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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永樂) 내부각본(內府刻本) <사서대전(四書大全)>의 조선(朝鮮) 전래(傳來)와 유포(流布) (A Study on the Import to Chosun and It's Distributions of the Saseodaejeon Published by Yongle Emperor of the Ming Dynasty)

  • 송일기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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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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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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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연구는 명나라 영락제의 명으로 편찬한 <사서대전>의 유포와 우리나라에 전래 된 이후 복각 간행된 판본에 대해 분석한 것이다. 명나라 영락제가 황위를 찬탈한 이후 태조의 유훈을 받든다는 명분을 들어 호광(胡廣) 등에게 편찬하도록 칙명을 내리자 불과 10개월만인 영락 13(1415)년 9월 완성되었다. 그 후 명나라 내부(內府)에서 간행한 대전본(大全本)은 세종 대에 모두 3차에 걸쳐 전래되었다. 세종은 명나라에서 입수된 제1차 전래본을 저본으로 세종 9-10(1427-1428)년 사이에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3도 지방에서 각각 분담하여 판각을 완료하였다. 조선에 전래된 이후 유포 현상을 조사 분석한 결과, 명 전대본(大全本)을 그대로 복각한 판본이 조선에서 대략 18회 이상 간행되었으며, 그 중 현재 50종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현존본 50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대체로 임란으로 서적이 급속도로 망실되었기 때문에 이를 시급히 보충하기 위해 주로 서적의 수요가 시급했던 경기와 경상 지방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간행 보급되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영재(寧齋) 오윤상(吳允常)의 경학관(經學觀) (Kyunghakkwan (經學觀: Views on Confucius Canonical Studies) of Youngjae O Yunsang (寧齋 吳允常))

  • 김영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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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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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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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논문은 조선조 후기 경학자인 영재 오윤상(1746-1783)의 경학관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영재의 경학관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서집주대전"의 소주(小注)를 깊이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按)', '경안(更按)' 형식을 통해 "대학장구대전", "중용장구대전" 소주의 제가의 견해에 대해 비판적인 학설을 많이 개진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둘째, 우리나라 유학자의 설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율곡을 비롯한 농암 김창협, 남당 한원진의 학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한원진의 "경의기문록"을 자주 인용하고 있으며 농암설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셋째, 다양한 경서에 대해 접근하였다는 점이다. 영재는 당시 조선유학의 일반적 경향인 "사서" 중심에서 벗어나 "서경"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채침의 "서집전" 뿐만 아니라 "서경정의"의 공안국전과 주소까지도 자주 참고 인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집전"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내고 있으며 공안국전에 대해서도 때로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기도 한다. 넷째, 영재의 경설 중 특히 "중용"의 경우는 당시의 기호학자들에게는 인정받아 채택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제헌 심정진의 미간행 정고본(定稿本)인 "중용집설" 3책을 소장하고 있는바 여기서 제헌은 영재의 "중용"에 대한 견해를 본문에서 자세하게 인용하고 있다. 다섯째, 공자의 견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재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논어" 본문의 공자의 말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