sleeves of all po had a straight form but they gradually developed the tendency to widen towards the wrists. Later, sleeves changed again, having a wide rectangular form starting from the armpits. Cheolik was widely worn in the early joseon dynasty; however, it was worn less in later years. Instead, clothes that had slits such as dopo, daechangeui, and jungchimak were greatly available. These characteristics of the change in men's costumes enable us to measure the time period of excavated findings despite the lack of records for Joseon gr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