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목판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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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기술사의 여섯가지 쟁점

  • 박성래
    • 출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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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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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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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목판 다라니경이 당나라 측천무후가 새로 만든 한자를 사용하고 있음을 들어 그것이 신라의 인쇄물이 아니라 당의 것으로 보아야 옳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신라에서 '측천무후의 역법 개혁'을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은 측천무후의 한자사용이 곧 당나라의 것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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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나주(羅州)의 인쇄문화에 관한 연구 (A Study on Printing of Naju in the Chosun dynasty)

  • 안현주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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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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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7-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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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연구는 현재의 전라남도 지역의 인쇄문화를 파악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되었다.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서적을 간행했던 나주에서는 조선시대에 89종이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중종조 이후부터 서적간행이 활발해졌고 특히 16세기와 19세기에 간행활동이 두드러졌다. 조선전기에는 유가류, 후기에는 별집류와 계보류의 서적이 많이 간행되었다. 조선전기의 간행의 주제는 왕명에 의한 경우와 관찰사나 목사 등 지방관의 의지, 개인 등이었는데 후기로 갈수록 개인이나 문중이 문집과 족보를 발간하는 경향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전기에는 대부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으나 후기에는 목활자의 사용이 점점 대중화되었다.

심청전 목판 체 연구 (a study of typeface)

  • 안상수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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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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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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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심청전 목판 체>는 질박·고졸하며 간결하고 강한 맛을 내는 멋스러운 글자꼴이다. 특히 이 글자꼴은 조선후기 사대부 취향의 도서로서 만족할 수 없었던, 서민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판매를 목적으로 발행된 방각본 소설에 사용되었다. 이 글자꼴은 한글 창제 초기의 기하학적이고 원리적인 한글 꼴이 붓이라는 필기도구의 영향을 거쳐 목판의 칼 새김 맛과 목판 인쇄 특성에 따라 서민적인‘허튼 꼴’로 정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심청전 목판 체>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납작한 형태로, 가로줄기·보가 가늘고 세로줄기·기둥이 두텁다. 그 자소 단위의 쪽 자는 최대한도 허용된 자리를 차지하고 살리면서도 공간 이용에 짜임새가 있고, 단순하면서도 변화를 추구하는 형태적 특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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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과학인물 - 대동여지도 만든 신비 속 인물 '김정호'

  • 박성래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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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통권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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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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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1861년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어디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신비 속의 인물이다. 지금의 마포 근처에서 살았다는 김정호는 22첩으로 된 가로 3m, 세로 7m의 대동여지도를 목판으로 인쇄하여 펴낸 과학인물이다. 대동여지도는 지금의 16만분의 1지도와 비슷한 것으로 산, 하천, 고을, 길 등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평생을 지도제작에 바친 그의 뛰어난 과학정신이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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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분석을 통한 매우 유사한 증도가(證道歌) 이본(異本)에 대한 비교연구 - 보물 제758-1호와 보물 제758-2호의 근본적인 차이점 - (Comparative Study on Very Similar Jeungdoga Scripts through Image Analysis -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reasure No. 758-1 and Treasure No. 758-2 -)

  • 유우식;김정곤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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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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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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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삼성본(三省本: 보물 제 758-1호)과 공인본(空印本: 보물 제758-2호)의 사진 이미지를 비교 분석하여 두 판본 간의 차이점을 조사하였다. 공인본의 보물지정 당시인 2012년의 보고서에 따르면 두 개의 판본은 모두 같은 판에서 인출된 것이며 공인본이 삼성본보다 후쇄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두 개의 판본은 구성, 광곽의 형태, 글자체에 이르기까지 매우 유사하여 육안에 의한 확인만으로는 그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아 전문가들의 주관적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미지 분석을 통하여 각각의 판본상에 나타난 인쇄특징을 바탕으로 인출시기의 전후관계 및 동일한 판에서 인쇄된 것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판에서 인쇄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였다. 면밀한 이미지 비교와 분석의 결과, 삼성본과 공인본은 서로 다른 판에서 인출된 것이며 인출시기도 공인본이 삼성본에 비해서 후쇄본이라는 보고서의 내용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또한 삼성본에서 볼 수 있는 목판인쇄의 특징과는 사뭇 다른 특징들이 관찰되어 공인본의 인출에 사용된 인쇄기술 및 인출시기에 관한 추가조사 및 후속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청대 시각적 교육매체로서의 연화 (New Year Picture, a Visual Educational Medium in the Qing Dynasty)

  • 이은상
    • 중국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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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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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7-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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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New year pictures prevailed from 1660s to 1860. Especially, the reign period of Emperor Qianlong(r. 1736-1795) was the period of prosperity. The period of 1660s when new year pictures were started to be popular was the reign period of Emperor Kangxi(r. 1662-1722) was just started and corresponded to Emperor Kangxi's promulgation of "Sacred Edict." Chinese operas such as Peking opera were very popular among common people in the period from 1660s to 1860 when new year pictures prevailed. Qing emperors as foreign ruler chose the way of ruling their people by means of cultural influence in stead of military power. However their culture effort was not efficient toward the majority of illiterate people. New year pictures offered every information about the world through visual icons to the illiterate people at that time who perceived the world by means of seeing. They met the world through visual information offered by new year pictures. New year pictures were the stronger visual medium to spread and educate "Sacred Edict" to illiterate subjects than any other guide books published by elite officers.

조선시대 이전의 식생 간섭사 (Vegetation Disturbance of Korea during the Pre-Chosun Dynasty Period)

  • 공우석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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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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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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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자연식생 간섭사를 시공간적 관점에서 복원하였다. 자연식생 간섭은 신석기시대에 본격화되었으며, 간섭은 초기에 저지와 해안에서 이루어졌으나, 후기에는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밭의 개간이 활발해지고, 특정 수종에 대한 선택적 이용에 따른 간섭이 있었다. 철기시대에는 밭농사를 위한 개간이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져 자연식생의 파괴가 계속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별채, 목재 가공, 철제 농기구 사용, 가축에 의한 땅 갈기 등이 도입되면서 경작지 확대를 위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계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개간이 장려되면서 다락밭이 조성되고, 땔감, 조선, 광업, 목판 인쇄, 개간 등으로 자연식생의 간섭이 심각해졌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주된 요인은 농경 및 벌채와 관련된 인간의 활동이었고, 그 외 일상생활과 산업에서도 산림 식생의 간섭은 발생했다. 신석기시대 전기의 괭이농사, 후기의 보습농사, 청동기시대의 가축에 의한 보습농사, 철기시대의 농기구를 이용한 농사와 삼림 벌채 등으로 농경에 의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논농사와 밭농사, 신라의 밭농사, 통일신라 때 밭의 확대 개간, 고려 때 개간 장려에 따라 다락밭이 확산되면서 전국에서 산림 훼손 피해가 심하였다 벌채는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본격화되어 후기에는 섬이나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밭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벌채는 계속되었고,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는 목공구가 발달하면서 자연식생의 제거가 쉬워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앞선 목재 가공 기술, 신라와 가야의 광물 생산, 목재 가공, 개간에 따라 식생 파괴가 심했다. 고려 때에는 연료와 개간으로 나무가 벌채되었고, 대신 산에 소나무 등을 심으면서 마을 주변에서 소나무 숲 경관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기타 활동으로는 구석기 전기의 석기와 불, 신석기시대의 정착생활과 관련된 활동, 청동기시대의 제련, 철기시대 철제 생활용구 제작, 고조선의 온돌난방, 삼국시대의 아궁이·굴뚝을 갖춘 온돌방, 신라의 많은 숯 사용, 고려의 선박 건조, 전란, 목판 인쇄, 연료, 경제작물 재배, 전면적인 온돌난방 보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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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한글 문서의 전자문서화와 정보공유 방법 제안 (Digitization of Old Korean Texts with Obsolete Korean Characters and Suggestion for Improvement of Information Sharing)

  • 김하영;유우식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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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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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5-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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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옛한글로 저술된 자료는 활자 인쇄본, 목판 인쇄본, 필사본, 고소설, 서간 등 방대한 자료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을 비롯하여 많은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옛한글을 전산정보화하기 위해서는 수작업에 의한 '입력'과정이 필요하다. 옛한글 문서의 전자문서화 작업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으나 옛한글을 전공한 연구자 개인의 노력으로 옛한글을 읽고 입력하여 전자자료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자의 숙련도가 개인적인 작업능력의 향상에 머무르고 기술의 축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현재까지 극히 일부분의 옛한글 문서만이 소개되고 대부분의 자료는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상태이다. 어렵게 전자문서화된 옛한글 고문서도 전자기기 간의 호환성 문제로 정보 공유 및 표시에도 어려움이 있다. 옛한글 문서의 전자문서화의 작업효율을 높이고 전자문서화 기술의 축적을 위해서는 옛한글의 입력, 표시, 저장 방법의 개선을 비롯하여 옛한글 문서의 이미지 분석을 통한 광학적 문자인식(OCR)의 개발이 필요하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陁羅尼經)』의 간행(刊行)에 대하여 (Publication of the Mukujeonggwang Dae Darani Gyeong)

  • 박상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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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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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6-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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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이 논문은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본의 간행연도에 관한 연구이다. 이 다라니경은 한국에서 간행된 현존 세계 최고의 인쇄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에 중국의 한 학자는 이 다라니경이 701년에 한역(漢譯)되고 702년에 중국 뤄양(낙양(洛陽))에서 인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제학술심포지엄 등이 열리는 등 최근 몇년 동안 다리니경에 대한 연구 논문이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학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논문도 많았다. 이 논문에서는 이 다라니경이 704년에 한역(漢譯)되었기 때문에 한역과 간행 연도에 대해 국내 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중국학자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규명하였다. 아울러 경전의 내용과 사리구(舍利具)의 명문에서 이 다리니경은 통일신라시대 탑을 만드는데 기본경전으로서의 기능을 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그러므로 석가탑 역시 이 다리니경의 조탑(造塔) 사상(思想)에 의해 조성되었고 이 다라니경은 석가탑 건립(751년)이 계기가 되어 간행된 목판본이다.

고려 초조대장경 조조의 가치와 의미에 관한 연구 (A Research on the Significance of the First Edition of Tripitaka Koreana)

  • 김성수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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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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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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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논문은 고려 초조대장경 조조의 가치와 의미를 도출하기 위하여 시도된 연구이다. 연구의 방법은 1) 초조대장경의 조조(雕造)는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즉 '진병대장경(鎭兵大藏經): 거란과의 전쟁을 진압한 대장경'이라는 측면에서의 구체적인 증거와 발원지(發源地) 및 발원일(發願日)을 규명함으로써 그 가치와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부여하고자 하였다. 2) 형태서지학적인 측면에서의 초조대장경 판본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초조대장경의 목판 판각에 있어서 중국 개보칙판대장경의 인쇄본을 단순하게 복각(復刻)한 것이 아닌, 이른바 독창적이고 탁월한 예술성(藝術性)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형태서지학적인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 체계서지학적인 측면에서의 초조대장경의 편성 내용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초조대장경의 편성에는 중국 역대의 모든 불전목록을 빠짐없이 편입한 것으로 보아, 문종시대 이후의 초조대장경의 편성에는 개개 불전 또한 목록학적(目錄學的)인 철저한 검증을 거쳐서 대장경에 편입시켰을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포괄성(包括性)과 누적성(累積性)을 지닌 체계서지학적인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파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