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도학자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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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구곡가>의 창작 배경 및 구성 방식 (Background of creation and composing method in )

  • 장정수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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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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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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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본고의 목적은 <황강구곡가>의 창작 배경과 구성 방식, 내용상의 특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황강구곡가>는 권상하의 유풍이 쇠미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구곡가의 전승을 통해 기호학파의 도맥을 재확인하고 백부인 권상하를 추숭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옥소 권섭이 창작한 작품이다. 따라서 이작품은 각 승경처를 권상하의 삶의 궤적과 연관지어 서술하는 회고의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에는 권상하의 도학자적 삶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권상하가 은거했던 황강 구곡은 선경(仙境)으로, 그의 삶은 신선적 풍류로 그려냄으로써 간접적으로 입증하였다. 이러한 구성 방식과 자연에 대한 인식 태도를 통해 볼 때 <황강구곡가>는 권상하를 위해 창작된 작품이지만 권섭의 의식 세계를 표출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 세계와 연장선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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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旅軒) 시(詩)에 있어서 '경(敬)'의 이념과 형상화 방식 (A study for 'Kyung(敬)' ideology and figures of Yeheon(旅軒)'s poem)

  • 박종우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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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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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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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논문은 여헌(旅獻) 장현광(張顯光)의 시에 있어서 '경(敬)'의 이념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가에 대한 시론적(試論的) 고찰이다. 우선 예비적 고찰로서 경(敬) 개념의 사적 추이와 범주를 정리하면서 여헌이 생각한 '경(敬)' 이념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여헌이 정이(程?)에서 주희(朱熹)까지 이어지는 도학사적(道學史的) 맥락에서 실천 이념으로서 경(敬)을 강조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경(敬) 이념의 시적 형상화를 '청정(淸淨)의 추구'와 '기상(氣像)의 강조'로 나누어 해명하고자 하였다. 잔잔하고 맑은 냇물과 같은 깨끗한 덕성(德性)을 가진 사물은 여헌 시에 있어서 중요한 제재이다. 여기서 냇물의 '고요함'과 '청정함'의 이미지는 '경(敬)' 이념의 시적 형상화와 깊이 연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깊은 산 속과 같은 속세와 분리된 무구(無垢)의 세계에 대한 희구(希求)도 그와 같은 삶의 태도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헌 시의 특징적 일 국면을 이루고 있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혼탁한 속세를 거부하고 청정한 세계의 추구하려는 시적 화자와 더불어 고고(孤高)한 기상(氣像)의 강조도 여헌 시에 자주 보이는 특징임을 확인하였다. 대, 소나무, 학(鶴), 산 등 '고고(孤高)'의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제재들이 여헌 시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 고고(孤高)한 기상(氣像)의 강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주제의 시에 나타나는 고양된 시적(詩的) 흥취(興趣)와 그에서부터 비롯된 비약적 상상력 등은 여헌의 시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단서임을 밝혔다. 이제 본격적인 연구와 함께 여헌의 시세계를 회재(晦齋)나 퇴계(退溪) 등 여타 도학파 문인들의 시세계와 비교하고 변별점을 고구(考究)하는 것이 남은 과제이다. 비슷한 시기의 도학자라고 하더라도 시대적 여건과 삶이 궤적이 상이했던 점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란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이주를 거듭했던 여헌의 경우 16세기에 출사(出仕)한 사림(士林)이나 재지적(在地的) 기반(基盤)이 확고했던 사족(士族)들과는 문학적 사유나 형상화 방식에는 분명히 편차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의 한시(漢詩) 연구(硏究) (Study on Chinese poems written by Gusadang Kim, Nak-Haeng)

  • 정시열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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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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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7-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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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은 18세기 영남의 유학자로서 136제(題)의 한시(漢詩)를 남겼다. 본고에서는 구사당의 한시에 나타난 그의 내면세계를 살펴보았다. 그의 생애는 부친인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의 유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신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무려 10년간 부친에게 혼신의 힘을 쏟았다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그에게는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분명한 중심추가 있었다. 어떠한 외풍과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지닌, 외유내강의 인물이 구사당이었다. 구사당은 부친을 모시는 데 자신의 30대 시절을 바쳤기 때문에 입신양명하지는 못했다. 그가 학문적으로 대성할 자질이 있다는 사문(師門)의 칭송이 있었지만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과 정신적 여력은 부족했다. 도학자적 삶을 견지했던 구사당은 시문(詩文)에 큰 힘을 쏟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인생에서 인상적인 대목에 대해서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이들 시를 통해 그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는가를 중심으로 그의 내면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확인했다. 첫째는 부친과 관련된 시에 자의식 과잉에 기인한 우울감이 짙게 배여 있다는 점이며, 둘째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의지가 굳건했기에 인생에 대한 구도자적 균형감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는,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기에 그의 시선에 격절감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조광조 도학의 이념적 순정성과 감성의 문제 (Cho Gwang-jo's Pure Conscience and Grief)

  • 이상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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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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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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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조선조 사림의 영수이자 한국 도학의 태산북두로 평가되는 조광조는 지치주의라는 순수이념으로 절대적인 도덕정치를 펼치고자 하였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저한 이성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시 현실 정치에 임하여서는 군신간에 부자(父子)의 예로써 소통하여야 함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격의를 해체함으로써 객관적, 이성적 존재보다는 주관적, 정서적 존재로서 친밀한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또 스스로 애군(愛君), 우국(憂國)을 애부(愛父), 우가(憂家)의 감정으로써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 주었다. 이러한 점은 그가 지향한 지치적 순수정치는 인간의 감성이 통하는 세상임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기묘사화라는 정치적 폭거를 계기로 깊은 인간적 고뇌와 슬픔을 절감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견디지 못하는 아픔을 자연스런 감정 표현으로 숨기지 않았는데, 특히 능주에서 유배 이후의 생활과 종명 과정에서는 매우 인간적인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단지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희망으로 승화되어 후세 사람들의 마음에 길이 살아 있게 되었다. 인간의 성정(性情) 문제에서 도학 [성리학]은 정보다는 성을 강조하지만, 이성보다는 감정이나 정서를 중심으로 도학자의 삶을 살피는 것은 한 인간의 실존적 내면을 살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별업 하거원(何去園) 원림에 투영된 조영사상 연구 (A Study on the Landscape Philosophy of Hageohwon Garden)

  • 신상섭;김현욱;강현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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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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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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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유회당 권이진이 대전 무수동에 경영한 별업 하거원 원림의 조영사상을 추적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하거원에 투영된 작정자의 사상적 배경은 '신종추원(愼終追遠)'의 효제사상, 가학의 전통과 도덕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무실사상, 청한지연(淸閒之燕)의 유학적 은일사상과 신선풍의 도가적 풍류사상을 들 수 있다. 즉, 이러한 사상적 가치관을 하거원이라고 하는 목적공간에 대입시켜, 상징원(象徵園), 의원(意園), 축경원(縮景園) 등과 같은 별업 원림을 구축하였다. 2) 하거원의 공간구성체계는 위계성을 고려한 3단계 영역으로 대별되는데, 제 1영역은 유회당에서 도경에 이르는 지역으로 거주를 겸한 전이공간, 제 2영역은 수만헌 뜰을 중심으로 요천대와 장우담 그리고 화계, 선묘의 시묘소 등이 펼쳐지는 기념비적(별업) 추모공간, 제 3영역은 하거원의 좌청룡 지맥 그리고 북에서 남쪽을 향하여 계류가 관류하는 동쪽 외원에 속한 은일공간이다. 3) 상징적으로 제 1영역은 유회당-고수대-오덕대로 이어지는 유교적 공간, 그리고 죽천당-도경에 이르는 선경의 세계를 의미적 경관으로 중첩시켜 상징화하였다. 제 2영역은 수만헌과 요천대 그리고 장우담 영역인데, '신종추원(愼終追遠)'의 상징적 가치, 부모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 등이 투영되고 있다. 제 3영역은 하거원의 동쪽 외원(배경대 - 운와 - 몽정 - 가산), 그리고 북에서 남으로 물길이 관류하는 계원(溪園) 권역은 동계(東溪) - 활수담 - 수미폭포로 구성되는데, (1) 몽정은 학문을 통해 어리석음을 깨닫는 격물치지의 삶을, (2) 활수담은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 초월적 삶의 자세를, 그리고 (3) 장우담은 신선세계로 향하는 선경의 관문을 상징화하고 있다. 4) 하거원 별업의 사유방식은 유교와 도학의 두 알고리즘이 반복적으로 중첩되어 드러난다는 점인데, 공간전개의 서장에 해당하는 납오지와 활수담은 도덕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수심양성의 장을 상징화 하였다. 그리고 하거원의 동쪽 외원에 속하는 몽정 권역은 수신과 학문탐구 등 유교적 가치체계를 주제로 하고 있다면 장우담, 수미폭포, 운와 등은 신선경의 세계를 의미경관으로 대입시킨 척번(滌煩)의 풍류라 할 수 있다. 5) 가산이라고 하는 축경기법을 별업 하거원에 대입시켜 무산12봉과 같은 선경세계를 구축코자 하였는데, 옛 시문에 표현된 상징적 의미를 차용하여 '하방(1), 화봉(2, 3), 출군(4, 5, 6), 신완(7), 취규(8, 9, 10), 처묘(11), 기융(12)'이라 명명했다. 가산을 읊었던 대표적 옛 시인은 왕의, 노삼강, 두보, 한유, 전희성, 범석호 등을 들 수 있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글로서 인연을 맺고 그들이 추구했던 신선경의 세계와 풍류문화를 하거원이라고 하는 별업에 담아 정신세계의 풍요를 구가코자 하였다.

곡성 함허정(涵虛亭)의 경관짜임과 의미경관 (The Landscape Configuration and Semantic Landscape of Hamheo-pavilion in Gokseong)

  • 이현우;심우경;노재현;신상섭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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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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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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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곡성 함허정(전남유형문화재 제160호)을 중심으로 '현장조사 문헌조사 인터뷰' 등의 연구방법을 토대로 연구대상 일원의 풍수형국과 경관짜임 및 조영의도 그리고 의미경관의 특성을 추적한 것이다. 함허정 일원의 입지 및 조망적 조영특성의 분석과 해석의 일환으로, 함허정 일원의 경관상에 드러난 호혜적 자연관과 경관짜임이 어떠한 형태 및 방식으로 표출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이 축약된다. 첫째, 함허정은 심광형(沈光亨, 1510~1550)이 중종30년(1535)에 군촌(현(現).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에 처소 및 강학을 위한 군지촌정사를 창건한 이후, 지근거리에 1543년 학문연구와 유식(遊息)을 위해 지은 누정이다. 함허정과 군지촌정사가 자리한 군촌마을은 순자강(섬진강)을 마주한 전형적인 배산임수 국면인데, 진산인 동악산은 소가 강가에 누워 한가로이 되새김질 하는 와우형(臥牛形)으로 해석되며, 함허정 일원은 목동(牧童)이 강가에서 피리를 부는 형국으로 와우(臥牛)가 적초(積草案, 풀더미)를 구비하여 평안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길처로 회자된다. 특히, 함허정 뒷동산은 거북이 용궁으로 입수하는 혈맥으로 거북(또는 자라)의 등 위에 앉은 건물[구형(龜形)]이 함허정이며, 절벽 아래 남측의 하중암도(河中巖島)인 구암조대(龜巖釣臺)와 용암(龍巖)은 거북이 지향한 해중 신선경(海中 神仙景)으로 해석된다. 둘째, 함허정은 곡성8경의 제3경 순강청풍과 제9경 설산낙조(雪山落照)의 풍광시점장이면서, 곡성 입면8경의 제2경 함허순자와 제3경 천마귀암(天馬歸岩)의 풍광시점이기도 하다. 한편 음양접합과 같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으로 배열된 순자강5곡의 제4곡 경물로서 도학 및 성리학적 토포스로 본 초월적 풍경이자 감각적 투시를 통한 굽음의 미학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비변사인방안지도(18C 중엽)와 옥과현지(1788년) 등에 순자강5곡 중 제2곡 합강정과 제4곡 호연정(함허정), 그리고 제3곡 무진정이 묘사되었음을 볼 때 순자강5곡 경물은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세계를 넘나들며 선경세계로 귀의하는 장소정체성은 물론 조선후기 명소적 연계경관으로서의 지명도를 엿볼 수 있다. 셋째, 비워둠의 미학이 절묘하게 드러난 함허정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등 노거수 수림경관, 구암조대와 용암, 첩석(疊石) 등 바위경관, 군촌마을 문화경관 등이 지근경(至近景)으로 펼쳐지고, 중경요소로 순자강 평호(平湖)와 마산봉, 고리봉 등이 산악경관으로 조망되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리봉 마산봉 무등산 설산 등이 개방성 강한 $180^{\circ}$ 조망범위로 펼쳐진다. 특히 군지촌정사의 사랑채인 망서재(望瑞齋)의 당호는 "서석산(瑞石山)을 전망하는 집"이라는 뜻을 갖는데, 조산인 무등산과 설산을 앙경(仰景)하는 등 다채로운 차경(읍경(揖景), 환경(環景), 원근(遠近), 앙부경관(仰俯景觀))에 대한 조망지향적 의도가 중층적(中層的) 경관짜임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넷째, 실존[주거(住居) 강학처(講學處)]과 이상향[누정(樓亭) 재실(齋室)]이 접합된 군지촌 정주환경의 살림집[제월당], 강학처[군지촌정사], 누정[함허정], 재실[구암사, 청송심씨 4현 배향] 및 묘역 등은 '생성-풍요-초월-회귀'로 이어지는 사대부들의 생애주기와 관련한 의미론적 연계경관으로 인식된다. 특히 함허정 관련 시문은 순자강 일대의 가경 예찬과 유유자적한 삶에 대한 호혜적 자연관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주지할 때, 함허정은 자연귀의와 안분지족의 요체이자 거점처이며, 수심양성(修心養性)하는 은일지소로서의 현학성이 형이상학적 의미경관으로 표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