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무인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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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ommerce System 설계 및 구현 (Design and Development of U-Commerce)

  • 김재필;김영철;이동철
    • 한국정보통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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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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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67-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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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RFID와 Kiosk는 유비쿼터스 사회 기반 조성을 위한 필수적인 기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본 연구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유통매장의 효율적 관리와 고객 만족도 극대화를 위해 차별화되고 다양한 서비스와 마케팅을 수행할 수 있는 U-Commerce 시스템을 설계, 구현하였다. 상품에 부착된 RFID 태그를 Kiosk에 탑재된 RFID 리더에 인식시켜 상품의 상세 정보 및 관련된 멀티미디어 광고 콘텐츠를 제공하고, 바로 구매까지 가능토록 한다. 실시간으로 재고 물품의 수량 및 출고현황을 모니터링 및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하였다. 제안된 U-Commerce를 위해 설계한 U-Shop Kiosk 시스템은 점원과의 흥정, 결재 단계를 생략 수 있고, 단순한 무인점포의 유비쿼터스형 Kiosk가 아닌 유비쿼터스 환경하의 고객 데이터를 수집, 저장, 활용하고 다시 고객에게 피드백 함으로써 유비쿼터스형 CRM의 확장 모델로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청주 무심천과 남석교에 관한 역사지리적 고찰 (Historical Geography of Mu-Sim River and Nam-Suk Bridge in Chongju City)

  • 예경희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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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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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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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통일신라시대의 서원경성의 위치는 청주읍성 지역이 되고 있다. 청주의 매장 문화재인 남석교는 신라 진흥왕 19년 무인년(588년)에 수선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남석교의 원조는 그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고 그 후에 수차에 걸쳐 개축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청주읍성의 남북 주축도로는 남문을 통과하고 있고 남문 밖의 시장의 발달로 인하여 남문 밖의 무심천에 위치한 남석교의 역할은 지대할 수밖에 없다. 남석교에서 유래된 대교천의 명칭은 조선 철종 12년(1861년)까지는 대교천으로 불렸고 고종 8년(1871년)에는 무성천으로도 불렸으며 광무 2년(1902년) 이후에는 무심천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짐작된다. 청주는 풍수지리와 무심천의 지명유래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기도 하였지만 점차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화되고 있다. "남석교 사적비"는 1907년까지는 존재하였지만 "표석"과 더불어 유실되었고 "남석교"는 $1931{\sim}1932$년 간의 석교동 제방공사 때문에 매몰되었으며 이러한 문화재들은 가치가 매우 크므로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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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현실 기반의 교육 목적 콘텐츠에 대한 연구 - VR 키오스크 시뮬레이션 (A Study on Educational Content Based on Virtual Reality)

  • 이준섭;임병일;한지영;이택희
    •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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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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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9-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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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최근 무인 단말기(키오스크)는 기존의 인력을 대체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주문이나 결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어 그 활용 범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결과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키오스크 설치 비율이 급증하여 모든 연령층이 손쉽게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게임엔진의 기능과 Hand Tracking 기술을 기반으로 가상의 세계에서 키오스크 교육이 진행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였다. 키오스크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가 가상 현실에서 대기 손님으로 인한 시각적, 청각적 스트레스를 미리 체험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 자신감 있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 VR 콘텐츠를 개발하였다. 하나는 단순 키오스크 체험 콘텐츠이고, 다른 하나는 시각적, 청각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특화 콘텐츠이다. 실험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한 그룹은 일반 VR 콘텐츠를, 다른 그룹은 특화 VR 콘텐츠를 체험하였다. 체험 후, 두 그룹 모두 실제 매장에서 주문을 진행하였고, 설문조사 결과 실험군의 85%, 대조군의 95%가 교육에 만족한다고 응답하였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의 특화된 체험이 키오스크 교육에 효과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남지역(湖南地域)의 왜계자료(倭系資料)와 전방후원형고분(前方後圓形古墳) (The Relics of Wae Lineage and the Keyhole-Shaped Mounds in the Honam Area)

  • 土田純子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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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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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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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호남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한일 고고 고대사학 연구자 사이에서 항상 큰 관심을 받았던 지역이다. 근래 이 지역에서 왜계 고고자료 발견 사례가 양적 질적으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선행 연구와 견해를 재검토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기존에 13기로 알려졌지만 최근 발견 사례가 17기까지 증가했다. 한 곳에서 3기가 조영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으며, 또 일본의 고분시대(古墳時代)를 특징짓는 형상식윤(形象埴輪)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호남지역 출토 왜계 고고자료에 대한 선행연구는 특정 자료나 특정 유적 유구에 한정된 사례가 많았다. 본고에서는 호남의 모든 왜계 고고자료를 대상으로 수량 고고자료의 종류 출토 위치를 파악한 후 그 변천을 추적하였다. 시기별 특징이나 변화상 등을 바탕으로 왜와 마한세력의 관계 의도 동향을 문헌 자료 등과 관련시켜 검토하였다. 호남지역 출토 왜계 고고자료는 5세기 전엽부터 증가 및 광범위한 분포를 보여주며 7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4세기 말~5세기 전엽에는 왜계 무구와 왜계 매장주체부, 5세기 중엽~후엽에는 수혜기(須惠器)(계(系)), 5세기 말~6세기 전엽에는 전방후원형 고분과 왜계 횡혈식석실, 6세기 중엽~7세기 초에는 왜계 무구 석침이 중심을 이루어 시기마다 양상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4세기 말~5세기 전엽의 왜계 고고자료에 대해서는 이 시기에 집중된 백제와 왜의 왕래 기사를 근거로 외교 사절단을 수행했을 무인계층과의 관련성을 상정했다. 5세기 중엽~후엽에는 수혜기(須惠器)(계(系)) 토기가 호남 내륙부로 확산되었다. 물자의 집적에 유리한 지점에서 주로 출토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전방후원형 고분의 피장자를 북구주(北九州) 제세력에 속한 왜인을 중심으로 한 교역자 집단으로 해석했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대체로 기본적으로 기존 수장묘가 조영되지 않던 지역에서 특별한 세력 기반 없이 돌연 출현했다. 그러나 재지인의 협조 없이 전방후원형 고분을 축조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일본 현지와 호남지역 전방후원형 고분의 구축 기술 차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한편 일부 전방후원형 고분은 재지 수장묘와 동시기 아니면 직후에 조영되었다는 점에서 재지 집단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5세기 초 금관가야가 몰락하자 왜 제국(諸國)은 새로운 교섭 상대로 호남지역을 선택하였다. 그 배경에는 왜에서 구하기 어려운 (지하)자원이나 물자를 확보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약 200년에 걸쳐서 사용되고 매장된 호남지역의 왜계 고고자료는 왜인의 다양한 교섭 노력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