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동래부(東萊府) 객사(客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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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동래부 객사 일곽의 소멸 과정 (The Disappearance Process of Dongnaebu Gaeksa Block under the Rule of Japanese)

  • 송혜영;서치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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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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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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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he aim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conversion of Dongnaebu Gaeksa block to public market during Japan's Colonial Period. The block of Gaeksa was converted into the elementary school for the first time and afterwards occupied by the public market. Dongnae Traditional Market(五日場) had kept up since late 18th century. Dongnae public market was transferred to the site of Dongnaebu Gaeksa in 1937. Especially Dongnae public market(東萊公設市場) in the construction cost of establishment was supplied on loan. A number of traditional markets were reformed into the public markets in the 1930s. and the public market was installed more by the organization of colonial period. Dongnae public market was one of those markets, too. Eventually the establishment of public market meant that the block of Gaeksa had disappeared completely.

일제의 필지 분할에 의한 동래부 객사 공간의 해체 과정 (The Process of Dissolution on the Lots-Subdivision at Gaeksa of Dongnae-bu by Japanese Imperialism)

  • 송혜영;서치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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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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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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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process of lots-subdivision within the block of Gaeksa at Dongnae-bu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Gaeksa of the old government office was the sanctuary that symbolized the sovereignty. Therefore it was naturally a main object of demolition and then the site was converted to other purpose. And Gaeksa was not only converted into the elementary school and the public market but the historic site also processed to break down for opening the road through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The main reasons of lots-subdivision were the transfer from state property to private ownership and the urban development project. Needless to say, the particular major reason was derived from the intention of Japanese Imperialism to destroy the traditional urban. As a result, Gaeksa can not be recognized the traces of today and contributes to the demolition of the remaining ancient building. Finally the deformed urban structure was left over from destroyed building.

조선-일제강점기 동래읍성 경관변화 연구 (A Study on the Historical Landscape of Dongrae Ciy-wall in Busan)

  • 김기혁;김성희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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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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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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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본 연구는 동래 읍성의 입지, 성곽 형태 및 도로망. 관아 및 가옥분포 토지이용 등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경관 복원을 시도한 후.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변화를 파악하여 이를 사회ㆍ문화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가야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던 현재의 장소에 고려말 읍성이 이전 입지한 것은 해안방어 요충지와의 접근성을 최대로 하기 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읍성이 위치한 장소는 동래부의 중심 공간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은 입지 특성은 4대문 위치 및 성안의 도로망 분포 등에 영향을 주었다. 관아시설의 배치는 중앙 권력의 상징. 읍성 군사 방어 기능과 관련되어 배치되었다. 객사 입지는 중심공간에 지형을 이용하여 권력 질서의 위계를 반영하였으며. 좌측에 동헌. 우측에 향청 및 군사 기능이 배치되었다. 읍성내 취락은 남문을 중심으로 분포하였고. 산록부는 농경지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중 1920년대 시행된 시구개정사업으로 성벽이 철거되었고, 성안에 격자상의 도로망이 신설되었다. 평지에 있던 성벽 자리는 도로용지나 주택지로 이용되었다. 객사와 동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성안의 공간구조가 변화되었고. 관아건물은 공공기관으로 사용되거나, 민간인에게 불하되어 다른 용도로 이용되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읍성이 위치하였던 장소의 상징적 의미는 쇠퇴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읍성은 부산시민에게 역사적인 중심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일부 경관을 중심으로 복원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읍성이 단순히 건축물이 아닌 당시대의 사회문화가 투영된 경관이며, 각지방에 소재한 읍성은 새로운 시각으로서 재조명되어야 할 것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