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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書經)』 「우서(虞書)」의 내용체계와 유학사상적 의미 (The System of Contents and the Meaning of confucius' philosophy in 「Yu Shu;虞書」 of 『The Book of Documents; 書經』)

  • 고대혁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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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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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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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논문은 "서경" "우서"의 주요 내용 체계와 이 편이 지닌 유학사상적 의미를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는 먼저 "서경"이 소멸되고 복원, 전승되는 과정과 이 책의 명칭 및 이 책의 주요 형식과 체제를 살펴보았다. "서경"의 체제는 4대(代)의 서를 중심으로 "우서(虞書)" 5편, "하서(夏書)" 4편, "상서(商書)" 17편, "주서(周書)" 32편 총 5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은"육체(六體: 전(典) 모(謀) 훈(訓) 고(誥) 서(誓) 명(命))"나"십례(十例: 육체(六體) + 공(貢) 정(征) 가(歌) 범(範))"의 형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다음으로 "서경"의 유학사적 가치와 "우서" 의 유학사상적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우서"는 유학의 이상정치 이념인, "인정(仁政)" 곧 "덕의 정치"의 역사적 사례를 잘 보여준다. 본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이 책에서 강조되는 선양(禪讓)의 전통과 인재등용의 방식이 후세 민본정치와 왕도정치, 더 나아가 역성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우서" 를 비롯한 "서경"의 다양한 편에서 강조되는 치국평천하를 위한 여러 논거들은 제왕학, 수신학으로서 "대학"의 이론적 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서 강조되는 효(孝)는 지도자가 갖춰야할 인격의 주요한 품성이 되고, 그들의 인간관계 속에서 실천적 행위의 핵심가치 되며, "효경"의 연원이 되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치인(治人)의 차원에서 본 『대학(大學)』에서 『성학집요(聖學輯要)』로의 학문적 심화 (Academic Enrichment from The Great Learning(大學) to The Essentials of Sagely Learning(聖學輯要) when looking at it in the dimension of Governing of Others or Governance of humankind (治人))

  • 신창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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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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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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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치인(治人)의 차원에서 중국 유학이 조선 유학으로 전변(轉變)하는 과정을 정돈한 것이다. 특히, "대학"의 재해석이자 학문적 심화인 "성학집요"를 분석하여 조선시대 "대학"의 수용 양상을 탐구하였다. "대학"은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제왕학(帝王學)이자 성학(聖學)의 기본교재였고, 율곡의 "성학집요"는 그것의 총결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율곡은 "성학집요"의 체제를 크게 다섯 편으로 구성하고, "대학"의 삼강령팔조목(三綱領八條目)을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이중 치인은 제3편 "정가(正家)"와 제4편 "위정(爲政)"에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정가"는 "대학"의 제가(齊家) 내용을 세분화하여 실제로 가문에서 행해야 하는 핵심 사항을 명확하게 정돈하고 있고, "위정"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내용을 심화하여 시대정신의 인식 및 국가 경영의 실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였다. 제3편 "정가"에서는 "대학"의 '제가(齊家)' 내용을 세분화하여 '효경(孝敬)', '형내(刑內)', '교자(敎子)', '친친(親親)', '근엄(謹嚴)', '절검(節儉)' 등, 실제로 집안에서 행해야 하는 핵심 사항을 명확하게 정돈하였고, 제4편 "위정"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내용을 심화하였는데, '용현(用賢)', '식시무(識時務)', '법선왕(法先王)', '안민(安民)', '명교(明敎) 등 시대정신의 인식과 국가 경영의 실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제2편의 "수기(修己)"를 바탕으로 치인(治人)으로 나아가는 유학의 기본 체제를 잘 보존하면서도 상황에 맞는 실천 지침을 제시하여 학문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그것은 중국 유학보다 훨씬 풍부하고 심화과정을 거친 조선 유학의 특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조선 민족이 지닌 인간과 학문, 정치의 특성을 이해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의 유아교육 (Early Childhood Education of Joseon Royal Family)

  • 육수화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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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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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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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조선시대 왕실문화는 유교문화의 정수였고, 왕실교육은 유교교육의 최고봉이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실현하는 선비이자 내성외왕(內聖外王)을 구현하는 치자로서, 유교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조선의 왕이다. 때문에 왕위계승자들의 교육은 일반 사대부들보다 더욱 엄격하고 치열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했고, 왕실구성원이었던 왕실자손들의 교육 또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태교는 태아의 건강과 좋은 기질의 형성을 위해 산모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몸가짐이다. 이는 애초 산모가 보고 느낀 것을 태아도 태내에서 감응한다는 한의학적 학설에 바탕을 둔 것인데, 유교적 수양론과 결부되면서 교육의 시작이요, 성품형성의 근원으로 여겨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원자와 원손의 교육과정은 왕위계승교육의 일환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아주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 대개 3세 이전에는 보양청(輔養廳)을 설치하여 보육을 담당하게 하였고, 이들이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강학청(講學廳)을 설치하여 조기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왕실자손들의 경우, 보양청은 설치되지 않지만 통상 6세가 되면, 종친부 주관으로 대군과 왕자군의 경우에는 강학청(講學廳)을, 왕손의 경우에는 교학청(敎學廳)을 설치하여 조기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조선왕실 유아교육은 왕위계승자와 왕실자손들 모두 "효경(孝經)" "소학(小學)"과 같은 초학단계를 마치면,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의 단계적 학습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교육과정 자체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원자의 사부는 정 2품, 원손의 사부는 종 2품이며, 대군과 왕자군의 사부는 종 9품, 왕손의 교부 또한 종 9품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위상에 있어서는 현격히 차등을 두어 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