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사찰(寺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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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인 문화재 화재안전 확보 방안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efficient cultural asset fire safety security plan)

  • 김유식;육창일
    • 한국화재소방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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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화재소방학회 2010년도 추계학술발표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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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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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전국 주요 목조 문화재 및 사찰 등을 직접 방문하여 확인 및 설문 등으로 연구하였으며, 문화재 화재에 있어서 소방법적인 초소한의 조건으로 화재에 대한 문제해결 방안의 모두가 될 수 없으므로 보다 적극적인 관리측면에서 지역 및 환경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일반적인 소방시설 소화기 및 옥 내외소화전을 설치하였거나 설치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소방법에 따른 매우 일반적인 화재에 대한 대비이다. 따라서 화지진압 시 수손피해 등 2차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방안과 문화재 및 사찰의 화재안전에 대한 영구적인 예방과 대응방안으로 미분무 소화시스템 설치를 제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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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마선검출법에 의한 사용후CANDU핵연료 수중검증장치 개발

  • 이영길;나원우
    • 한국원자력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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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원자력학회 1997년도 춘계학술발표회논문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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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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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가압중수로(PHWR)형 원자력발전소의 저장수조에 보관중인 사용후핵연료를 대상으로 하는 핵물질 보장조치(safeguards) 이행에 필요한 핵연료다발 수중검증장치를 개발하였다. 본 장치는 CdTe 감마선검출기, 차폐체 및 시준기등으로 구성된 검출부와 이를 지지 및 구동하기 위한 구동부로 구성되어 있다. 검출부에 대하여 감마선 표준선원 및 사용후핵연료 시료를 사용하여 성능시험을 수행한 결과 현장검증시의 요건을 만족하였고, 구동부의 경우 건식조(dry pit)에서 수행한 예비실험 결과 검증목적에 적합하였다. 따라서, PHWR형 원자력발전소인 월성 1 호기의 수중저장조에 있는 사용후CANDU핵연료에 대한 현장성능시험을 현재 준비중에 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국가사찰시에 본 장치를 사용할 예정이며, 향후 IAEA의 공인을 획득하여 IAEA 사찰용 장비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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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 창건과 철불 조성 연구 (The Establishment of Seongjusa Temple and the Production of Iron Buddhas)

  • 강건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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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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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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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충청남도 보령에 위치한 성주사(聖住寺)는 낭혜화상(朗慧和尙) 무염(無染, 800~888)이 창건한 사찰이다. 무염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잠시 수도 경주에 머물다 김인문(金仁問, 629~694)의 후손들이 관리하던 사찰에 주석하였다. 이곳에서 무염은 불타고 남은 사찰을 중수하여, 847년에 선종사찰 성주사로 개창하였다. 이후 성주사는 사세가 번창하였고, 사역 내 여러 전각이 들어서며 대규모 가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역 내 성주사의 영향력은 「숭암산성주사사적(崇巖山聖住寺事蹟)」에서 살펴볼 수 있다. 「숭암산성주사사적」을 보면 성주사에 건립된 불전은 모두 73간으로 전한다. 이 중에서 주목되는 기록은 '전단림구간(栴檀林九間)'이다. 전단림구간은 '전단으로 지어진 건물이 9간' 혹은 '전단을 보관한 곳이 9간'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성주사에 전단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전단은 유향목재(有香木材)로 동남아시아 자바나 수마트라에서 생산되었다. 장보고 사후, 서남해안일대를 장악한 군소 해상세력이 동남아시아 전단을 대량으로 입수하여 성주사에 시주한 것으로 보인다. 문성왕대 김양(金陽, 808~857)은 무열왕계인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 내 명망이 높았던 무염의 성주사를 후원하여 왕실과 성주산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원성왕계 왕실에서는 성주사를 지방 거점사찰로 삼아 반왕실적인 기운이 남아있는 지역에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무염은 사찰을 수호하고, 민심을 교화하고, 나아가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철불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사 문도가 2,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사세가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성주산문의 중심사찰인 성주사에 봉안된 철불은 지역의 민심을 결집하는 하나의 존상(尊像)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성주사 철불은 모두 2구로 확인되며, 현재 전하는 철불편과 대좌의 크기로 볼 때 각각 금당과 삼천불전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금당에 봉안된 철불1은 2m가 넘는 대형 철불이고, 삼천불전에 봉안된 철불2는 1m가 넘는 중형 철불로 판단된다. 「숭암산성주사사적」을 보면 '개창선법당오층중각(改創選法堂五層重閣)'이라는 기록이 전하는데, 이를 통해 성주사 개창시 철불1과 같은 대형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 중층식 금당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철불1은 「성주사비(聖住寺碑)」와 손가락편의 모양을 통해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결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성주산문은 동시기의 실상사(實相寺), 보림사(寶林寺), 삼화사(三和寺)와 같이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주존불로 조성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무염이 초년에 화엄을 수학하였고 귀국 후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신라하대 왕실을 중심으로 한 화엄종의 복고적인 경향이 선종사찰 성주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사찰의 원형과 변형

  • 김성진;정명화;이경복;장용순;홍광표
    • 한국조경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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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조경학회 2009년도 춘계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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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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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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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문화로서의 전통음식의 재탄생 (The Reinvention of Traditional Cuisine as Counterculture)

  • 김지희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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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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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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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통음식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재창조되고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한다. 이 글은 사찰음식과 안동음식이 재탄생한 과정 등의 사례 분석을 통해 오늘날 전통음식이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탈맥락화의 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고대 중국 사회에서 채식문화가 불교문화의 일부로 인정받기 시작한 과정을 되짚으며 불교의 채식문화가 여러 환경요인에 의해 발명된 문화라는 점을 밝히려 한다. 고대 중국사회에서 채식문화가 불교사상을 전파하기 좋은 도구로 자리 잡았다면 오늘날 사찰음식은 불교사상의 전파보다는 상품화와 소비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 논문은 현대 한국사회에서 전통음식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와 같은 현상이 현대 한국사회의 소비자들의 심리와 요구를 어떻게 반영하는가를 살펴본다.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전통음식 문화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대항문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