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서민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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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소설과 풍속화를 중심으로 본 조선후기 여자복식의 풍속연구 (A Study of Women's Costume in the later Choson based on the Pansori Novel and Genre Paintings)

  • 김혜영
    • 자연과학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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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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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7-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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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조선후기는 근대 서민 문예의 부흥기로서, 서민문예의 대두와 더불어 일어난 서민계층의 등장은 복식에 있어서의 대중 복식 문화를 부각시키면서 복식의 유행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기 모든 계층의 여성 복식에서 공통적으로 풍미한 유행사조는 과장된 치마허리 그리고 둔부를 volume감 있게 강조한 치마등을 통해 여체를 드러낸 선정적인 silhouette이 나타났다. 유교 규범에 의해 억제되고 절제된 여성들의 복식행동(clothing behavior)에서 이처럼 육체를 긍정한다는 것은 사회의 일정한 진보단계에 위치한다고 보겠다. 그것은 Eroticism자체는 영원한 인간의 본능에 의존하겠지만, 이 Eroticism을 통하여 어떤 사회적 질곡을 벗어나려고 하는데에 있어서는 그 Eroticism의 발로가 사회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후기의 여성복식에서의 Erotic Mode는 여성들 자신의 것인 동시에 그 사회의 것이며, 그것은 가식적이고 표면적인 유교적 도덕관의 외피 속에 흐르고 있는 인간성의 폭로이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데에 서민문예의 진보성과 근대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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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회화심미(繪畵審美) 고찰 (A Study on the Painting's Aesthetic of Gongjae Yoon Duseo)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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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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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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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조선 후기 해남(海南) 출신의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숙종년간 활동한 선비화가로서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교체되는 전환기에 조선 후기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자로서 그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남인(南人)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당쟁에 휘말려 출세길을 접고 서화와 학문에 몰두하였다. 조선 후기가 시작되는 18C는 실학(實學)이 대두되고 민족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진경(眞景)시대가 열린 시기였다. 이러한 때 실학사상을 예술세계에 접목하여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이며 현실개혁적(現實改革的) 심미의식을 발휘하여 서민풍속화 개척, 서양화법의 적용, 사실주의적 기법 추구, 남종문인 화풍 도입 등을 도모하였다. 철저한 학고(學古)를 통해 변통(變通)을 도모했던 그의 회화관은 학(學)·식(識)의 학문과 공(工)·재(才) 기예적 요소를 두루 갖추어야 화도(畵道)를 이룰 수 있다는 형신(形神) 겸용을 강조하였다. 그는 다양한 화목을 두루 섭렵하였는데, 특히 인물화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사실주의 표현을 심미 특징으로 한다. 대표작인 「자화상(自畵像)」은 극사실적 묘사력과 구도의 혁신성이 탁월하며, 자신의 울분을 비장감있게 전신사조(傳神寫照)한 파격적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그의 산수화는 형사적 진경과 신사적 관념을 융합하여 형상으로써 도를 아름답게 구현한 망적지적(忘適之適)한 이형미도(以形媚道)를 이루었다. 한편 개방적 사고로써 다양한 서민 생활을 소재로 삼은 서민풍속화는 이형사진(以形寫眞)의 실득(實得)으로 파격을 도모하였는데, 이는 부패한 권력에 대한 소극적 항거이자 애민정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후 그의 화풍은 장남 윤덕희(尹德熙), 손자 윤용(尹愹)에게 가전되어 전해져 조선 후기 서화예술의 변화와 부흥을 선도하였다.

농촌(農村) 향토(鄕土)마을 경관(景觀)의 변화(變化) - 조선 말기부터 올림픽개최 전(1988)까지 - (A Study on the Change of Landscape in Korean Rural Village - From Chosun Dyansty to Olympic Games(1988) -)

  • 이시영;장민;심준영;허준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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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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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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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 농촌 경관의 양상을 일반 농촌서민들의 정주공간을 대상으로 살펴보아 1896년 개항 전후를 기준으로 해서 농촌 향토마을경관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토속 경관을 통해 서민들의 정주공간을 대상으로 서민 생활상의 반영체로서의 한국 토속 경관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했다. 본 연구는 한국화, 풍속화의 그림 자료와 문헌, 신문 및 텔레비전 영상자료를 사용하여 토속적 특징이 나타나는 장면을 주 분석대상으로 하여 그 내용을 해석하였다. 한국 내에서 지역별 특징적 토속 경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토속 경관의 지역 간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 농촌경관은 시대에 따라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농촌 경관이 형성되었으며, 과거 전통적인 농촌경관은 거의 전적으로 자연에 의존 지향적이며, 현대로 진행될수록 사람의 의지가 생활환경에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서민의 정주환경에서 나타나는 한국의 농촌 경관은 한국전통의 것에서 많이 변화되었지만, 어느 나라의 것과도 매우 다른 우리만의 고유경관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비화가 윤덕희(尹德熙)·윤용(尹愹) 부자(父子)의 변유적(變維的) 회화심미(繪畵審美) 고찰 (The Newly changed Painting's Aesthetic of Seonbi painter Yoon DeokHee and Yun Yong Father and Son)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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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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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9-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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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와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1685~1776), 그리고 청고(靑皐) 윤용(尹愹)(1708~1740)으로 전해져 온 해남윤씨 3대의 화맥과 학문사상은 해남에 본거지를 두었지만, 주로 한양을 무대로 예술혼을 펼쳤고 가법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선비출신 서화 가문으로 명망을 쌓았다. 공재(恭齋)의 장남으로 태어나 82세를 살았던 낙서(駱西)는 친부 및 남인(南人)계열 이서(李漵)에게서 다양한 학문과 서화를 익혔다. 조선 초·중기 화풍을 섭렵하고 남종화법을 수용하면서 서양식 음영법을 가미하여 대상의 사실성과 입체감을 추구했는데 미법산수(米法山水), 원말(元末) 사대가(四大家), 명대(明代) 오파(吳派), 동기창(董其昌), 청대(淸代) 안휘파(安徽派) 등 다양한 화법을 융복합하여 변유적 회화심미를 이루었다. 그는 특히 말 그림과 도석인물화에서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는데, 박학(博學) 실득적(實得的) 가풍에 비덕적(比德的)으로 구현한 독창적 진경미(眞景美)를 발현하였다. 낙서(駱西)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32세로 요절한 청고(靑皐)는 다양한 수지법(樹枝法)을 구사한 남종산수화에 능했는데, 물상의 정확한 사실묘사를 위해 세밀한 관찰과 깊은 탐구심, 그리고 화보 화제시의 새로운 시정(詩情)을 펼치면서 독창적 구성의 시의도(詩意圖)를 그렸다. 또한, 가전된 화풍을 변유적으로 재해석하여 진경(眞景)을 넘어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진정미(眞情美)를 발현하였다. 공재(恭齋)를 계승한 낙서(駱西)와 청고(靑皐) 부자의 서민풍속화는 조선 후기 새로운 장로로 자리잡게 되는 등 이들 부자의 변유적 회화심미와 화법은 녹우당 화풍을 이루어 조선 회화풍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한국회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쌍폭 책거리' 그림의 공간배치 연구 (A Study on the arranged space of 'Ssangpok Checkgeori' Pictures)

  • 이미영;김순구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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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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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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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조선시대 회화를 보면 산수화나 풍속화 등도 유행을 하였지만 서민층에서부터 사대부층까지 다양한 계층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민화이다. 민화는 허세와 가식이 없고 애써 기교를 부리지 않아 소박한 매력을 제일로 꼽고 있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솔직하고 회화적인 맛 또한 일지 않고 있다. 이러한 민화 가운데에서도 책거리 그림은 유교적 토대 위에 자연과 인간과 그 환경이 조화를 이룬 삼의 공간의 소우주를 표현하고, 인간의 삶을 예술의 중심에 놓은 근대지향성이 엿보인다. 본 연구에서는 책거리 그림 중에서도 '쌍폭 책거리' 그림을 대상으로 선정하여 그림에 대한 색깔, 사물들의 배치, 사물의 위치, 서로간의 상관관계, 사물의 방향, 다소점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쌍폭 책거리' 그림이 가지고 여는 특유한 공간감과 현대의 공간 배치구조와의 상관관계를 연구 한 결과 다소점, 원근의 무시, 역원근법, 평행투시법 등의 표현방법은 평면의 그림에 입체감을 표현하고, 배치되어있는 사물들에 생동감을 더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조선시대 '쌍폭 책거리' 그림의 구도배치가 현대적인 구도배치에 모티브로 적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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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 판소리 사설 <심청가>에 구현된 남경의 중의적 의미 (The Meaning of Namgyeong on Shimchungga of Shin, Jae-hyo)

  • 이문성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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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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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9-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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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글은 신재효 판소리 사설 <심청가>에 나타난 시간적, 공간적 배경의 중의적(重義的)인 의미를 밝힌다. <심청가>의 시간적 배경은 이야기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허구적 낭만적 시간이며, 동시에 조선후기 서민의 고단한 삶의 사실적 역사적 시간이다. 아울러, 공간적 배경은 중국의 옛 도읍지와 조선의 서울을 중첩 연상시키면서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특히, 공간적 배경인 남경은 가련한 백성의 딸인 심청이 '만백성의 어머니'가 되는 가상가공의 허구적 낭만적 공간이며, 조선의 '황성-경성-서울'을 연상시킨다. 바야흐로, 조선의 서울에서 만백성의 행복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판소리 향유층의 바람이 담긴다. 신재효 판소리 사설 <심청가>는 조선후기 사회상과 풍속을 바탕으로 하고, 중국의 시간과 공간을 차용하여 작품을 구체화한다. 이것은 중국을 배경으로 하면서 조선의 시간과 공간을 환기시키고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심청가>에서 공간적 배경인 남경은 조선후기 신재효를 비롯한 만백성의 자유로운 상상(想像)의 나래를 펴기에 중의적인 최적지라고 할 만하다.

고전 시문과 회화를 통해 본 연(Nelumbonucifera)의 활용과 애호 행태 (Utility and Care Patterns of Lotus Shown in Classic Poetries and Proses, Painting)

  • 김명희;홍형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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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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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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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의 목적은 옛사람들이 '연'이라는 식물소재를 활용한 방법과 그로부터 취하고자 했던 가치와 의미, 감상 태도 등에 대한 실제적 사례들을 고찰하는데 있다. 이를 위한 연구의 방법은 연에 대한 감상과 관념세계가 반영된 시문과 회화를 고찰하고 해석하는 기술(description)적 연구방법이 사용되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의 관상 가치는 대규모 집단식재와 부지규모의 소규모 식재, 분연(盆蓮)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특히 대규모 면적에 집단적으로 식재된 연은 여타의 초화류와 차별화되는 독특한 경관을 제공하였다. 별서와 후원 등 사적인 공간에 연지를 조성하고, 연을 애호한 여러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소는 연이 개화할 무렵에 아회의 장소 등으로 활용되었다. 작은 연지조차 조성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분지를 이용하여 연을 즐기기도 하였다. 또 꽃과 잎, 줄기와 연밥 등 세부요소 모두의 관상가치가 뛰어난 점은 연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둘째,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향원익청(香遠益淸)'으로 표현된 향기는 연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이다. 전통정원에 있어서 연은 향기를 제공하는 후각적 요소로 활용되었다. 옛사람들은 연의 향기를 단순히 즐기는 것에 더해 '군자의 품격'에 비유되는 상징물로 여겼으며, 이를 시문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셋째, 연은 청각적 요소로도 활용되었다. 즉, 수면과 넓은 연잎에 빗방울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를 '연당청우(蓮塘廳雨)' 또는 '하당야우(荷塘夜雨)'라 하여 운치 있는 소리로 즐겼다. 넷째, 연꽃을 구경하는 여름놀이를 '세속에 오염된 마음을 씻는다'라는 의미의 세심(洗心)놀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풍류는 일반 서민들로부터 왕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이 즐겼다. 이 밖에 연과 관련된 풍류로 큰 연잎과 속이 빈 줄기의 특징을 이용하여 술을 마시는 방법인 '벽통주(碧筒酒)' 혹은 '하심주(荷心酒)', 상비주(象鼻酒)가 있다. 또 유교의 영향으로 남녀유별이 엄격하던 조선시대에 연밥과 '채련곡'은 남녀 간의 연애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기호(記號)가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많은 '채련곡'이 전해지며, 남녀 간의 애정을 묘사한 여러 풍속화에는 연당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연은 고대 이래로 사상과 종교 등 문화적 배경을 초월해 폭 넓은 계층이 애호하여 왔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연이 갖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와 사찰 등 종교시설과 관련된 식재 사례를 다각적으로 고찰하지 못한 점은 본 연구의 한계이며 추후 연구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