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광화문은 고종 연간인 1866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함께 설립되었다. 광화문 남쪽으로 너른 단인 월대를 설치하여 위계를 드러냈다. 광화문 월대는 좌우에 난간석을 설치하였고, 중앙에 어로를 두었으며, 남쪽으로는 계단과 경사면을 설치하였다. 월대 어로와 이어진 남쪽 경사면에는 좌우에 용두석을 설치하여 왕의 길이라는 점을 조형적으로 표현하였다. 광화문 월대 중앙에 있던 어로는 1915년 조선진흥공진회가 경복궁에서 개최됨에 따라 넓혀졌고, 1925년경 월대가 훼철되었다. 이후 광화문 이전에 따라 그 형상을 찾을 수 없었다. 경복궁 광화문처럼 월대를 설치하는 모습은 다른 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월대 좌우에 난간석을 설치한 모습은 광화문이 유일하다. 현재 광화문 월대의 난간석과 경사로에 위치한 석수가 남아 있지 않지만, 사진을 토대로 비교한 결과 광화문 월대의 난간석은 19세기 조선 왕실에서 제작한 석물의 양상을 보이며, 용두석 역시 대한제국 시기에 조성한 상징물에서 유사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한편 동구릉에는 능에 배치되지 않는 여러 석물이 남아 있는데, 홍예석, 문소전 구기비뿐 아니라 난간석의 부재인 난간석주, 동자석, 죽석이 전해진다. 조선왕릉봉분 주변에 설치하는 난간석은 민무늬로 된 석물이 없는 반면, 궁궐 주변에 설치된 금천교에서는 문양이 없는 난간석을 설치하는 경우가 다수 남아 있다. 동구릉에 있는 난간석과 용두석은 광화문 월대의 석물로 보이는데, 시대적 양식 분석과 근대 사진과의 비교를 통하여 광화문에 설치했던 석물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경복궁 광화문 월대의 석물은 1915년 공진회 때까지는 본래의 위치에 남아 있었지만 1920년대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고 전차가 부설됨에 따라 훼철되었다. 조선총독부 청사 위치에 자리한 영제교도 이 시기에 훼철되었으며, 1930년대까지 경복궁 지역에 남아 있다가 동구릉 지역으로 함께 옮겨지게 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현재 광화문 월대 복원을 추진하는 시점에서 복원의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본 연구는 15세기 초에 건립된 건원릉과 헌릉의 병풍사대석과 난간석 구조를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추정하고, 현재 해제 조사된 내용과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구조적 변화와 그 의의를 밝히는 것에 주목적을 두고 있다. 건원릉과 제릉 및 헌릉은 1442년 동시에 수리되었는데 이때의 구조적 변화 양상이 동일하게 보인다. 1442년에 시행된 수리의 목적은 원활한 배수를 통해 지하 현궁으로 물이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공사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지하구조와 병풍사대석은 그대로 유지한 채, 병풍사대석 상부에 복부형석회를 추가하고, 난간석의 구조를 변경하는 정도에서 구조 개선을 이루었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따라 1420년과 1422년 사이에 건립된 헌릉의 구조를 추정하여 복원도를 그려보고, 1989년에 해제조사보고서에 기록된 구조와 차이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1998년에 해체조사된 건원릉의 구조에 대응하여 수리된 부분과 건립 당시의 구조를 구분하였다. 건원릉과 헌릉의 건립 당시 모습을 추정해 본 결과, 고려의 현·정릉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조성되어, 고려왕릉을 그대로 답습한 점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1442년의 산릉수리도감에 의하여 구조개선이 이루어지면서 고려왕릉과는 차별된 조선왕릉의 특징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1442년에 시도되어 조선의 전 시기 동안 봉릉 구조에 적용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복부형석회의 등장이다. 복부형석회는 병풍사대석에 볼록한 지붕으로, 봉토(封土)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이 사대석 내부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또 사대석의 상부구조인 만석과 인석을 안쪽에서 하나의 구조체로 연결하여 고정하는 역할도 한다. 복부형석회는 1442년에 처음 시도된 이래로, 병풍사대석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례에 적용되어 조선왕릉의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 둘째는 난간석과 병풍사대석 사이 공간에 평평한 박석을 까는 대신에 물매를 형성하는 상석(裳石)을 설치하였다. 1442년에 설치된 상석은 병풍사대석에서 난간석 방향으로 빗물이 흘러가도록 경사면을 형성하고 기왓골을 새긴 조선의 첫 와첨 상석으로볼수있다.이후로는기왓골을생략하기도하지만,치마형태의상석은조선왕릉에만사용된특징이다.
이 연구는 정조대왕 초장지에서 출토된 석물(박석과 난간석)의 암석광물학적 분석을 통해 채석산지를 해석하고 건릉 석물과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정조대왕 초장지에서 출토된 석물은 모두 담회색 세립질 흑운모화강암이고, 석영, 장석, 흑운모를 주성분광물로 함유한다. 이들의 전암대자율은 5.55~12.10(평균 7.00)(SI unit)에 분포한다. 고문헌에 채석산지는 앵봉과 여기산(수원시 고등동)으로 기록되었고, 지표 지질조사에서 앵봉(현 영광아파트) 뒤 노두에서 석물과 유사한 세립질 흑운모화강암을 확인하였다. 노두암석의 대자율은 5.15~7.24(SI unit)이고 암석광물학적 및 지구화학적 특성이 초장지 출토 석물 및 건릉 석물과 동일하였다. 기록상 초장지의 석물은 대부분 건릉 천릉 시 재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박석과 난간석은 다시 사용되지 않고 초장지에 그대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효의왕후(정조 비) 승하 후 합장릉 조성 시 봉분의 크기가 커지면서 초장지의 난간석이 크기에 맞지 않아 재사용이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연구결과를 통해 18세기 능묘 석물조성에 대한 문헌기록과 과학적 분석 결과를 비교검토할 수 있었으며 관련 연구분야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Ordinary people generally bury or burn placenta when the baby was born. But, Joseon royal family put placenta in pot and then buried it in propitious site praying for good health and long life. After that baby had become the king of Joseon, people built stone figures formed fixed type at that place. It is called gabong-taesil(加封胎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gure out the type and characteristics of the King Taejo's taesil in Joseon Dynasty. The King Taejo's taesil had built first as soon as Joseon was established circa 1393, and repaired largely in 1689. Since then, this was damaged by the Japanese Empire and assembled in recent days at near place from the original place. Center piece of taesil remains the original form, and the rest of stone figures is assumed to be rebuilt in 1689. But, some materials like sangseok(裳石) and jeonseok(磚石) are assumed that are original stone figures or were made, assembled by the style of then. Considering most of remained taesil is a relic of the latter part of Joseon Dynasty, the King Taejo' taesil has high cultural value as the first gabong-taesil of Joseon Dynasty inheriting Goryeo Dynasty type.
This study examined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royal tomb equipped with only rail ston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ongneung(封陵: the burial mound of royal tomb) equipped with only rail stones was constructed from 1468 to 1632. During this period, Hyeongung(玄宮: the underground chamber for the coffin of the king or queen) was constructed with lime. When the Hyeongung is completed, the soil is covered with a thickness of 1 foot parallel to the ground surface. On top of that, as the base of the Bongneung, the rail ground stone is constructed with a height of about 1.5 to 2 feet. The inside of the rail ground stone is also firmly filled with soil. On top of this, semicircular lime is installed with a convex center. Lastly the soil is divided and compacted several times to form a hill, and then covered with grass to complete the Bongneung. The notable feature is that between the Hyeongung made of lime and the Bongneung made of soil, the rail ground stone serves as a stylobate with the inside compacted by the soil.
고려왕릉은 대부분 개성에 위치하여 실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연구가 미흡하였다. 또한 왕릉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석물에 대한 연구도 통일신라 및 조선시대에 국한되어 왔다. 이에 본고에서는 강화도 소재 고려왕릉 5기를 대상으로 축조배경과 현황, 석실구조를 살펴본 다음, 강도시기 왕릉관련 석물의 구조적 도상적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강도시기 석물의 특징으로는 구조의 간소화와 규모의 축소를 들 수 있다. 난간석 및 병풍석 등의 시설은 구조적으로 간소화되고 석인상의 크기는 이후 시기에 비해 두드러지게 작다. 또한 도상에 있어서도 석양의 채용 등 일정한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한 강도시기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가봉태실이 현재 두 곳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즉 하나는 경남 사천시의 소곡산에, 다른 하나는 경북 성주군의 법림산에 있는 것이다. 한 임금의 가봉태실은 두 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 논란이 되었다. 필자는 경북 성주에 있는 태실이 단종의 가봉태실이며, 경남 사천에 있는 단종 태실은 예종의 장자인 인성대군의 태실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현존 유물에 대한 세밀한 검토를 하지 못하여 이번에 문헌기록과 유물을 비교 연구하게 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1. 단종의 태실은 아기태실과 가봉태실로 두 개가 있다. 즉 최초 단종의 아기태실은 1441년 윤11월 26일에 성주 선석산 태봉에 조성되지만, 1451년 성주 법림산으로 이안되어 2차 아기태실이 조성된다. 그후 세조에 의해 1458년 태실이 철거된다. 그러나 법림산 태봉에는 가봉태실석물이 잔존하고 있어 이를 근거로 단종이 임금으로 등극한 후 재임기간(1452~1455)에 가봉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2. 사천의 태실이 단종의 태실로 정착하게 된 이유는 숙종 때 단종 복위과정과 관련성을 두었다. 복위되면서 왕의 격식에 맞게 태실도 보수되는데, 이때 사천의 소곡산 태실을 단종의 것으로 잘못 알고 보수하였다고 보았다. 또 가봉시기는 단종이 복위되어 장릉 개수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1699~1719)으로 추정하였으며, 의궤와 가봉석물에 난간석이 없는 것은 추봉된 임금의 무덤에 난간석을 하지 않고 간략히 조성하는 왕릉의 예처럼 태실도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게 되었다고 보았다. 3. 지금까지 사천의 태실을 단종 태실로 알고 있던 것은 오류이며, 1462년에 장태된 인성대군의 태실로 결론지었다. 이는 서삼릉 태실에 있어야 할 단종 태실은 없고 인성대군 태실이 조성되어 있는 점에 착안을 하였다. 즉 1928년 이왕직이 사천의 단종 태실을 봉출하여 서울에 보관하다가 1930년 서삼릉으로 옮겨 갈 때 태지석의 명문에 단종이 아니라 인성대군 태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되어 서삼릉에는 단종 태실이 아닌 인성대군 태실을 조성한 것으로 보았다. 이를 위해 일제강점기 때 서삼릉 태실을 조성하면서 남긴 "태봉"과 사천 태실 서삼릉 태실에서 출토된 유물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십이지신상이 표현된 능묘는 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다. 하지만 내부 매장시설에 대한 조사나 출토유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능묘는 근본적인 연구에 한계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에서는 능묘에 표현된 가시적인 특징을 토대로 십이지신상의 조각수법의 변화나 표현기법의 변화, 그리고 외부호석 및 난간석을 별개의 조건으로 다루어 연구를 진행해왔다. 외부호석 및 난간석을 별개의 조건으로 다룬 것은 다른 제속성들과 정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기존 연구의 제속성을 다시 분석하여 십이지신상에 표현된 기법의 변화가 능역 구성요소의 변화와 부합되는가를 확인하였다. 제속성의 특징은 첫째, 호석의 갑석과 지대석의 치석방법의 차이와 면석의 이격 칸수는 1단(무단) 치석에서 2단, 3단의 순으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둘째, 십이지신상의 지물은 방망이, 창, 낫형지물, 봉, 삼지창 등으로 배열되며 연속성을 띤다. 또한 석상의 지물은 십이지신상에서 사라진 이후에 석인상에 표현된다. 셋째, 십이지신상은 조각수법에 따라 곡면각과 평면각으로 크게 구분되고, 세부적으로 두향과 복장은 화면비율에 따라 시간성을 갖는다. 넷째, 상석의 안상형태는 돌기의 수가 9개에서 5개, 3개 등으로 줄어들고, 보주형의 중앙돌기에서 돌기의 높이가 낮아져 편평한 형태로 변화한다. 이들 각 제속성들의 상관관계를 살피면 정합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를 토대로 신라 후기 십이지신상의 능묘는 5단계로 변화함을 확인하였다. 왕릉의 입지 또한 서악동고분군과 전선덕여왕릉처럼 초기에는 구릉 능선에서 원성왕릉 단계에는 산기슭으로, 나아가 전 헌덕왕릉에서는 평지 순으로의 변화를 보인다. 더불어 능묘의 상대순서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음을 인지하였다. 이 능묘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의 한계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이다. 결국, 전 진덕왕릉과 구정동방형분은 원성왕릉보다 이른 왕릉일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신라 후기 십이지신상의 능묘는 능과 석상, 배례공간, 신도, 능비가 조합된 완성형 능역구조를 갖추며 고려와 조선왕릉에 기본 모티브가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연구는 광화문 월대 복원에 사용될 석재를 수급하기 위해 광화문 난간석주와 구리 동구릉 소재 난간부재들의 암석학적 유사성을 비교하고 석재의 산지를 해석하였으며, 서울-포천 일대 암석 중 복원에 가장 적합한 신석재의 채석지를 제안한 것이다. 동구릉에 소재한 난간석주는 중립 내지 조립질의 담홍색 흑운모화강암으로써 이들의 암석기재적 특징, 전암대자율(평균 5.20 ×10-3 SI unit), 감마스펙트로미터(K 5.00~6.38%, U 4.92~8.56 ppm, Th 27.60~36.44 ppm) 분석결과는 광화문 월대에 남아 있는 난간석주(대자율 평균 5.38)와 유사성을 보였다. 따라서 동구릉 난간부재들을 광화문 월대 복원에 재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은 서울 수락산과 불암산에 분포하는 담홍색 흑운모화강암과 암석학적 및 지구화학적 특성이 유사하여 이 지역을 석재 산지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수락산과 불암산 일대는 현재 채석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울화강암으로 명명된 양주와 포천지역 화강암을 대상으로 암석학적 및 지구화학적 분석을 실시하여 복원용 석재의 적합성을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 포천 지역에서 월대 석재와 유사한 담홍색 흑운모화강암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지역 석재 중 입자 크기와 색상이 광화문 난간석주와 유사한 석재를 선별하여 월대 복원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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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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