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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사상과 『정감록』의 관계 - 증산이 변용한 한시 전거(典據)를 중심으로 - (The Relationship between Daesoon Thought and Prophecies of Jeong Gam: Emphasizing the Chinese Poetic Sources Transfigured by Jeungsan)

  • 박상규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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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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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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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칠팔년간고국성(七八年間古國城)으로 시작하는 증산의 비결시는 그 원형이 『정감록』에 수록된 것이라 주장되고 있다. 증산이 『정감록』에 대해 비판적이었음이 명확히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은 "증산이 『정감록』에 심취했고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라는 담론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정감록』과 사상적 지향점이 다른 비결서인 『서계가장결』에 수록되어 있던 한시를 『정감록』의 비결시로 오인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결국, 예시 84절의 한시는 더는 증산에 대한 『정감록』의 깊은 영향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증산이 『정감록』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예시 84절의 한시 외에도 세 가지 문헌을 그 근거로 한다. 첫째는 "천개어자 지벽어축인기어인[天開於子 地闢於丑 人起於寅]"의 어구로 소강절의 『황극경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어구는 조선에서는 숙어처럼 쓰이던 매우 일상적인 용어였다. 따라서 『정감록』과 대순사상이 이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정감록』과 증산을 관련짓는 것은 증산이 『정감록』에 심취하였다는 예단에서 비롯된 왜곡인 것이다. 둘째는 "모악산하(母岳山下)에 금불(金佛)이 능언(能言)하고"라는 어구이다. 이는 정감비결의 "모악산두 금불능언[母岳山頭 金佛能言]"의 어구와 거의 같다. 하지만 증산은 두(頭)를 정반대의 하(下)로 뒤집고 자신만의 종교적 예언을 덧붙인다. 비결을 전복하여 비결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것이다. 셋째는 "불지형체선지조화유지범절(佛之形體仙之造化儒之凡節)"이라는 대순사상의 특징과 관련된 어구이다. 『초창결(蕉蒼訣)』이라는 비결서에 유일하게 발견되어 대순사상에 대한 『정감록』의 영향을 입증하는 주요 근거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초창결』의 내용과 필사 시기 등을 통해 분석하면 『초창결』은 1950년대 이후 편집된 비결서이기에 이 어구도 대순사상에 대한 정감 비결의 영향을 입증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오히려 역으로 『초창결』이 대순사상의 편린을 흡수하여 새롭게 편집되었음을 시사하는 많은 증거가 발견된다. 결국, 증산과 대순사상에 대한 『정감록』의 일방적인 영향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따라서 증산의 『정감록』에 대해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모습은 잘못된 사실관계에 기반하여 구축된 허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에 의해 전개된 대순사상이 정감 비결의 풍수도참적 역성 혁명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가오별업(嘉梧別業)의 복원 설계를 위한 공간구성 및 정원 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pace Formation and Garden Characteristics of Garden Remains, Gao-Byeoleop for Restoration Design)

  • 노재현;김순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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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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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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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조선 말기 대표적 정치인이며 경세가, 그리고 다인이었던 귤산 이유원의 은거 유적인 남양주 천마산 기슭에 위치한 가오별업의 공간구성과 정원 특성을 고구함으로서 향유 별서원림 복원의 기초자료를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문헌고찰과 시문 분석 그리고 현장조사와 주민인터뷰를 결과를 종합해 얻은 가오별업의 정원 모습은 다음과 같다. 종남산을 상징하는 '귤산'이라 자호한 이유원은 왕유의 망천별업과 서계 박세당의 은거 및 별서 경영을 동경하고 이를 스스로 실현하기 위해 선영이 있는 양주 가오곡에 별업을 조성하였다. 천마산 아래 가오곡을 중심으로 조성한 가오별업은 크게 내원과 외원으로 구성되며 별업공간의 영역은 '가오복지' 바위글씨 표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오별업의 내원은 사시향관, 오백간정, 임하려, 퇴사담 등의 건물과 행랑채 주변의 채원과 후원의 과원을 주요 정원구성요소로 하였으며 내원으로부터 약 850m 떨어진 상부에 조성된 영귀정은 별업 속에 또 다른 별서로서의 이중적 공간구성을 보인다. 가오별업의 내원은 장서각이자 고동서화의 보관소로서 사랑채 역할을 한 사시향관과 익랑 형태로 연결된 작은 사랑채 오백간정이 있었으며 주변에는 유상곡수거가 시설되었다. 또한 서재이자 벽려원(??園)이라 편액한 임하려는 별업 가장 높은 곳에 입지한 서옥이자다실이었다. 방지원도형의 연당 퇴사담에 도입된 태호석 이외에도 가오별업에는 여러 기의 태호석이 도입되었으며 내원에는 다양하고 희귀한 정원 식물들이 식재되었는데 이는 이 시기 원예취미 사조 및 이유원의 재력과 고동서화 수집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편 별업에서 만회암으로 이르는 가오천계곡에 세운 영귀정 일원은 이유원 시기 이후 옥산 또는 우암이란 호를 가졌던 또 다른 인사가 향유했던 명소 '우암폭'이었던 곳으로 보인다. 이유원은 우암폭을 제삼폭으로 규정하고 '귤산'이라 새김으로서 이곳이 자신의 별업 영역임을 알렸으며 이곳에 영귀정을 세우고 주변에는 다수의 복사나무를 심어 도화경을 재현하였다. 영귀정 상부에는 만회정에 이르는 교량 앞에 새겨진 벽파동천 바위글씨는 가오복지 속에 형성된 또 다른 선계로 가름된다. 이유원은 그가 중창에 큰 역할을 한 사찰 만회암 후면 계곡의 거대한 바위에는 제일산이라 바위글씨를 새겨 이곳이 가오별업 외원의 종국임을 알렸다.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현장연구에 의해 가오곡 일대의 별업 흔적을 추정한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현장 유적에 의해 추정된 결과이다. 제일산과 제삼폭 사이의 제2의 경물이나 바위글씨를 확인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시굴조사 등을 통해 가오별업의 정확한 배치특성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가오별업 복원을 위한 남양주시의 관심과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