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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원도심 소리풍경에 관한 의미론적 연구 -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 종소리를 중심으로 - (A Semantic Study on the Soundscape of the Historic Downtown of Daejeon - Focusing on the Bells of Daeheung-dong Cathedral and Enhang-dong Sungsimdang -)

  • 김명신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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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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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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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의 목적은 대전 원도심의 랜드마크이자 명소인 중구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 두 장소의 종소리가 지닌 사운드스케이프의 성격과 의미를 조명하는 것이다. 연구는 현장 답사 및 녹취, 관련 자료와 사운드스케이프 이론 등의 문헌연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전시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철도 대전역과 함께 생성된 도시로,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역 인근에 위치한 중구 대흥동과 은행동 일대는 크게 발달하며 원도심을 형성하였다. 90년대에 서구로 주요 행정기관이 대거 이전하면서 대전 원도심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세종시 개발로 쇠락은 가속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대흥동 성당과 한국전쟁 당시 한 피난민에 의해 설립된 성심당은 원주민들이 떠나간 대전 원도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흥동 성당은 일제 강점기에 설립되어 2019년 들어 10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된 지역 랜드마크로,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대전시와 역사를 같이 하는 역사문화자산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한 성심당 또한 설립 60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문화자산이자 대전 명소 1위로 선정된 지역 랜드마크이다. 인근 주택가에까지 들려오는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에서 출발한 이 탐구는, 대로 건너에 위치한 은행동 성심당의 종소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본 고는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의 종소리가 시그널 사운드(signal sound)를 넘어 사운드마크(soundmark)의 성격을 지님을 머레이의 사운드스케이프 소리 범주를 통해 파악하였다. 나아가 비교적 최근의 EU 사운드스케이프 정의에 따라 두 종소리의 의미 분석을 시도했다. 두 종소리는 표층적 차원에서는 시그널사운드이지만 심층적 차원에서는 대전 원도심의 사운드마크이다. 외형적으로는 규모나 스케일, 빈도, 유명도에서 차이가 있으나, 두 종소리는 특별한 인연의 역사성과 장소성, 로컬리티와 선한 영향력 등에서 의미를 공유한다. 본 연구의 시사점은 대전 중구 원도심 도시 재생 혹은 도시 개발에서 두 장소가 시각적 랜드마크 뿐만 아니라 사운드마크로서도 지역 역사문화자산임을 밝힌 데 있다.

『진묵조사유적고』와 『전경』에 나타난 진묵 설화의 차이에 대한 재해석 -문헌 전승과 구전 전승의 차이를 중심으로- (A Reinterpretation of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ales of Jinmuk shown in The Investigation of Historical Remains of Patriarch Jinmuk and The Canonical Scripture: Highlighting Differences between Literary Transmission and Oral Transmission)

  • 김태수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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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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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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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攷)』(이하 『유적고』)와 증산(甑山) 및 대순사상에 나타난 진묵(震默) 설화의 차이와 관련, 선행연구에서는 증산이 종교적 이유로 설화의 원 의도를 변형한 것으로, 또는 믿음과 가치관의 차이로 본다. 이는 한국불교와 증산·대순사상 간 가치관의 차이를 전제로 양자를 회통하려는 해석이다. 본 연구는 가치관에 따른 기술 차이라는 이상의 관점을 수용한다. 다만 이러한 기술 차이를 불교와 대순사상 간 세계관 차이가 아닌, 문헌 전승과 구전 전승의 차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다. 이는 각각 19세기에 최초 문헌설화로 구성된 『유적고』와 18세기 이래 전래 된 민간전승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석 지평에서 진묵-봉곡(鳳谷) 관계를 조명하면, 『유적고』는 초의(草衣)·김기종(金箕鍾) 등 지식층의 가치관·의도를, 구전설화는 조선 후기 민중들의 희망을 투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증산 또한 천지공사에서 민간전승을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16C에서 19C에 이르는 유불 관계 맥락에서 『유적고』 찬술 경위와 의도를 분석했다. 특히 『완당집(阮堂集)』·승려 문집 등을 통해, 유학 측에서는 예도 정신의 진작이라는 시대 이념에 따른 자료의 순화·교정이 필요했고 초의 역시 불교에 불리한 구비전승을 윤색·삭제한 것으로 보았다. 반면 『유적고』에 수록되지 않은 진묵 설화가 18세기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영당중수기」 및 현존 구비전승을 볼 때 증산의 기술은 민중의 염원을 담은 시속의 민간전승을 수용한 것으로 평가했다. 즉 정치·사회적 이유로 유불 화합 내용만 채택한 『유적고』에 비해 『전경』은 조선 후기 회자 된 구비전승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이해했다. 근거로는, 진묵-봉곡 관계를 조명한 구전설화에서 봉곡의 시기나 살해에 관한 서사가 많다는 점, 증산이 정치적 입장·신분이 아닌 마음과 뜻에 따라 모든 계층의 인물을 아울렀음을 들었다. 따라서 구전 전승의 특성상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서사 내용을 개작할 필요가 없었고 민중의 소리를 투영한 것으로 해석했다.

수구(水口)를 중심으로 분석한 중국 소주고전원림(蘇州古典園林)의 수경관 연출기법 (A Study on the Waterscape Formation Techniques of China's Suzhou Classical Garden Based on the Water Inlet and Outlet)

  • 노재현;려원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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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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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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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연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중국 강소성(江蘇省) 소재 소주고전원림(蘇州古典園林) 수경관(水景觀)을 조명한 결과이다. 문헌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입수구와 출수구 그리고 주변 수경요소 간의 상호관련성을 정량적으로 탐색으로써 중국 고전원림 수구(水口) 고유의 객관적 특성을 파악하는 한편, 한국 전통원림과의 차이점을 준거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모색하고자 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소주고전원림의 수공간 평균 면적은 1,680.7m2로 계상되었는데 이는 전체 원림면적의 21.3%를 차지하는 것으로 원림별 큰 편차를 보였다. 원림 대부분은 샘물과 우물을 수원(水源)으로 삼았으나 창랑정은 지표수를, 퇴사원은 계절수를 수원으로 하였다. 한편 원림의 수구는 정수구(正水口)와 가수구(假水口)로 구분되는바 가수구는 단지 의경(意景) 효과를 유도하기 위한 모방수구로, 수체계상의 의미를 중시하는 소주고전원림의 경향과 결착(結著)된 것으로 보임에 따라 궁극적으로 원림의 수구 배치는 전통 '감여이론(堪輿理論)ʼ이 작동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소주고전원림의 인수(引水) 방식은 직인법(直引法), 명거법(明渠法), 침투법(滲透法), 관도법(管道法), 착정법(鑿井法) 등 5가지 유형이 적용되었다. 이중 직인법, 침투법, 관도법은 출수기법에서도 활용되었는 바 소주고전원림에서의 보편적인 물확보 수법인 침투법과 관도법은 국내 구분 방식으로는 집수법(集水法)과 인수법(引水法)에 비견(比肩)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한국 전통정원에서 보이는 현폭(懸瀑)과 비폭(飛瀑) 등의 입수기법은 발견되지 않으며 단지 자일(恣逸)과 잠류(潛流) 그리고 용출(湧出) 기법에 의존한 입수기법이 주로 적용되었고, 무너미를 통한 출수기법은 소주고전원림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소주고전원림의 입수구와 출수구에서 정태수체는 호수, 소(沼)와 담(潭)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동태 수체는 계류, 폭포와 샘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3개 원림의 수공간은 원심적분산배치를, 6개소의 수공간은 구심적 집중배치에 따른 수경관 효과가 반영되었다. 그리고 수경관 연출기법으로 입수구에서는 '격(隔)ʼ과 '파(破)ʼ의 기법이, 출수구에서는 '엄(掩)ʼ과 '파(破)ʼ의 기법이 주로 적용되었다. 예컨대 입수구 주변에는 대부분 교량이 건립되고 사(榭), 헌(軒), 각(閣), 정(亭), 랑(廊) 등이 조성되었으며 첩석박안(疊石駁岸)으로 수구를 은폐한 경향이 감지됨에 따라 "비록 인간이 만들었지만 마치 하늘이 내린 것 같다(雖由人作, 宛自天開)"라는 소주원림의 이수사상(理水思想)을 구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입수구와 출수구의 시각구성상 은폐 및 노출 정도를 분석한 결과, 창랑정의 어비정과 환수산장 문천정 조망점에서만 수구가 노출될 뿐 다른 조망점에서는 수구가 가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볼 때 소주고전원림 수구에서는 한국 전통정원에서 적용되고 있는"물이 들어오는 것은 보이나, 나가는 것은 보이지 않게 한다"는 풍수좌향론 관점에서의 '향향팔미법(向向發微法)' 기법은 거의적 용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고대(古代)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에서 찾는 삼재(三才)와 부등변삼각(不等邊三角)의 미학(美學) - 서산마애삼존불의 형식미를 중심으로 - (Aesthetics of Samjae and Inequilateral Triangle Found in Ancient Triad of Buddha Carved on Rock - Centering on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Triad of Buddha Carved on Rock in Seosan -)

  • 노재현;이규완;장일영;고여빈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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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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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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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서산마애삼존불을 중심으로 삼국시대 조성된 마애삼존불상 조형에 담겨진 비례미 등 구성적 원리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확인함으로써 전통 석조 방식의 하나인 삼존석조의 구축 및 응용을 위한 기초자료 구축을 모색하였다. 총 17개 마애삼존불의 크기 및 비율 분석 결과, 본존불의 평균 전고는 2.96m, 우협시는 2.19m, 좌협시는 2.16m였다. 이에 따른 높이비는 100:75:75로 좌우 대칭균형의 관계를 보였고, 좌우협시의 면적비는 13.4:16.7 로 우협시의 면적비가 높았다. 서산마애삼존불은 용현계곡의 삼불교를 건너 인암(印岩)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좌향은 방위각 $S47^{\circ}E$로 측정되었다. 이는 예배자의 눈부심을 차단하면서 햇빛의 방향에 따른 불상의 이미지 변화와 미감을 노린 것으로 판단된다. 서산마애불의 도상적 특징은 반가상과 봉지보주형 보상입상을 협시도 하고 있으며, 좌우비대칭형의 삼존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선과 형태가 반복되는 가운데 통일성을 보임으로서 안정된 시각적 균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서산마애삼존불의 경우, 본존불과 좌협시 그리고 우협시의 전고는 각각 2.80m, 1.66m, 1.70m였다. 좌우협시불의 높이비는 0.60:0.62로 거의 대등한 반면 면적비는 28.8:25.2로 보다 큰 차이를 보여 평면상의 면적비가 삼재미적 비례에 더욱 근접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광배 중심의 사윗각비는 88:44:48로 직각에 가까운 반면 연화좌 중심 사윗각의 비는 127:30:23으로 측정됨으로서 둔각에 가까운 부등변삼각형의 형태를 보였다. 따라서 서산마애삼존불의 상부와 하부는 직각과 둔각의 부등변삼각형의 각도 비례를 통한 대응적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안정적 비례감을 취하고 있다. 상반부의 거리비는 0.51:0.36:0.38인 반면 하반부의 거리비는 0.53:0.33:0.27로 보다 부등변삼각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면서 상하 좌우대칭의 비대칭균형을 이루고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을 대상으로 삼재미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길이비 보다는 면적비나 삼각도형을 이루는 각도비가 더욱 두드러져 나타났다. 각 불상 상호간의 높이 및 면적비 못지않게 상부 광배와 하부 연화좌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부등변삼각이 이루는 구도는 삼재간의 구성적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매우 중요한 내부적 동인이 되고 있다.

경희궁 별원(別苑) 함춘원의 실지(實地) 경역 고찰 (A Study of the Impractical Area and Boundary of an Outer Royal Garden "Hamchunwon" Attached to Gyeonghuigung Palace)

  • 정우진;홍현도;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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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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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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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러시아공사관 부지 이전에 존재하던 경희궁 별원 함춘원의 경역과 본래의 외곽 경계를 고찰한 것이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공사관 부지확보 및 신관 건립을 위해 작성된 3종의 도면을 살펴보면, 부지 내부에 함춘원의 원지형으로 보이는 2개의 낮은 봉우리가 남북 방향으로 존재했음이 확인된다. 공사관의 초기 계획안에는 출입문이 북서쪽 새문안로와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러시아 임시공사 베베르가 공사관 부지를 매입할 당시의 보고서에는 이미 좁은 출입구와 흙길이 있어 새문안로와 통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공사관의 출입문으로 계획한 부지 북서쪽에 함춘원으로 진입할 수 있는 관리 동선과 원문(苑門)이 위치했음을 알게 해준다. 둘째, 공사관의 건립 당시 높은 언덕 상부를 절토하여 대지가 조성되었고 그 결과 2단의 계단식 지형이 만들어졌다. 본관 및 서기관동 등이 세워진 지반은 가장 높은 봉우리를 깎아 평평하게 다짐하여 만들어졌고 이때 다량의 토량이 정지작업에 사용되었다. 본관 북쪽 영역의 경우도, 산지를 깎아 평평하게 지형을 고른 흔적이 역력하고, 조망이 수월한 물리적 환경을 활용하여 산책로와 정자가 있는 전망형 정원이 조성되었다. 이는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형에 민간의 조망을 막기 위해 별원을 조성했던 지형 조건과 상통한 이용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미국, 영국, 러시아공사관 주변의 공간 변화를 보여주는 1880~1890년대의 사진에 함춘원 담장이 부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사진분석 결과 함춘원은 러시아공사관 부지 북측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사관의 북쪽, 서쪽, 동쪽 담장이 함춘원의 담장과 근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공사관 남쪽 영역은 본래 민간의 가옥이 있던 곳으로서, 여러 자료에서 수십 채의 민가와 농경지를 매입한 정황을 살필 수 있었다. 넷째, 광해군 연간 경덕궁의 별원으로 조성된 함춘원은 경복궁 중건 때 경희궁의 전각을 뜯어서 공사 부재로 사용하면서 별원으로서의 장소성을 상실했으며, 1885년경 러시아에 매각됨으로써 멸실되었다. 함춘원이 있던 경역은 신관의 건립 뒤로 주요 건물과 정원이 있는 러시아공사관의 핵심적 공간으로 변용되었다. 따라서 러시아공사관 북측 영역에 한정된 함춘원은 1897년 이후 조영된 경운궁 및 선원전과 시간적, 공간적 맥락이 닿아 있지 않으며, 선원전의 배후림 또는 배경림으로 보는 시각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